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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Mar 17. 2024

돌아가신 장인을 만났다

글쓰기 더할 나위 없는 날이다. 나를 찾는 전화벨도 울리지 않고, 잠을 자야 할 만큼 지쳐 있지도 않다. 누구도 나를 부르지 않는다. 조용히 글을 쓸 수 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볼 때면 늘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글을 해치울 때는 이 모든 화면이 가능성처럼 보이다가도, 무얼 써야 하지 고민하는 순간 빈 화면은 막막함이라는 감정으로 바뀌어 버린다. 새로 산 노트에 처음 펜을 대기가 망설여지는 것처럼, 매일 글을 써 왔음에도 빈 화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노트를 바꾸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글을 써내려 가기 어려운 기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른 저녁으로 먹은 떡볶이가 양이 많았는지 거실 소파에 앉아 선잠을 잤다. 낮 시간에 잠을 자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과식한 탓에 피가 위장으로 다 몰린 때문일까, 달콤한 선잠에 일 이십 분간 빠져들었다. 잠을 깨고 나니 여전히 주위는 고요하다. 아내는 임신 후에 이 시간만 되면 잠을 잔다. 아내가 누워있는 불 꺼진 안방은 여전히 조용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조금은 서늘한 서재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직 의식 속에 잠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는다. 잠을 깨기 위함인지, 글감을 찾기 위함인지 인터넷을 뒤적인다. 쓸 만한 것이 없는지, 몽롱한 잠기운을 떨쳐 버릴 신나는 일은 없는지 하면서 말이다. 한참 서칭을 하다가 책을 펴 든다.


책을 몇 줄 읽는 둥 마는 둥 휙휙 넘긴다. 책을 읽을 마음이 되지 못하고 글감을 찾는 마음만 된다. 마음은 글쓰기에 가 있음에도 그럴싸한 글감 건덕지를 찾으려고 책을 뒤적이는 형세이다. 책 내용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마음을 쏟지 못하는 일에서는 그 어떤 수확도 얻을 수 없다. 수박 껍질을 혓바닥으로 핥아 보아도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여전히 잠이 덜 깬 의식을 데리고 빈 화면 앞에 다시 앉았다. 머릿속을 뒤적여 보아도 쓸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쓸 것이 없는 건지, 떠오르는 게 있는데 쓰고 싶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곧장 쓰기로 들어가지 못하고 또 시집을 한 권 펼쳐 든다. 장인께서 살아 계실 때 남긴 시집이다. 나의 장인은, 시인이셨다. 장인은 아내와 내가 정식으로 만나는 사이가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그분께서 계셨더면, 쓰고 사색하는 삶에 대해서 더할 나위 없는 동반이 되었을 것이다.


장인의 시집을 찬찬히 읽는다. 장인의 시집은 장인의 나이 43세 때에 발간된 것이다. 현재 내가 34살이니,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세상을 사신 후에 펴낸 책이다. 아내가 열 살 때쯤 발간한 시집이다. 시집 속에서 깨끗한 글이 주는 울림을 만끽한다. 말 한마디, 눈빛 한 번 주고받은 적 없지만 내 장인은 그의 글을 통하여 내 마음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마음을 울리는 시 한 편을 깨끗한 종이를 꺼내 받아 적어본다. 목사이셨던 나의 장인은 틈이 날 때마다 글을 쓰셨다고 한다. 장인께서 남기신 글들을 읽으며, 글을 사랑했던 순수한 양심을 가진 그분과 함께 있는 기분이 되곤 한다. 


장인은 다양한 글을 쓰셨다. 자연을 노래하기도 하고, 자연 속에 깃들인 창조와 섭리에 대해서도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의 글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그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사람이었다. 쓸쓸한 간이역 풍경 속에서 삶의 애환을 지닌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고, 작고 가녀린 것들 속에서 순수를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쓰시고자 하였던 글은 작은 진실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며 가지는 의문, 마음속 깊은 곳 갈증에 대하여 쓰셨다. 그는 이 세상에 있지 않지만 그의 글은 여전히 남아 사위인 내 마음을 울리고, 울린 내 마음은 또 한 편의 글을 쓰는 마음이 되었다.


나 또한 진실한 글을 쓰리라. 그리하여 나의 짧은 삶 이후에도 남아 울림을 주는 글을 남기고 싶다. 화려한 글, 다양한 기교를 사용한 글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지 않는다. 화려한 글이 잠시 잠깐 눈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읽은 후에 좀처럼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글은 진실에 한없이 가까운 글이다. 매일 먹는 집밥 같은 글을 쓰고 싶다. 화려하지 않아도 깨끗한 순수의 잉크로 찍어낸 글을 쓰고 싶다. 


글은 삶을 담는다. 담백하고 정갈한 인생을 꿈꾼다. 내 삶도 내가 쓰는 글과 같기를 바라 본다. 살지 않으면서 쓰는 것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진실을 살지 않을 바에 뭣하러 꾸며낸 진실을 글로 쓴다는 말인가. 내 글 같은 인생, 내 인생 같은 글을 꿈꾼다. 


임신 5개월 차가 되면서 제법 임산부 티가 나는 아내가 잠에서 깼다. 아내도 떡볶이 과다섭취 증상으로 배가 부른 지 거듭 배부름을 호소하고 있다. 장인과의 데이트를 한 수 접어두고, 배부른 아내를 달래러 가야겠다.


희망하는 존재는 아름답다

                                                    박성호

잿빛 하늘 아래

얼어붙은 깊은 허공 속에서

삭풍에 흐느끼며

허허로운 몸짓만 애처롭게

깨어있는 겨울나무


갈매빛 무성했던

지난 여름을 그리워하지 않고

연두빛 산란한

새봄을 꿈꾼다


빈 가슴 고이 열어

가냘픈 산새 한마리

외로운 사랑노래 몇마디

눈물겹게 사랑할 수 있는

겨울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그 가난한 영혼에

고요히 깃든

아름다운 희망 때문이다


텅빈 삶일찌라도

새 세상을 위하여

희망하는 존재는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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