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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용 Jan 14. 2024

화인 이야기

8. 말레이시아 부미부트라

싱가포르를 말라야 연방에서 쫓아낸 압둘 라만 총리의 우려대로 인구의 25%에 이르는 중국인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경제력이 더 커져가고 말레이인은 점점 더  경제적인 점에서는 종속적 위치가 되어갔다.

중국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주하여 와서 살고 있었던 인구가 있었지만 얼마 안 되는 인구이고 인구가 대폭 늘어난 것은 영국식민시대에 영국인들이 개발한 주석광,  철도공사, 사탕수수밭의  노동력으로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집단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영국 식민정치가 끝났지만 이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고  주로 도시에 정착하여 상업에 종사하면서 돈을 벌어 부를 축적했다. 중국인들은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협동하며 돈을 벌었다. 농사나 지으며 살고 있는 말레이인은 도저히 경제력 구축에서 경쟁이 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민족적 의식이 깨우쳐 들면서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에게'라는 의식이 팽배해져 갔다.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인과 중국인이 충돌한 사건이 일어난 지 5년이 지난 1969년,  이번에는 쿠알라룸프르에서 충돌했다. 이 사건을 5.13 사건이라고 하는데 발단은 5월 10일 총선에서 약진한 중국계  정당이 축하퍼레이드를 벌리고 있었는데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는 중국인이 빗자루로 말레이인을 쓸어버리는 몸짓을 하며 말레이인을 조롱했다고 하여 말레이인들이 격분하여 폭동이 일어났다고 알려졌다.

상점을 불태우고 차량을 불태웠다. 공식적으로 200여 명이 사망했다고 발표를 했지만 언론은 2000명이라고  추산했다. 다행히 이 사건은 중국인들이 많이 몰려 살고 있는 페낭과 이포에는 번지지 않고 쿠알라룸푸르에서만 국한이 되어 전국적으로 퍼지지는 않았다. 당시 총리 압둘 라만 총리는 계엄령을 발동하여 사태를 일단 수습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다음 해에 사임하고 부총리였던 압둘 라작 후세인이 총리가 되었다.

이 후세인 총리가 바로 그 유명한 '부미푸트라(Bumiputra)'정책을 세워 실행한 사람이다. 부미푸트라는 중국인에  대한 말레이인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한 말레이인의 우대 정책인데 1970년부터 지금 2020년까지 계산하면 무려 반세기를 지내고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불공정의 정책이다.

부미푸트라는 여러 의미로 해석하지만 기본적으로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에게'라는 의미이다.

중국인과 경쟁이 안 되는 말레이인에게 우대정책을 펴서 경쟁이 되도록 한다는, 어떻게 보면 비논리적 불공정법이다. 이 정책을 요약하면 중국인은 교육받을 권리를 제한하여 무식쟁이로 만들고 말레이인에게는 교육을 장려하여 유식하게 만들어 중국인을 통제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중국인은 무식하게 될 터이니 무식한 중국인은 국가를 운영할 권력을 갖지 못할 것이고  오로지 말레이인만  나라일을 맡아서 하도록 하는 것. 그래서 공무원,  군인,  경찰은 오로지 말레이인만 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을 하려면 말레이인 고용을 30% 보장하도록 하여 소득불균형을 해소하도록 했다. 중국과 대만의 교육시스템을 따르는 중화사립학교 모두를 말레이공립학교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입학의 90%는 말레이 학생에게,  중국인과 인도인에게는 10%만을 배정하고 말레이 학생에게는 학비를 거의 거저로 다니게 하고 중국인과 인도인에게는 학비폭탄을  부과했다. 말하자면 공립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할 생각을 하지마라 하는 선언적  정책이다.

그 결과 부미푸트라 원년인 1970년  당시 전체국부의 1.5%  밖에 안되었던 말레이계  경제력 지분이 지금은 30%  까지 올라왔다. 지금에 와서 이 정책은 인종차별이라 비판을 받고 말레이시아는 국제사회에서 정당성을 잃은 국가가 되었다. 21세기 벌건 대낯의 시대에 인종차별의  정책을 법률로 정해 시행하는 나라가 있다니, 이를 모르고 있던 사람이 그 사실을 알면  "진짜?"  하고 놀랠일이다. 해외 투자유치도 어렵게 되고 국제외교에서도 왕따가 되고 있다. 더욱이 말레이인의 우대정책은  그들의 자력 생존 의지도 꺾고 있어 국가 경쟁력이 약화되어 있는 처지이다. 2018년에 이러한 외교적 고립을 의식하여 정부가 유엔인종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말레이계가 적극 반대를 하는 바람에 비준을 철회해야만 했다. 말레이시아는 이 부미푸트라로 인하여 갈길을 잃고 앞으로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비판도 비등하다.

화인들은 그가 동남아시아의 어느 국가에서 살든지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그들 특유의 공동체에서의  협동과,  근면,  그리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지에 따른 집요함은 현지인이 흉내도 못 낼 돈벌이 덕목이다. 그러나 모든 중국인이 돈을 잘 버는 것은 아니다. 내가 건설회사에서 일할 때 미국인 세명과 한국인 세명으로 구성된 팀의 팀장으로 쿠알라룸프르에서 잠시 일을 했었는데  1982년  당시 내 주위에 있던 중국인들은 기가 많이 죽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공부를 많이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 영국식 학제의 중등교육 오디너리 레벨(Ordinery  level ; 4년제)을 마치고 장사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2년 정도 더 공부하는 것을 어드밴스 레벨(Advance  Level)인데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 그래도 학구열이 너무 강하면 외국으로 나가서 공부하면 된다. 2020년 지금에는 한국에도 이들이  유학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찌 되었던지 모두가 다 돈을 많이 번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차별정책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 화인들의 경제력도 대단하다. 특히 요식업과 요리사는 화인들의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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