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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Aug 16. 2023

후크선장식 인사법

말도 걸고 갈고리도 걸어버린



손에서 떠나 깊이가 보이지 않는 길가 배수구에 들어가 버린 기념일 반지, 어느새 주둥이의 털이 하얗게 바랜 강아지, 비가 억세게 내리는 날 좁은 우산아래 쪼그려 앉아 냇가에서 읽는 눅눅한 편지, 고등학교 내내 입고 다녔던 엉덩이 부분이 반질반질해진 교복


이별을 직감하거나 해야 하는 부분에는 기억이 담겨있고 기억의 형태는 갈고리 모양이라 나에게 박혀 떨어져 나갈 때 혹은 강제로 떼어내야만 할 때에는 꽤나 아픈 듯하다.


다만 탈부착이 쉬운 제형인 벨크로 같은 갈고리가 있는가 하면 생선의 주둥이에 꿰인 바늘처럼 깊고 단단히 박힌 갈고리가 있다. 어떠한 형식의 이별이던지 나에게 꿰인 갈고리를 내가 빼고 싶은 대로 아프지 않게 뺄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주로 빼는 대상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기에 회수하기에 급급하여 나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그렇게 피가 터지던 살점이 떨어져 나가던 무수한 갈고리들은 무례하게도 예고도 없이 뜯겨 나가곤 했다.






육감을 믿느냐 하면 당연히 그렇다. 예전에는 그저 추측에 기반한 수많은 방향들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몇 개의 답을 유추해 그 답에 대한 방안 또는 대처를 머릿속에 미리 입력해 두어 '육감이었다'라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 미리 만들어 놓은 방안을 꺼내어 놓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안전과민증의 사람이 조금 더 육감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미어캣정도의 예시를 말하자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이미지로서는 미어캣이 겁 많고 주위에 두려움에 두리번거리는 동물이다.


그러나 나의 편협한 생각으로는 자신과 무리를 지키는 굳건한 초병이며 게으르지 않고 직업의식이 투철한 군인정도로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육감이 믿기 힘들 때에도 있다. 정확히는 믿기 싫은 현실에 부딪치려 할 때에 느껴지는 공기의 냄새정도가 비슷한 단어겠다. 예를 들어 가을이 지나 겨울이 막 펼쳐진 새벽의 새초롬하고 파란 냄새라든가 혹은 출근날 알람을 안 맞추고 잠에 들었을 때 개운하게 기상했지만 시간을 보기가 두려운 찜찜한 지각의 기분이라던가 무언가는 육감으로 느껴지지만 오히려 오감으로 믿기는 싫을 때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이별은 언어보다 행동으로 행동보다는 분위기나 감정으로 먼저 다가오기 마련이다.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시간이 정해 놓은 알람 같은 것이나 다름없기에 이별이 아닌 파트타임 근무 정도로 넘겨짚곤 한다. 근무시간이 지나버리면 추가근무에 지치거나 과도한 업무에 지쳐 무너져버리기에 정해둔 시간대로 적당히 마무리하는 것이 좋았다.


시간이 간섭하지 못하는 정해지지 못한 여러 가지의 것들은 부패하지도 낡거나 바래지도 않았으나 오히려 더욱더 믿기 힘들고 아팠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더욱 공포스럽거나 기대되기 마련이다.


직접적인 다른 말로 오감적인 두려움은 대비하기에 편하다. 무서우면 그대로 무서워해도 되며 도망치고 싶으면 팔다리를 바삐 움직이면 되겠지만 어디선가 옥죄여올지 혹은 이미 갈고리에 박힌 지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어떠한 형태의 정신상태에도 박히기 좋은 예리하고 걸어 뜯기 좋은 갈퀴나 낫 같은 모양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피어싱매니아 고스족이 되어버린 정신상태는 안타깝게도 별 다른 방법 없이 누군가가 피어싱을 걸면 걸리고 빼면 아파해야 하는 사물적인 요소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사용자가 나의 정신세계를 사용하기에 사물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반대로 나 또한 수많은 갈고리를 걸었기에 원망하거나 미안한 마음은 없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 세계에서는 우리는 모두 후크선장이고 팅커벨이나 피터팬 따위는 없는 바다 위 낡은 해적선이며 무겁고 예리하게 닦아놓은 닻과 한쪽 팔 또는 한쪽 갈고리 그리고 악의가 없다를 표현하는 듯 표백제로 매일 빤 듯 검댕 없이 새하얀 흰색 천을 두른 돛뿐이었다.


그러니 서로의 갈고리가 걸리는 것 또한 손을 잡는 것이고 어떠한 것과 이별해 상처에 딱지가 굳어버린 것조차 그저 손을 놓친 것뿐이다.


상처를 보며 아파하지도, 수많은 갈고리에 지치지도, 어떠한 것에 갈고리가 두려워 다가가지 못하는 것도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는 듯하다.


언어를 전달하려 말을 걸어버리는 것도 누군가에겐 갈고리가 박힌 것이며 무심코 건넨 악수가 그에게 악수가 되어 상처를 입힐 수 있다.


모든 건 마음먹기 달렸지만 그런 걸 신경 쓰고 의미를 둘만큼 우리는 상냥하지 않고 그들과 같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음 한다.


우리는 모두 후크선장이고 피어싱매니아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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