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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니 '발품 컨셉']커피부록(25)

#폴란드 크라쿠프 ‘틈새’…'경주'에서 피자를 만나다

by 이크

벌어진 공간에 난 자리를 뜻하는 ‘틈’이라는 이 단어는 '끼어있는', '허술한'의 의미에서 틈바구니, 빈틈 같은 부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백'의 뜻을 담아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커피'라는 여행 컨셉에 맞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일정과 함께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헝가리는 긍정적 의미의 '틈', 바로 여백의 '틈새'로 일정에 포함됐다(걷다 보니 '발품컨셉' step2 01화).


커피와는 그닥 연결되지 않아 보이는-나중에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한 왜곡된 시선이라는 걸 알게 됐다-이 나라들은 과도한 카페인에 혹사할 위장에게 '쉴 틈', 걷고 또 걸어 피로가 쌓인 다리와 발에게 '쉴 틈'을 줬다.


프랑스에서 커피 발품의 마침표를 찍기 전, '틈새' 이야기를 살짝 건네보려고 한다. 커피의 틈바구니에서 색다른 커피의 매력을 보여준 나라, 남다른 미식 경험과 볼거리를 선사한 나라들이 전한 '틈새'였다.


그 틈은 커피 여행의 출발점인 폴란드의 고도(古都) 크라쿠프(Kraków)에서 시작됐다.

IMG_5472.JPG 크라쿠프 바벨언덕에 세워진 바벨성.

"폴란드판 경주 '크라쿠프'


크라쿠프는 폴란드 마워폴스카주의 주도로 비스와강에 접해 있다. 지금의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기기 전 1040년부터 1596년까지 500년 넘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수도로 있으면서 학문, 경제, 문화 및 예술 생활의 주요 중심지가 됐다.

바벨성 아래 비스와강변에 세워진 용의 동상.

역사는 '바벨의 용'이라는 전설을 품은 바벨언덕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전설의 내용은 이렇다.


크라쿠스(Krakus)라는 왕은 내내 바벨언덕 아래 동굴에 사는 무시무시한 용(Smok Wawelski)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동굴에서 나온 용은 집을 파괴하고 가축을 잡아먹는, 말 그대로 폭군이었다.


왕은 용을 달래기 위해 처녀들을 재물로 바치면서도 물리칠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공약을 내걸었다.

"용을 잡으면 큰 상과 함께 자신의 딸인 반다 공주와 혼인시키겠다"는 약속이었다. 용사들이 용과의 대결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어느 날 스쿠바라는 이름의 신발 제작공이 왕에게 "용을 잡을 비책이 있다"는 말과 함께 양가죽, 유황을 요청했다. 왕에게 받은 양가죽에 유황을 넣고 용의 동굴 앞에 둔 뒤 극적인 반전이 연출됐다.


양인 줄 알고 잡아먹은, 정확히 말하면 유황을 먹은 용은 엄청난 갈증과 고통을 느끼며 동굴 앞 비스와 강물을 퍼마셨고 그만 배가 터져 죽고 말았다.


용을 해치운 스쿠바에게 왕은 약속을 지켰다. 공주와 결혼한 스쿠바는 왕의 이름을 따 크라쿠프라는 이름을 붙여 도시 국가를 세웠다.


크라쿠프의 시작이 된 용의 전설은 지금도 바벨성 주변과 비스와강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바벨 대성당 정문 위 '용의 뼈'라는 전설과 함께 걸려있는 뼈. 출처 : 나무위키

성 아래 강가엔 불을 뿜는 용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수시로 불을 뿜으니 당장 놓쳤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지만, 바벨성 아래 실제 동굴도 있다. 무엇보다 중세시대에 그 동굴에서 뼈가 발견되기도 했다.


진짜 용의 뼈라 믿은 당시 사람들은 바벨 대성당 정문 위에 이를 내걸었고 지금도 이 뼈는 그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다. 물론 용뼈는 아니다. 갈비뼈는 고래 턱뼈, 다리뼈는 매머드 뼈, 머리는 털코뿔소의 뼈다.


더 놀라운 건 지금도 이 전설과 용뼈를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뼈들이 땅으로 떨어지는 날, 세상이 망한다는 예언을 믿고 있다.


용의 전설로 탄생한 크라쿠프는 960년 경 폴란드라는 이름의 국가 안에 포함되기 전까지 지난한 세월을 보냈다. 서슬라브계 비스와 부족의 수도였다가 모라비아 공국의 지배를 받았고 한때 보헤미아 공국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폴란드가 보헤미아와 전쟁을 벌이면서 크라쿠프는 비로소 폴란드 영토의 일부가 됐다. 1040년엔 이교도들의 공격을 피해 도시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던 덕에 폴란드의 수도가 됐다.


11세기 초 왕궁을 세우고 성벽을 두르면서 바벨성의 원형이 완성됐다.

