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

<하데스2>와 <알쏭달쏭 캐치! 티니핑>

by 장원희

클리셰, 클리셰란 판에 박은, 진부한 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이다. 그리고 오늘날 예술 작품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이기도 하다. 예측 가능할 정도로 익숙한, 어디선가 한 번쯤은 봤을 진부한 소재와 설정을 가리킨다. 클리셰적인 전개는 흔히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어째서 그 요소들이 클리셰의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문학은 우리의 보편적인 감정을 다룬다.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아주 오래전 고전작품에서도, 낯설기만 한 외국작품에서도, 당대의 사회를 몰라도 우리는 이 생소한 문학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작품에서 판에 박힌 듯 사용되어 클리셰가 된 것들은 이 보편성의 결정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는 클리셰적인 전개를 좋아한다. 골라 보는 클리셰들이 몇 가지 있다. 나만의 실패하지 않는 작품 취향 같은 것이다. 이는 개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클리셰가 가져다주는 예측 가능함은 양날의 검이다. 그 순간을 기대하며 보게 만들기도 하며 클리셰라고 느껴지는 순간 작품 전체의 맥락이 읽히기도 한다. 나의 경우 작품을 통해 겪고 싶은 감정선과 장면이 있는 편이기에 클리셰를 선호한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각 작품의 전개와 여운을 찾아 헤맨다. 언젠가 마음이 편안해졌을 때, 그래서 작품에 쓸 심적 용기가 충분할 때 아주 새롭고 예측 불허의 전개를 체험해보고 싶기도 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클리셰는 역시 인물에 관한 거로, 악역의 유형 요소이다. 나는 ‘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와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 클리셰에 약하다. 매번 비슷한 전개, 비슷한 유형의 인물임을 알면서도 그 익숙한 흐름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따라가게 된다. 왜냐면 그 인물이 좋으니까. 악인도 사실은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서사를 가지고 있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의 보편적인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음을 느끼는 순간이 참 좋다. 어쩌면 성선설과 일부 맞닿아있는 설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작품에 등장하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한 때 대적했던 상대라도 포용할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주인공이 좋다.


이 클리셰 유형의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은 정말 몹시 많다. 없는 걸 찾는 게 빠를 정도다. 그렇기에 생각나는 작품 두 가지만 이야기하려 한다. 우선 가장 최근에 빠졌던 인물이 등장하는 게임 <하데스2>이다. 오늘날은 게임에도 서사와 작품성이 요구되는 대상이 많다. 이 작품 또한 그렇다. 게임의 초반까지는 클리셰를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전개가 보였다. 그때부터 더욱 열심히 플레이하게 되었다. 그 순간을 봐야 했으니까 말이다. 또 하나는, <알쏭달쏭 캐치! 티니핑>이다. 요즘 어른들의 일명 ‘등골브레이커’로 유명한 시리즈의 2기로, 다른 기수에서도 악역 클리셰가 등장하긴 하지만 2기가 그 정수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조금 울었다. 그만큼 둘의 감정적 소통은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더라도 감동적이다.


이런 클리셰 전개 중 내가 가장 좋아하던 부분은 악역이 더 이상 악역이 아니게 되는 계기이다. 대부분의 악역은 갑자기 어느 날 스스로 교화되지 않는다. 이들을 녹이는 건 바로 주인공이다. 보통 주인공에겐 쉬운 선택이 주어진다. 바로 악역을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선택을 따르지 않는다.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끝까지 악역에게 손을 내민다. 삭막한 현실에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그리고 나도 꿈꾸게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어떤 사람이든 진심으로 다가가면 통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는 사람을 쉽게 믿기 어렵고, 손을 내미는 일은 더 어렵다. 쉽사리 포기하곤 만다. 그런데도 이런 작품을 보고 나면 나는 잠깐이나마 환상에 빠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아주 보편적이고 틀에 박힌 이 클리셰가 우리의 가장 깊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다. 실은 많은 우리가 서로를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꿈꾼다고 생각하면 마냥 환상이 아니라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더 좋았던 게 아닐까. 현실의 포용을 꿈꾸며, 나와 대척하던 이들과의 깊은 화해를 꿈꾸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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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 올리던 수요일 브런치북을 마무리하고 다른 주제의 수요일 연재 북을 만들었습니다. 에세이는 1월 말 2월 초 쯤에 새롭게 연재하려고 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