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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May 02. 2024

모든 스토리에는 ‘위기’가 있다

조교사 면허 반납을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볼까 하루에도 수십 번 고민을 한다. 저녁이 되면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 새벽에 눈을 뜨는 것이 겁이 난다. 사람들과 눈 마주치고 인사를 하는 것도 두려워서 사무실 밖 출입을 최대한 자제했다.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경주마를 관리하는 일 말고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기나 할까?” 스스로에게 수백, 수천 번 질문을 하다가 새벽 동이 트는 걸 보고 다시 일을 하러 마구간에 가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한숨 한숨 쉬는 게 힘들었다.      

14년 차 조교사 생활을 하면서 3개월이 지나도록 우승을 못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조교사 생활의 시작은 화려했다. 여성 조교사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상위권 성적을 수년간 유지해 오다 2년 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올해는 첫 승 신고를 3월 중순에서야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교사는 성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이 생활을 하는 동안은 조교사라는 직업 자체가 마치 나의 전부 같이 느껴진다. 성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인생은 패배자 같았다. 성적이 좋을 때는 말 수급도 어렵지 않았고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는데 단지 성적으로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만 같아 비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좋은 경주마를 발굴하고 수급하고 훌륭한 경주마로 만들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 적어도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성적이 안 좋다고 벼락치기로 공부를 해서 성적이 나는 그런 종목이 절대 아니다. 새로운 길을 찾지 않은 이상 조교사로서의 삶을 계속 이어 나가고자 한다면 당장의 좋은 성과는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묵묵히 2,3년은 열심히 꾸준히 견뎌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포기라는 단어는 마치 금기어처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말을 타고 관리하는 일만큼 잘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나는 말이 좋고 경주마를 관리해서 경주에 내보내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단지 성적으로서 나 자신을 타인에게 증명을 해내야 한다는 가장 큰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 이 조교사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고 당연한 숙명이며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포기를 한다는 것은 지금 현 상황에서는 다 잃는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도전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잃을 것 없이 무언가는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나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포기와 도전, 두 가지를 저울 위에 올려놓는 다면 당연히 도전에 무게가 쏠리겠지. 이성적인 판단만큼 쉽지만은 않다. 심장을 옥죄어오는 스트레스와 그 과정이 각기 다른 의미로 나를 힘들게 하니 나는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착 상태에 빠져있다. 어떻게 극복을 할까.. 이 어둡고 끝이 없는 터널을 벗어나고만 싶은 심정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을 사랑한다는 것인데 어떤 마음으로 이겨내야 할까.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내가 말을 사랑하고 이 일을 사랑하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 경주마들과 행복하고 싶다. 행복은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인데 이곳 경마장에서 행복을 찾고 싶다. 행복도 마찬가지 선택에 따라 불행할지 행복할지 마음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지금 당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체가 어찌 보면 행복인 것을.      

내가 좋아하는 인생 영화가 한 편이 있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제목은 ‘행복을 찾아서’이다. 주인공이 아들과 최악의 현실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성공하는 스토리의 영화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역경을 딛고 결국은 성공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 영화나 드라마 속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하는 주인공에게 나의 상황을 이입시켜 용기를 얻기도 한다.      

사람은 특히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힘들 때면 더더욱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다. 지금 나 역시 마찬가지 세상에서 나만, 내가 제일 힘들 것 같지만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때로는 버티며. 도전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수 없이 많은 역경을 딛고 이겨내는 성공스토리의 영화가 많은 이유도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나는 인생 최대의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또 이 보다 더 한 위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리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면 포기의 방향보다는 다시 한번 도전의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고 싶다. 꼭 성공이 아니더라도 도전해 가는 과정에서 깨닫고 얻는 것 자체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밑거름이 될지도 모르니까. 커다란 성공이 아니더라도 도전만으로도 작은 성공이라 생각한다. 그 성취감 또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행복이지 않을까. 앞으로도 수 없이 많은 시련과 위기 상황이 올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나태하고 주저하고 나 자신을 포기할까 말까 같은 어리섞은 짓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나 역시 이 상황과 위기를 잘 극복해서 기회로 삼고자 한다.     

지금 현재 이 시간은 너무 힘들지만, 나는 결코 내 삶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지금이 나쁜 시 기가 아니라 가장 값진 시간이었다고 말할 때가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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