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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억 달러 딜, 과연 스와프 없이 가능할까?

by 윤세문

최근 한·미 관세 협상에서 우리나라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논의했다. 그러나 양국이 바라보는 방식은 달랐다.

한국: 정부 보증·정책금융을 활용해 대출·보증 중심으로 집행하자는 방안

미국: 현금 직접 투자를 요구


이른바 동상이몽(同床異夢) 이다.


같은 시기 일본은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 (Currency swap)’를 상설 운영하고 있고, 외환보유액도 1조 달러 이상이다. 그래서 일본이 5,500억 달러 현금 투자를 집행한다 해도 보유고 대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다.

반면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약 4,200억 달러. 3,500억 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집행한다고 가정하면 보유고의 무려 83%가 빠져나가게 되는 셈이다.


이런 배경에서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긴다.

“왜 일본은 미국과 무제한 스와프가 가능한데, 우리는 어려운가?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에 통화스와프는 왜 그렇게 중요할까? 이런 관점에서 통화스와프에 대해 탐구해 봤다.


기축통화와 ‘신뢰 기반’ 스와프

미국과 일본(또는 유로존, 영국, 스위스, 캐나다)은 모두 기축통화국이다. 기축통화란 전 세계 중앙은행과 시장이 언제나 보유·거래하기를 원하고 믿는 통화를 뜻한다.

깊은 금융시장: 달러·엔·유로 등은 국채·단기금융 시장이 방대해 위기에도 유동성 확보가 쉽다.

정치·법제 안정: 중앙은행 독립성, 투명한 회계, 신뢰할 수 있는 법 체계가 뒷받침된다.

서로의 신용위험이 0에 가까움: 그래서 “무제한·상설”로도 걱정 없이 스와프를 운영한다.

Screenshot 2025-09-15 203609.png 주요 기축통화. 미국 USD가 압도적인 비중이나, 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 등의 통화가 이른바 기축 통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서로를 ‘무한 신뢰할 수 있는 통화 동맹’이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은 마음 놓고 상설·무제한 스와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통화스와프 = 국가의 마이너스통장

통화스와프는 “국가가 달러를 빌릴 수 있는 마이너스통장”과 같다. 2020년 코로나 금융위기 당시 한·미 통화스와프를 단계별로 개인이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는 것과 대조해서 예로 들어보면,

개설: 한국은행과 미국 연준은 ‘최대 600억 달러 한도’ 스와프 계약을 체결. 이는 개인이 은행과 ‘6억 원 한도’ 마이너스통장을 여는 것과 같다.

사용: 코로나 초기 달러 자금이 급격히 마르자 한국은행은 스와프 한도 내에서 달러를 빌려 시중은행에 공급했다. 개인이 갑작스런 의료비로 마이너스통장에서 돈을 빼 쓰는 상황과 같다.

상환: 위기 진정 후 달러를 다시 매입해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고, 연준은 맡겨둔 원화를 돌려줬다. 마치 마이너스통장의 원금 및 이자를 갚아 0원으로 되돌린 것과 동일하다.


이처럼 스와프는 계약만으로도 시장에 “달러를 언제든 확보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어 환율 급등을 막는 효과가 있다. 마치 마이너스 통장이 있으면 언제든 급할 때 상한선 내에 한하여 빌릴 수 있는 보험의 성격이라고나 할까.


미국의 시각 – 왜 신중할까

도덕적 해이: 달러를 언제든 공급한다는 신호가 과도한 차입·투기를 부추길 수 있음

정책 일관성: 연준의 핵심 목표(물가·고용)와 무관한 양자 스와프는 부담일 수 있음

지정학 균형: 중국·일본과의 외교적 형평성도 고려 대상


한국의 시각 – 왜 절실한가

외환보유액 대비 투자 부담: 3,500억 달러 직접 집행은 보유고 83% 수준

환율 안정 = 경제 안정: 수출입·금융시장 모두 달러 유동성에 의존

시장 심리 안정: 스와프 라인 자체가 ‘달러 보험’ 역할


마무리하며

3,500억 달러 투자 논의는 투자 자체보다 달러 확보 안정성이 더 큰 화두다. 미국·일본이 상설·무제한 스와프를 운용할 수 있는 건 기축통화가 주는 절대적 신뢰 덕분이다.


한국에게 통화스와프는 단순한 외화 대출이 아니라 “국가의 긴급 마이너스통장”이자 세계 시장에 “우리는 달러 유동성 걱정이 없다”는 강력한 시그널과 같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 통화스와프는 투자 협상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국가 보험의 성격과도 같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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