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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Aug 05. 2020

인문학자도 주식을 해야 할까?

feat. 채사장의 유니버스


채사장의 <동학개미를 위한 주식라방> 이라는 웃기고 자극적인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인상깊게 보았다. 팟캐스트 <지대넓얕>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채사장은 철학과 인문학에 상당한 깊이와 교양을 갖춘 사람이면서 (나만의 판단은 아니고 수많은 팟캐스트 청취자들의 의견이다), 동시에 과거에 전문 주식 트레이더로 일한 적도 있는 사람이다. 과연 그가 말하는 주식투자는 어떨까 궁금해서 클릭했다가 영상을 끝까지 봐버렸다. 무려 2시간 동안의 기나긴 라이브 방송 녹화본이라, 다른 일을 하면서 들었다. 그러다 중요한 이야기 할 때만 영상을 보면서 그의 필기를 주시했다.

   

채사장의 투자썰이라니. 너무 좋아.


영상의 요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주식에 (혹은 주식이 아닌 다른 자산에라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냐고? 


1. 인간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유'와 '시간'이다. 예를 들어,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유'와 '시간'이 없다.


2. '자유'와 '시간'은 '돈'이 안정적으로 뒷받침될 때에만 획득 가능한 자산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노동자처럼, 돈이 없으면 자유와 시간을 누릴 수가 없다. 이런 취미도 가져보고 싶고, 저런 곳에 가보고 싶지만, 일단은 돈 벌러 가야 하니까.


3. 따라서 우리는 '돈'을 단순히 세속적인 수단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자아 실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4. 그럼 노동을 하지 않고 어떻게 돈을 버느냐?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되면 된다. 투자는 자본가가 되는 가장 쉽고 간편한 방법이다.


5. 투자를 통한 수익금으로 노동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고, 그러면 노동하지 않는 시간동안 자유롭게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 노동을 통해 실현되는 가치보다 훨씬 더 유의미하고 고차원적인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노동 자체가 자아실현의 일부인 드문 경우는 제외)



일정한 양의 목돈을 모으고 나면, 그걸 투자해서 매년 10% 씩만 수익을 내도 그걸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채사장은 한국에서 1인 기준 3억원을 목돈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1년에 10%면 3천만원이다. 3천만원의 일부를 저축해가며 사는게 아니라 그 전부를 온전히 소비하면서 사는거니까,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산다면 충분히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금액이다. 수익률 10%는 은행 이자로는 절대 달성하기 어렵지만 주식 투자로는 현실성 있는 숫자다. 물론 안정적으로 10%씩 수익을 내려면 오랜 투자 내공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목돈이 있으면 '투자'라는 방법으로 노동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일정 수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게 결론이다. 그리고 남는 시간동안 각자 본인에게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을 하면 된다.


요즘 미국 밀레니얼 세대에서 유행하는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운동도 사실은 같은 맥락에 있다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 최대한 많이 벌고 최대한 저축하여 일찍 은퇴하겠다는 움직임이다. 단기간에 많은 자금을 모으고 그 자금이 일정 수준의 규모에 도달하면, 그 이후부터는 이자 금액만으로도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정년이 되기 전에 일찌감치 은퇴하고 남은 인생의 '시간' 동안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면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자유롭게 한다는 일이 소비에만 치중된 행위여서는 조금 곤란하겠지만...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면, 굳이 돈이 되지 않는 무언가를 시도하고 창조하고 열중하는 행위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다가 의도치 않게 그 행위를 통해 부수입을 창출해낼 수 있다면 플러스 알파가 될테고.


몇 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개념인 '기본소득'의 논리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베이스 자금(목돈)을 가진 주체가 개인이 아닌 국가라는 점만 다를 뿐, 규칙적인 생활비 지급을 보장받음으로써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해소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물론 개인이 본인의 힘으로 안정적인 미래를 설계하는 것과 그 역할을 국가가 대신해주는 것 사이에는 수많은 정치적 쟁점들이 존재하겠지만 근본적인 개념의 출발은 같다. 일단 생활고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면, 누구나 시간을 자유롭게 쓰면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큰 그림이다.


요즘 주식 차트를 하루에 두 번 이상씩 확인하며 지내는 한 사람으로써, '자유롭기 위해 주식에 투자하라'는 채사장의 말이 왠지 모르게 고마웠다. 나의 이 모든 투자 행위가 세속적인 동기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는 합리화가 가능해 지면서... 나도 미처 몰랐던 나의 주식투자 동기를 채사장이 대신 명쾌하게 설명해준 것 같았다. 결론은 채사장님 천재.




채사장의 영상 후반부에서는 기초적인 투자 방법도 소개되었다. '좋은 농부가 되어야 한다'는 비유를 들어 아래 세 가지 포인트를 꼽았다.  

 

1. 좋은 씨앗 고르기

성장성이 높은 기업 (단기적인 트렌드만 보는 테마주 제외), 내가 좋아하는 기업, 배당금을 잘 주는 기업, 시가총액이 큰 기업 등이 좋은 씨앗이다.


2. 공간적/시간적으로 적절히 나누기

주식 (20개 내외 기업), 원자재,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투자 자산으로 공간적 나누기. 여러 타이밍에 매도/매수를 함으로써 시간적 나누기.


3. 기다리기

Day Trading은 삶의 수단과 목적 간 주객전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하고, 시장의 흐름을 관찰하면서 중장기 혹은 초장기 투자를 지향하자.




* 채사장님의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fRsy4FlQQ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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