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꺼풀이 없는 저시력의 핑곗거리
안광이 무뎌진 것은 얕은 살랑임에 흩날려 인지하지도 못하게 쌓여버린 먼지 같은 과거 때문도 아니며, 누군가가 밟은 흙탕물에 튄 거무죽죽한 땟국물도 아니었다.
어릴 적의 사진들을 보면 꽤나 많은 것이 지금과 달라진 것을 보곤 한다. 아마 그중 가장 빛났던 건 굵직하고 직관적인 표정도 매끈했던 피부도 아닌 깨끗한 눈빛이 먼지 쌓이고 얼룩진 사진 속에 유독 빛나고 있었다.
과거는 먼지와 비슷해 언젠가는 켜켜이 쌓여 어떠한 조치를 해야 할 정도의 무게감이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눈두덩이에 쌓이면 스르르 감겨 추억이 될 테고, 입가에 쌓이면 입술의 얕은 달싹임으로 먼지가 떨어질 때까지 침묵을 유지하곤 잠기겠다.
손이 닿지 않도록 설계해 놓은 투명한 유리 선반 위칸에 쌓이는 것은 애써 무시하여 잊어버리곤 일부러라도 찾지 않으려고 한다.
예견되어 있거나 원하는 것은 상자에 담아둔다.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고 언젠가 열었을 때의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 그리고 당시의 솔직함에 어떠한 무게감도 담지 않기 위함이다.
맑고 땡그랗던 눈망울이 지금은 없다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사실은 지금도 마음에 드는 편이다.
그저 보이는 것이 많아져 눈을 반쯤 감게 된 것이고 나의 도서관엔 유실되는 것이 많아 포기하는 참에 편하게 가라앉은 것이라 생각한다.
늘 눈이 큰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막상 당장 눈을 크게 떠보아도 세상이 조금 더 넓게 보이고 가장 좋은 건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아도 눈에 하늘이 조금이나마 더 담긴다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쌍꺼풀이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조금 더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해보았지만 눈을 크게 뜨면 눈을 질끈 감는 것도 오래 걸린다는 생각에 그들의 고충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내 밋밋한 눈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뜨기 어렵더라도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견뎌내고 유지하는 것이 나에게 맞는 방향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
밋밋하기에 좋은 점은 굳이 크고 자세히 보기보다는 약간의 흐릿함을 더해 대상을 정확히 인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말해 시각으로 주는 만족감보다 다른 것으로 느끼는 것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에도 그렇지만 나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거나 혹은 지금보다 훨씬 좋은 옷을 입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옷을 고르는 입장이고 어떠한 옷이든지 간에 내가 선택한 옷임에는 변함이 없다.
안경을 쓰고 자세히 보니 더럽고 해진 천이여도 괜찮다. 나는 그렇지 않고 그것은 나의 것이라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