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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al Song Feb 22. 2020

무학의 놀이터

Books: 잔을 부딪치는 것이 도움이 될거야 2.

먹는다, 마신다.

뷔페에는 한 동안 이 방식이 반복됩니다. 이 시집에는 시어, 시인의 말과 사고, 그들의 심어 둔 이미지와 그들의 일상이 계속 반복됩니다. 하지만 다 똑같지는 않지요. 다 도미솔 같아도 다 시레솔 같아도 다 도파라 같아도 그 변주는 끝없이 이어집니다. 묶음 시집, 여러 종류의 시가 끝없이 이이지는 변주곡.


[소주는 달다 김사인]

먹고 마시는 방법도 가지가지, 먹는 방법에도 창조적 사고가 필요하고 마시는 방법에도 주사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마시기, 핥기, 빨기. 술을 섭취하는 방식도 각양각색. 소주를 빨대로 빨아먹었다는 전설이 어느 곳에서든 여전히 떠다닙니다. 술은 전설을 만든다, 술이 시를 만들기도 한다는 생각이 바람에 스치웁니다.


[빗소리 박형준]

 술잔 건너편에 여인, 술잔 건너편에 누군가는 늘 있습니다. 건너편에 아무도 없이 혼자 마시는 술, 건너편이 빈자리 일 때 건너편 없이 정말 혼자 일 때, 그때는 비 오는 날이겠죠, 아마도. 빗소리는 혼술의 유령입니다.


[월하독작 이백]

 혼자면 어떻습니까, 혼자가 아닙니다. 달도 있고 그림자도, 참, 술도 있네요. 혼자면 어떻습니까.

'그림자가 와서 셋이 되었네' 혼술이라도 외롭지 않다는 시인의 고백, 이백의 고백이 되려 더 쓸쓸합니다.

"난 외롭지 않아요"

세상에 가장 쓸쓸한 독백입니다.

이백의 시를 보면 도자기 술잔 이정록 시를 보면 막걸리 사발 이현승의 시를 보면 맥주 글라스가 생각납니다.


[생활이라는 생각 이현승]

술의 필연은 해장을 부르는 것 생활의 필연은 술을 부르는 것.

"술이 그렇게 좋아?"

삶(생활)에 상처가 드문 사람은 이 질문에 답을 못 할 것 같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신동엽]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자면서 허망하게 우스운 꿈 꾸었지' 술 먹고 꾸는 꿈 그 꿈에 어울리는 안주는 무엇인지, 신동엽 이 시인 좋아합니다.

그의 혁명적인 언사도 그 마음 깊은 향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 다른 대상 고통받는 대상에 대해 깊이 연민하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 시인이 혁명가이고 혁명가는 시인이어야 합니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시인의 손과 발에 박힌 영원히 뽑히지 않을 못 같은 것입니다.


[만하 이현호]

시인은 기억합니다. 술이 대신 기억하기도 합니다. 연인과 첫 만남을 설렘을 기억합니다. 연인이 남긴 마지막 인사말을 마지막이라는 어색함을 기억하는 술만이 유일한 연애의 증인입니다.

뷔페를 먹다 보면 다 맛있을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욕심.


" 이것 봐 별로 인 것도 있지"

 묶음 시집을 읽다 보면 이런 말도 할 수 있습니다. 맛이란 그런 것입니다. 고만 고만한 맛도 있습니다. 다 입맛 탓, 혀 탓입니다. 그러니 소문난 맛집을 무턱대고 믿으면 안 됩니다. 맛있다라는 다른 사람의 혀를 믿으면 안 됩니다. 맛을 보는 혀, 말하는 혀 둘 다 쉽게 믿으면 맛없는 것을 먹게 됩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내 혀를 믿는 것, 내 입맛을 믿고 내 취향을 믿고 직접 맛보는 것 밖에 없습니다. 많이 먹어봐야 맛있는 것을 먹을 확률도 높습니다. 많이 읽어야 좋은 시를 읽을 확률도 높아진다 믿고 열심히 먹어봐야 합니다. 뷔페의 미학 열심히 먹는다입니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이면우]

야식은 위험합니다. 밤의 눈물도 위험합니다. 둘 다 다음날 아침 후유증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죠.

술과 울음은 같은 말입니다. 술이 없어도 눈물이 나면 그날은 술 마실 날이기도 합니다.


