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해영 Dec 13. 2023

남의 힘-균형추-내 중심(관우설화)


관우를 알게 되다


장면 1 멋쟁이, 천하무적 


초등학교 때 관우를 만화를 통해 처음 만났다. 삼국지 만화가 연재되는 어린이 신문이 있었는데 우리 반의 학우가 구독을 하여 나는 신문주인의 응락을 받아 삼국지 만화를 볼 수 있었다. 이 연재만화에서 본 관우의 인상은 멋진 수염에 위엄이 서린 창을 들고 잘 생긴 말을 탄 늠름한 모습으로 싸웠다 하면 이기는 천하무적이었다.

  

장면 2 뛰어난 인물들과 한자리에 있으니 도드라짐은 적어지고 


20여 년 전 중국 쓰촨 성 성도에 있는 무휴사를 여행차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사당의 주인공은 제갈공명과 유비로 그들 옆에 관우도 모셔져 있으나 여려 명의 장군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특별함이 적어 보였다. 만화로 관우를 본 후 삼국지 소설도 읽어보고 그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도 상당히 알고 있어서 그런지 초등학생 때처럼 강력한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장면 3 중식 음식점에서 재물신으로 변한 관우를 만나다


언제가 서울의 어느 중식당의  카운터 옆에 관우상이 모셔져 있음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충과 의리의 상징에서 사업의 안녕과 번창을 비는 신으로 관우의 모습이 변한 것이다,    


 



관우 설화 소개


입으로 전해지는 관우 설화가 한편 있으나 녹음상태가 나빠 내용을 파악할 수 없어 문헌으로 기록되어 있는 설화를 소개한다.


▪태몽에 나타난 관우

 최태공 부인이 태몽을 꾸었는데 큰 별이 남쪽으로 떨어지면서 광채(관우)를 발하였다, 그러한 후 아들을 낳았는데, 나중에 아들이 동래로 귀양을 가면서 임진왜란의 발발을 예견한다.     


▪중국 황제의 꿈에 관우가 나타나다

명나라 만력제는 유비의 화신이고 선조 임금은 장비의 환생인데 동생을 구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달라. 

    

▪나라를 구한 관우

임진왜란 때 왜군이 남대문 밖에 나타나서 도성을 공격하자 적토마를 탄 장군이 병사를 이끌고 와서 왜군을 물리친 후 남산의 굴로 사라졌는데 그 후에 어느 대신의 꿈에 관우가 나타나 “동묘로 가자 동묘로 가자” 하였다   

  

▪민비와 고종 임금에 도움을 주는 관우

임오군란 때 충주로 피난했던 민비가 난이 진압되자 환궁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관우 딸의 환생이라는 무당(진령군)이 날짜를 선택하여 안전하게 돌아왔다. 

갑신정변 때 고종이 서울의 북쪽에 있는 관우묘로 피난을 하였는데 꿈에 관우가 돌봐 주려고 했다.   




  

관우묘와 관우 신드롬


충정과 의리의 화신인 관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연유는 임진왜란 때 명의 장수가 울산성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치료를 하였는데 후원의 허름한 집을 개조하여 관우를 모셨다. 이후 명나라 군대가 주둔하거나 싸움터였던 지역에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전국적으로 만들어진다. 


조선왕조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상처를 어느 정도 치유해 가고 청나라와의 관계도 긴장이 풀리는 숙종 임금 때부터 관우를 모시는 제사가 본격화된다.     


이후로도 관우 모시기는 정조임금 등 여러 왕들의 관심사였으며 고종 임금 때 절정기를 맞이한다. 이 무렵 관우는 왕과 엘리트 계층의 충성과 의리의 숭모 대상에서 백성들의 소원을 비는 신앙 대상으로 확산이 된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공적인 숭배를 백성들은 집에 관우상을 모시고 복을 비는 사회현상이 나타난다.      

임란 때 왜군과의 전쟁의 승리는 관우의 영험이 있었다는 믿음이 형성되고  구한말 일본의 침략 우려와 이에 따른 반일감정이 복합화하여 관우 숭배 현상이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출현한다.     


그러다가 청일전쟁의 결과 청나라가 일본에 지는 믿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하자 조선의 엘리트등의 인식이 관우 숭배는 사대주의 산물이며 배척 대상으로 바뀐다. 중국인인 관우가 자기 나라도 지키지 못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더 가치가 없다는 인식의 변화와 조선의 탈중국화 바람이 함께 불게 된다.   

   

조선 조정도 칙령을 반포하여 관우 제사 금지와 사당의 통폐합을 추진하여 급격하게 확산된 관우 숭배사상은 쇠퇴하게 되며 지금은 망각이 되었다.      


관우 설화와 신드롬 이해


우리 개개인이 험난한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큰 곤경에 처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때 어려움에서 벗어나려고 능력자에게 부탁하고 절대자에게 의지도 해본다. 물론 사회나 국가의 경우도 강대국의 힘과 그 체제를 따르려는 변화 운동이 일어난다. 


그러나 개인이 절대자의 구원이나 믿음을 위로와 위안을 넘어 비상식적으로 절대자에게 매달릴 경우 오히려 이 믿음으로 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국가의 지도자나 사회의 지도층이 무속 수준의 비이성적인 믿음으로 사회를 리더해 나갈 경우 나라를 망하게 하거나 사회의 규범이 와해되는 등 더 큰 문제과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관우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사회와 국가를 통제하려 하다 활용성이 없어지자 언제 그리했나 하듯이 잊어버리는 모습은 우리가 스스로를 너무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지못미" 내 사랑(노자 설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