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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쥐꼬리 Apr 16. 2024

'갓생' 살기 싫어 호주에 삽니다.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온 지도 벌써 6개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해 먹고,

몸이 뻐근하면 요가 매트 하나 달랑 들고

집 앞 공원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한국에서의 생활 리듬에 벗어나 이곳,

호주의 여유로운 흐름에 적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이고 행복한 시간보내고 있다.


분명 나는 한국식 '갓생' 살기 싫어서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온 것인데,

어쩌다 보니 호주에서 갓생을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요즘이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 사회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갓생'의 의미를 빌려 내가 한국을 떠나

해외에 사는 이유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한동안 MZ세대의 트렌드이자 핫한 키워드였던 '갓생'.

일이나 학업 외에도 개인 시간을 들여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좋은 취지의 생활 방식이지만,

최근 들어 휴식 시간까지 반납해 가면서까지 갓생이나 미라클 모닝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현상이 강해진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식 '갓생'이란 자기 관리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기준이 되는데, 이 기준과 관련지어서 내가 한국을 떠나 해외에 사는 이유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1. 외모 강박적인 사회


바야흐로 자기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 수 있는 시대. 그래서 요즘은 자신을 얼마나 가꿀 줄 아느냐에 따라 부지런한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타당한 이론 같아 보이지만, 자기 관리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내가 한국에서 살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부분이었다.


무지막지한 다이어트 강박을 '자기 관리'라는 이름을 씌워 사람들에게 강요한다는 점이 주는 피로는 상당하다.

살을 빼준다는 유산균이나 다이어트 보조제 광고가 티비 채널을 돌릴 때마다 지겹도록 나오고,

절식이나 단식 등 식이장애에 가까운 모습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고 오히려 '소식좌'라며,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며 칭송한다.

너무 적게 먹거나 과하게 먹는 식이장애에 가까운 모습을 먹방이라는 단어로 포장하여 전시하는

행위도 점점 과해지고 있다. 이런 먹방 콘텐츠 외에도 우리 사회가 중간이 없이 과하게 양극화되고 있는 느낌이라 이런 점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내가 먹던 다이어트 보조제


과체중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 나지만 이런 사회에서 외모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느꼈는데 호주에 와서는 이런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 체형이나 피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보다 의견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마주할 때마다 정말 새롭고 경이롭다. 이곳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2. 남 눈치를 과하게 보는 사회


호주에 와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남 눈치 안 보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복장의 자유의 극치를 누리고 있는데 한국에 살 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곳에서는 매일 같이 편하게 입는 레깅스를

언제 한번 한국에서 등산 갈 때 입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빠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갈아입으라는 소리부터 했고, 옆에 있던 언니와 엄마마저도 아연실색하며 나를 만류했다. 단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민망하게 한다는 이유로.

남 눈치 안 보고 맨발로 다니거나 바닷가 근처에서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도 수영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이곳에서 살던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때 아마 이렇게 울부짖지 싶다.

레깅스 못 잃어!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는 산책길


요즘 어느 사회에서도 같겠지만 sns로 인해 항상 과연결되어 있는 현상도 남 눈치 보는 경향에 한몫하는 것 같다.

일상적으로 서로 너무 의식하고 평가하는 탓에 정작 자기 삶을 지키는 게 어렵다. 다들 언제나 호흡을 빠르게 해서 살아가는 것 같다. 거기서 싫은 티를 내거나 벗어나려고 하면 바로 낙오자 취급이니까, 이를 피하기 위해서겠지.

나는 그렇게 눈치 보면서 살기 싫었다.


외모, 성격, 행동 등 늘 쉼 없이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게 피곤했던 나는,

호주에 와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 그것을 말로 풀어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남 신경 안 쓰고 내 삶에 집중하고 지키는 것. 어쩌면 우리는 너무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3. 밤까지 깨어있는 문화


내가 살던 서울의 한 동네는 배달음식 때문에 오토바이 소음이 새벽까지 이어져서

한국에 살 때는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새벽 2~3시까지 깨어있는 등

생활습관이 항상 망가진 상태로 지냈었다.


호주는 아침형 인간이 대다수인 나라라서

보통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 12시 전에 자는 분위기다. 남자친구인 요한이의 출근 시간 덕분에 나도 일찍 일어나게 되었고 그렇게 망가진 리듬을 고칠 수 있었다.



호주에 살면서 아침에 깨어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공원이나 바다를 자주 방문하여

멀게만 느껴졌던 자연과 많이 가까워졌다.

외부 환경과 그리 친하지 않은 내향적인  집순이였던 내가 이번 달에는 친구 커플과 캠핑도 갈 예정이니 가히 엄청난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30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 사회가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사람이다.

그래서 글 전체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이 다분히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어느 사회가 그렇듯 한국도 호주도 장단점이 뚜렷한 나라다.


호주에서 사는 나는 이민자라서 실수를 할까 봐 언제나 힘을 주고 긴장한 채로 살아야 한다. 내가 아무리 이 나라 언어를 잘해도,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오래 살더라도 여기 호주 사람들은 나를 외국인 취급할 것이다. 당연하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든다.

호주만의 편안한 분위기, 그리고 깊은 대화를 나누진 않더라도 지나가다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들끼리 눈 맞춤을 하고 웃어주는, 그런 분위기가 상당히 마음에 든다.


'호주'라는 새로운 환경에 날 던져놓아 보니

새로운 나의 면모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 지내면서 전혀 다른 나를 마주하는 것은 한국을 떠나보길 잘했다는 자기 긍정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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