[혼자가는 면접 허수경]

'적요로움의 울음' 적요로움이라는 말이 입에 자꾸 붙습니다. 감칠맛 같다고 할 가. 적요로움, 울음 어두운 색깔의 말인데 자꾸 입속에서 맴돌며 침이 나는 듯 한 느낌, 말 맛이란 이런 건가 싶네요.

쓴맛을 알 때, 쓴맛이 온 세상에 눈물처럼 내릴 때, 쓴맛의 깊음을 느낄 때, 그때 인생은 시작됩니다. 술 한 병으로 쓴맛을 달랠 수 있으면 참 다행입니다.


[벼랑끝을 달리네 이병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난 이 사람 좋습니다.

오버네요.

난 이 시인인 좋습니다.

과장이네요.

난 이 시인의 시가 좋습니다.

적당하네요.

따뜻한 시선. 따뜻한 라떼를 마시는 기분. 뷔페라면 배부르기 전 먼저 마셔두는 카페 라떼 같은 시입니다.


[당신이라는 세상 박준]

술이 깨고 나서 술 마신 것을 후회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해장이 관건입니다. 관껀이라고 읽으면 아니 된다 관건입니다.

 해장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얼마나 성실히 기능을 해서 숙취를 잡을 것인지 '술이 깨고 나서 처음 바라본 당신의 얼굴이' 해장을 강요하는지 해장이 필요 없게 만드는지 모든 술로 만든 드라마의 엔딩은 아침, 해장으로 결정됩니다.

 다만 술 깨고 나서도 혼자 아침을 맞이하는 자 혼자서 해장을 하는 자 바커스 신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뷔페에 시간제한이 있다면 시간이 다 되어 갈수록 시간제한이 없지만 위장에 제한이 있다면 위장이 다 차올라 갈수록, 어떻게 마무리할 가 고민이 됩니다. 배부른 배에 마지막 한 접시 폭탄을 던질 것인가 한계에 다다른 배를 위해 가벼운 것을 넣을 것인가 마지막 결정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피날레로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의 클라이맥스인 장대한 합창 같은 것이 선택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선택 최고의 선택의 순간이 조여옵니다.


젠장 맞을, 뷔페의 미학은 따로 주문을 위한 선택이 필요 없다는 것, 실수였나 봅니다.식당에서 선택은 다섯 가지 중에 한 개, 뷔페에서는 수십 가지 중 한 개를 골라야 합니다. 뷔페를 선택한 첫 번째 선택이 모든 선택 실패의 전조, 복선. 일반 식당은 한 번 선택하면 끝이 나고 그 메뉴를 알차게 먹으면 됩니다. 뷔페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마지막 그 순간까지 선택해야만 하는 메뉴 지옥, 선택 지옥.

 

시집의 끝으로 갈수록 읽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시로 읽기를 끝낼 것인가. 52개 시 중 어떤 시를 읽고 책을 덮을 가를 읽는 내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시일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읽을 시는."

뒤로 갈수록 책 읽는 속도가 떨어졌습니다.

"시집을 다 읽지 않으면 어떨 가?"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식사를 하다 말고 식당을 벗어나는 것 스트라이크가 남았는데도 타석을 벗어나는 것 휘슬도 불리지 않았는데도 축구장을 벗어나는 것 선수가 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기장에 입장한 선수는 식당에 들어온 손님은 책을 읽는 독자는 의무가 있습니다. 끝까지  마무리지어야 할 의무.


[기적 진은영]

행복은 무엇인가,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맛있는 거를 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포도주는 자연의 축복이고 신의 축복입니다. 술은 하늘이 내린 축복 그러니 따뜻하게 나누어야 합니다. 행복은 사랑하는 자와 맛있는 밥 한 끼 먹는 것 그리고 밥과 함께 포도주 한 잔 마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읽은 시는 이현승의 생활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시인은 나랑 참 많이 닮았습니다. 아파하는 표정까지 참 닮았습니다.

 이 시인이 시집을 선물해준 그 사람입니다, 그래서.

좋은 뷔페식당은? 가지 수가 많은 것. 모든 음식이 다 있지는 않아도 한 두 개는 최고의 맛인 것. 최고의 맛과 최애의 맛이 일치하는 것. 시간제한 없이 천천히 다 맛볼 수 있게 해 주는 것.

 이 시집 좋은 뷔페 식당이 맞습니다.

시의 뷔페, 술의 뷔페, 이런 식당이 있다면 이 시인들이 다 모을 수 있을까요? 이 시집의 시인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식당을 상상해봅니다.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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