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센트럴 그룹
센트럴의 유통사업은 CP의 유통사업의 주축이 되는 창고형 매장 마크로와 12000개 점포를 가진 세븐 일레븐으로서도 절대 대항할 수 없는 거대조직이다.
이 두 그룹 전체의 부(富)를 비교하는 데는 여러 가지 계산법에 의하여 누가 더 큰가, 적은가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순 자산가치로는 센트럴 그룹이 더 크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구태여 주식 시장이나 kvmi경제 도서에서 그 사업 내용을 검색하지 않더라도 태국에 사는 누구나가 일상으로 드나드는 친숙한 상업시설 브랜드의 센트럴 백화점이다. 태국 발음으로는 '센턴'이다. 일반 태국사람들에게 센트럴이라고 발음하면 못 알아들을 확률이 크다. '센턴'이라고 해야 알아듣고 길이라도 가르쳐 주리라.
그들이 일상 상업시설 브랜드는 다음과 같다. 센트럴 쇼핑몰, 로빈손 백화점, 빅씨 할인마트, 톱 슈퍼마켓, 타이 왓사도 건재 백화점, 홈프로 건재 백화점, 패밀리 마트, 파워 바이 전자제품 쇼핑 몰, 센트럴 호텔, 미스터 도넛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브랜드들이 사람들의 일상의 삶을 지배한다.
중국 남단의 하이난섬(海南島)에서 가난하게 살던 쳉신핑(鄭心平)이란 청년이 1925년 방콕으로 가는 배를 탔다. 그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대부분의 중국 이주자들은 태국에 도착하면 차오푸라야강 북쪽 강가에 있는 차이나타운에 정착하여 삶을 시작하는데 비해 쳉은 그 반대편 강 건너에 있는 돈부리(Thonburi)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창씨개명 태국 이름은 티앙 찌라디와(Tiang Chirathivat)이다. 티앙은 돈부리에 가게를 열어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재산을 불려 나갔다. 그는 3명의 부인에게서 26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오늘날 직계자손이 22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51명이 센트럴 그룹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본격적 사업의 확장은 그의 장자 삼릿(Samrit)으로부터 로 생각되는데 삼릿은 1925년 생이니까 아버지 티아우 찌라디와가 태국에 이주한 해인 그해에 출생했다. 삼릿이 1947년 덮밥에서 차오프라야강을 건너와 드디어 중국인들의 경제 중심인 차이나 타운에 입성하고 가게를 열었다. 그의 나이 스물두 살로 계산된다, 1956년 차이나 타운에 태국 최초의 백화점, 센트럴 백화점을 개장했다. 최초의 백화점개장 이래로 센트럴은 태국 최초라는 말을 듣는 여러 개의 사건도 만들었다. 태국 최초로 '고객 서비스'라는 말을 썼고, 정찰제 가격표, 바코드사용, 로열티라는 말등을 최초로 사용했다. 센트럴 그룹은 현재 60개의 백화점과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고 호텔, 식당등의 5000개의 아웃렛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센트럴 그룹을 이끌고 있는 최고 책임자는 토스 찌라디왓인데 그는 아버지 삼릿의 8 남매 자녀 중 막내로 1964 년생이다. 미국 코네티컷의 Wesleyan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콜롬비아 대학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고등학교는 마이애미에 있는 사립학교를 다녔다. 센트럴 그룹은 중국을 해외 베이스로 삼고 사업을 하는 CP와는 달리 유럽과 미국으로 진출해 있다. 2011년 이탈리아의 백화점 체인 라 리나센터(La Rinascemte)를 인수하고 유럽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2013년 덴마크의 대표적 백화점 일룸(Illum)을 인수했다. 2019년 독일의 '백 년 백화점'이라고 불리는 카데베(KaDeWe)의 지분 50.1%를 인수해 대주주 운영권을 획득했다. 이탈리아의 로마와 밀라노에 있는 유명 플래그스토어도 인수했다. 미국 네바다의 Shell Corporation 몇 개도 소유하고 있는데 그들의 가족이름 찌라디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동남아 중국 화교들의 활동 범위가 그런 식으로 늘어가는 하나의 예를 보여준다.
나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저학년 때 배우는 경영학 개론에서 '슈퍼마켓'이란 시장형태를 배웠는데 당시 경영학에서는 중요하게 대두되었던 신조어였고 마케팅학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용어이기도 했다. 당시 한국 사회의 경제구조에서는 슈퍼마켓이란 용어가 금방 이해되는 개념은 아니었다. 내가 그나마 기억하고 있는 개념은 인구 밀집지역인 도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로 교외에 널따란 부지와 함께 세워지는 큰 상점이라는 정도이다. 그래서 고객이 슈퍼 마켓을 가려면 자동차를 운전하여 교외로 나가 널찍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쇼핑을 한다는 상상의 시장이었다. 슈퍼마켓이란 용어는 시험문제로도 출제될 그런 새로운 용어였다. 요즈음은 동네 구멍가게를 '슈퍼'라고도 한다. 슈퍼마켓의 줄임말이 슈퍼일 텐데 동네 잡화 가게를 슈퍼 마켓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오답이다. 슈퍼란 말은 '크다'라는 의미를 포함한 것이다.
