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이 없다 이제 정말.
글을 쓰고 싶었고 이제 생각만 하는 짓은 그만 두고 실천을 하자 라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작가신청을 해서
글을 진짜로 썼다. 어떤 큰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쓸 거리는 많았고 영국에 사는 이 5년동안 제일
큰 몫을 차지 했던 연애 이야기는 쓰면서도 재미있었다. 다시 한 번 예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였고,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시간이어서 좋았고. 그리고 때 마침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가 있길래 꾸준히 쓴 글을
지원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브런치 북을 만들어 출간까지 했다.
출간이라는 의도치(?) 않았던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쓸 거리가 없어졌단 것도 문제 였고 매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쓰기로 시작하던 내 하루가 갑자기 뭉그러진 듯한 느낌이어서 썩 기분이 좋지도 않았다.
뭔가 취준생/백수의 신분이었던 나에게 그나마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몇 안되는 활동 중
하나였는데. 여튼 그렇게 출간을 하고 나서는 취준생을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한식당에서 감사하게도
관리해보라고 해주신 인스타그램의 컨텐츠를 만드는데 집중했다.
이걸 잘 해서 포트폴리오를 탄탄하게 만들어 높은 영국 취업의 벽을 뚫어야지 라는 꽤나 grand한 계획을
기반으로 의욕이 넘쳤지만 하는거에 비해서 나오지 않는 결과는 조금씩 조금씩 내 열정의 밀도를 낮춰갔다.
근자감으로 가득차 있던 나에게 곧바로 돌아오지 않는 결과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사실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인내심을 요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거 조금 했다고
원하는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 단 걸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급락하는 내 의욕을
보자니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단계까지 와버렸다.
게다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내 비자. 영국에서 석사까지 했으니까 취업해서 경력쌓고 잘하면 영국에서
쭉 살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내 여름 밤의 꿈이었을까.
사실 요즘 내 미래만 생각하면 힘이 쭉- 하고 빠진다. 내 지난 날들에 대한 후회도 들고. 내가 지금까지
이 삶에 안주해왔기 때문에 결국 지금 이 정도의 결론에 도달하고 만 걸까 하는. 그런.
진짜 사람이 웃긴게 이제 곧 돌아갈 떄가 되니까 영국에 사는게 더 재밌어 지는거.
이제 정말 한국에 살게 되면 영국에서 사는 것과는 아예 다른 형태의 삶을 살게 될 텐데 내가 과연 투덜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내 마음을 꽉 하고 채우는 요즘.
긍정의 힘을 믿기에 잘 될거라고 되뇌이려고 노력하면서도 또 갑자기 훅- 하고 찾아오는 걱정과
회의감, 그리고 두려움에 잠식되버려서 요즘은 하루하루가 조금 괴롭다.
사주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눈다고 하면 난 완전히 전자 쪽이다. 잠깐 한국에 돌아갔을 때
사주 봐주셨던 분이 이번에 영국 가면 안 돌아온다고 했는데, 에이. 제발 기적이 생겨서 영국 땅에 발 딱
붙이고 정착 할 수 있었으면 싶다.
갈 곳이 없다 이제 정말.
비자 만료 정말 얼마 안남았다. 너무 답답해서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겨봤다.
그렇지만 잘 될거라고 믿자. 나라도 나를 믿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