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일기 2/2
수술 이후 회복실에서는 이런저런 검사를 받으며 입원실에 빈 자리가 나길 기다렸다. 이 병원은 모든 입원실이 1인실이어서, 누군가 퇴원을 하고 병실 청소까지 끝난 후에야 다음 환자가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 병원이었다면 아기는 즉시 신생아실로 보내지고 부모는 정해진 시간에만 아기를 면회할 수 있었겠지만... 미국 병원에서는 수술실을 나온 그 순간부터, 아기는 계속 우리와 함께 있었다. 대신 소아과 의사나 간호사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와서 필요한 검사들을 진행하는 식이었다. 원래는 nursery(신생아실)가 있어서 산모가 요청할 경우 아기를 거기에 잠깐씩 맡길 수 있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잠정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거의 바로 skin-to-skin을 하며 아기를 품에 안을 수 있다는건 너무 좋았지만, 병원에 있는 4박 5일 동안 제대로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계속 아기와 한 방에서 24시간 지내야 하는 것은 사실 고역이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아기가 너무 작고 소중하고 귀여워서 몸이 힘든 줄도 몰랐다. 통통한 볼살도 너무 귀엽고, 응애~ 하는 울음소리도 너무 귀엽고, 그냥 쌕쌕거리면서 숨 쉬는 것만 봐도 너무 이쁘고 귀여웠다. 제일 귀여운 건 아기가 내 젖가슴을 빨 때 보이는 오물오물 움직이는 입과 볼과 턱이었다. 태어난지 몇 십 분 밖에 안 된 아기가 유두를 물려주니 열심히 빨아대는게 정말 신기했다. 태어나자 마자 어미 젖을 빨아 먹는건 모든 포유류 동물들의 공통적인 본능이겠지만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보니 생명의 신비란 이런 것인가, 하며 새삼 감탄하게 됐다.
하지만 아기는 2-3시간 간격으로 배고프다며 젖을 찾았고, 한 번 수유를 시작하면 트림 시키고 기저귀를 갈기까지 한 시간은 족히 걸렸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최대 2시간 미만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미국 산부인과/소아과에서는 모유수유에 대한 찬양이 맹목적인 수준이어서, 간호사들은 분유를 먹이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은근한 압박을 넣고 갔다. 특히 태어나서 첫 24시간 동안은 아기가 아무것도 안 먹어도 엄마 뱃속에서 가지고 나온 영양분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며 절대 분유는 먹이지 말고 모유수유를 계속 시도해서 초유를 먹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모유와 분유를 혼합해서 먹일 예정이었지만, 막상 여러 간호사들이 돌아가며 같은 이야기를 하니 최대한 분유 없이 버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초반에 더 무리를 했던 것 같다. 연약한 나의 유두는 금새 쓸려서 빨갛게 상처가 났고 아기가 빨 때 마다 "으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팠다. 나중에는 딱지가 앉았는데 그게 다 떨어져 나갈 때 까지 너무 아프고 쓰라렸다.
3-4일차가 되면서 남편도 나도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나는 복부 절개 부위의 통증과 유두 통증, 그리고 수술 시 자세로 인한 왼쪽 갈비뼈 통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이 갈비뼈 통증은 출산 10주가 다 되어가는 시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통증의 최종 보스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젖이 돌면서 생기는 유방 통증이었다. 보통 분만 후 3일 정도 지나면 젖이 돌기 시작하면서 초유에서 모유로 점차 바뀌는데, 나의 경우 정확히 4일차 밤에 극심한 유방 통증과 함께 멘탈붕괴가 찾아왔다.
며칠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침에도 밤에도 비몽사몽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진통제로 버티고는 있으나 여기저기 아픈 상황에서 어깨와 겨드랑이를 포함한 가슴 전체가 뻑적지근하고 딱딱해지더니 조금만 움직여도 머리카락이 곤두설만큼 아파왔다. 이런 아픔은 살면서 처음 겪는 종류였다. 쓰린 것도 아니고 시린 것도 아니고 뻑적지근하고 딱딱해서 아플 수가 있다니. 증상을 호소하자 담당 간호사가 스팀타월로 만든 팩과 함께 engorgement(젖몸살)과 관련된 프린트물 한 장을 가져다 주면서 어떻게 풀어주고 관리하면 되는지 설명을 시작하는데... 뭘 참고 어쩌고 할 겨를도 없이 서러움이 폭발해버렸다. 남편과 간호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나는 나대로 울음과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지금 너 몸 상태도 아직 회복 중이고 호르몬 때문에 감정 조절도 힘들지~ 힘든게 당연한거야~" 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며 위로를 하던 간호사는 결국 자기가 밤에 몇 시간만이라도 아기를 봐주겠다고 자처했다. 덕분에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에는 몇 시간이나마 제대로 잘 수 있었다.
출산 후 4박 5일 내내 제대로 된 미역국도 한 그릇 못 먹었지만 (미리 준비해간 비비고 미역국과 컵밥으로 흉내만 냈다), 산후조리는 커녕 잠도 제대로 못 잤지만 (병원에서의 입원기간이 지금까지 10주간의 육아기간 중 단연코 육체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시간이다), 갓 태어난 아가의 오밀조밀한 눈코입귀손발을 구경하고, 품에 안았을 때의 따뜻함과 냄새를 느끼고, 존재 자체의 귀여움에 매시간 감탄하느라, 정신적으로는 정말 충만한 시간이었다. 우리 아기는 평균에 비해 키도 몸무게도 큰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볼 때 마다 너무 조그매서 신기했던 기분이 선명하다. 약간은 구름 위에 붕 떠있는 기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때 찍어놓았던 동영상을 다시 보면 모든 영상에서 내 목소리가 한껏 상기되어 있다. 원래 말수가 적은 편인 나이지만, 아기를 안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계속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주게 되었다. 아기는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세상에 나오자마자 벌써부터 발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