경기도 분당에서도 더 남쪽, 용인의 죽전을 지나 구성면의 개울을 따라 난 길을 어린 아들 둘을 현대 자동차 포니 자가용에 태우고 지나가다가 아이들이 소변이 마려워서 그랬던지 개울가에 차를 세우고 비탈진 뚝을 내려갔는데 볕 좋은 초 가을 메뚜기가 개울의 수초더미 위를 기승(氣勝)으로 중구난방 뛰고 있었다.
더 어릴 적 가을겆이가 시작되기 전 누렇게 익은 벼가 들판에 넘실댈 때면 논배미에 빈병을 들고나가 들고 튀는 메뚜기를 잡던 그때의 추억으로 본능적으로 메뚜기를 잡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도 덩달아 메뚜기를 잡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한 마리라도 잡았는지 못 잡았는지 기억은 없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때에 그 개울가 동네에 아파트가 개미집처럼 들어 찾고 우리 식구는 공교롭게도 그곳으로 이사를 하여 십수 년을 넘게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늦둥이 손주까지 보았다. 그 개울은 아직도 그곳에 있다. 그러나 메뚜기는 어림도 없다. 그런데 메뚜기를 잡았던 때로부터 얼마 후 그 개울가에 내가 대학에서 배웠던 개념의 슈퍼 마켓이 들어왔다. 당시의 그 슈퍼마켓 주위에는 맞은편으로 야산과 밭뙈기, 뒤편은 개울과 경부고속도로, 그 사이에는 쓸데없는 공지만 있는 인구하고는 상관없는 지형이었다. 맞은편 야산의 비탈에 가로수로 단장된 오르막 포장길이 구부러지면서 나 있었는데 그 길은 야산 너머에 조성된 골프장으로 가는 길이다. 그야말로 교외에 세워진 대형 잡화상점이라는 점에서 바로 내가 관념적으로 알고 있던 슈퍼마켓이 맞다. 미국의 최대 할인 매장 월마트가 이론적으로 합당한 곳에 세운 대형 슈퍼마켓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월마트는 그런 미국식 개념의 슈퍼마켓이 한국에서는 안 맞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철수를 단행했다. 인구 밀집지대에 구멍가게를 대체하는 슈퍼마켓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한국식 슈퍼 마켓인 이마트 슈퍼마켓체인이 이를 인수하고 이마트 트레이더스라는 이름으로 운영한다. 그래도 기존 그들의 슈퍼마켓과는 차별하여 미국식 창고형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곧바로 개미집 아파트가 순식간에 지어지고 인구 밀집지역이 되었다. 그리고 이 슈퍼마켓은 더 이상 교외에 세워진 미국식 할인 마트는 아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지하철도가 지날정도로 복잡한 도시로 변모했다. 내가 차를 세우고 소변을 보고 메뚜기를 잡던 그 개울은 탄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개울을 따라 쿠션이 있는 재료로 포장을 하여 사람들이 걷거나 뛰며 운동을 하는 조깅로가 마련되어 있다. 소변을 보려면 길가에 마련되어 있는 화장실에서 해야 한다.
한적한 교외에 세워져 여유롭게 자동차를 타고 가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신선한 먹거리 재료를 사는 그런 곳은 더 이상 아니다. 아무 데나 마구 있다. 그리고 시장통 장터, 동네 구멍가게 모두를 흡수해 거두어들였다. 그래도 버티는 밉상의 구멍가게가 있으면 미니 마트라는 이름으로 손을 보아 싹을 자른다. 사람들이 이런 마트나 여러 이름의 패밀리 마트를 '슈퍼'라고 부른다. 뭘 어쩌랴?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그것이 원칙에 맞는 일인데. 그런데 태국의 슈퍼마켓의 양상을 보면 한국은 그나마 양반(?)이다. 태국의 슈퍼마켓과 세븐 일레븐 등의 패밀리 마트의 기승(氣勝)은 사람들 모두의 일상(日常)을 접수했다. 중국 광둥 성 차오저우( 潮州) 출신 씨아(謝)씨의 CP그룹이 운영하는 테스코 로터스(Tesco Lotus) , 그리고 세븐 일레븐, 하이난(海南) 출신 쳉(鄭)씨 가문의 센트럴그룹의 빅씨(Big C) 슈퍼마켓과 톱 슈퍼(Top Super)가 바로 그들이다.
그 외에도 중국 화교 출신의 다른 슈퍼와 백화점이 더 있지만 우선은 CP그룹과 센트럴 그룹의 슈퍼마켓이 절대 우위의 것이기 때문에 이들부터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