바벨언덕 위 바벨성을 만나려면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적벽돌로 만든 건축물과 성벽이 눈길을 끈다.

이후 200여 년간은 말 그대로 폴란드 부족 간 크라쿠프 쟁탈전이 벌어졌다. 크라쿠프를 차지하는 사람이 폴란드를 대표하는 지배자가 됐기 때문이었다.


크라쿠프의 본격적인 황금기는 1320년 시작됐다.

이때부터 '역사 도시'라는 타이틀이 주어졌다.


그 사이 바벨성은 증축을 통해 크기를 키웠고 목재 건축물은 석재 건축물로 탈바꿈했다.


1499년 화재로 크게 파괴된 성은 16세기 초 지그문트 1세가 기존 토대 위에 최신 건축양식인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됐다. 17세기에는 바로크 양식의 궁전으로 지어졌다.


덕분에 지금도 바벨성에 가면 중세 폴란드 성의 모습에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까지 혼합된 독특한 양식을 만나볼 수 있다. 여기에 용뼈(라 믿는)가 걸린 바벨 대성당은 물론 바벨성도 그대로 있다.


바벨성은 현재 국립 박물관으로 쓰이면서 폴란드 중~근세의 갑옷, 검, 초상화 등을 비롯한 여러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바벨언덕에서 시작된 크라쿠프는 바벨성의 변화와 함께 공간의 확장을 이어갔다. 지금은 바벨성보다 더 크라쿠프의 랜드마크가 된 중앙광장도 만들어졌다.


바벨성의 국립 박물관에 가면 크라쿠프의 오랜 역사를 만나볼 수 있다.

황금기를 보낸 크라쿠프의 위세가 꺾인 건 지그문트 3세가 왕궁을 바르샤바로 이전하면서다. 정부기관도 왕궁을 따라 옮겨갔다.


그리고 1596년 폴란드 공식 수도는 크라쿠프에서 바르샤바로 변경됐다.


더 이상 수도는 아니지만, 켜켜이 쌓인 역사의 시간만큼 크라쿠프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화마를 피해 간 덕에 지금까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한 사람의 용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39년 9월 6일 크라쿠프 스타니스와프 클리메츠키 시장은 도시로 진격해 오는 독일군 사령부에 직접 찾아가 자신을 인질로 잡고 도시를 파괴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용기 덕에 나치는 크라쿠프를 폴란드 총독부 수도로 삼았고 폴란드에서 파괴를 면한 주요 도시가 될 수 있었다. 덕분에 바벨성과 중앙광장이 있는 크라쿠프 올드타운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히며 197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 번쯤 노력을 기울일 만한 곳... 폴란드식 피자"

광장 전경.JPG 크라쿠프 카자미에시 지구 중심부의 플라츠 노비.

폴란드의 경주인 크라쿠프를 오가며 한 번쯤은 가 볼 만한 곳이 있다. 바벨성에서 약 700m 떨어진 곳에 있는 카자미에시 지구 중심부에 위치한 신광장, 플라츠 노비(Plac Nowy)다.


이 광장은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큰 파티 장소’라 불린다. 이유는 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요일과 시간에 따라 쓰임새를 달리하며 사람들이 북적이기 때문이다.

낮에는 식료품을 팔고 저녁에는 빈티지 용품을 파는 플라츠 노비.

주중엔 지역 주민이 신선한 농산물을 사고파는 식료품 시장이 된다면, 주말엔 색다른 장소로 변신한다.


옷, 레코드판, 도자기 등 지나치기엔 아까울 정도로 독특한 빈티지 아이템들이 모여들고 거래된다.


덕분에 광장 주변으로는 미슐랭 스타를 받은 고급 식당부터 펍, 식당, 카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특히 광장 중앙의 둥근 건물은 이 광장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는 상징과도 같다.


오크롱글락(okrąglak)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둥근 건물이나 껍질을 벗기지 않은 둥근 통나무를 뜻하는 단어에서 가져왔다.


가져온 이름처럼 광장 중앙에 세워진 둥그런 건물이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둥글다'기 보다는 원형에 가까운 12각형이 맞다.


원래 이 건물은 과거 유대인 공동체를 위해 코셔 고기를 제공하던 도축장이었다.

플라츠 노비의 '동그란'이란 의미를 가진 오크롱글락 건물.

고기를 포함해 코셔 푸드(Kosher foods)는 유대인의 종교적 음식법인 카슈루트(כַּשְׁרוּת·kashrut)를 따른 식품을 말한다.


돼지고기는 금지하고 도축한 고기는 피를 빼야 먹을 수 있다. 얼핏 들으면 무슬림들의 할랄 푸드와 유사하다.


둥근 모양의 옛 도축장 건물은 더 이상 코셔 고기를 도축하는 곳이 아니다. 대신 음식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음식점들은 플라치 노비를 찾아야 할 또 다른 이유가 됐다. 크라쿠프가 원조인 폴란드의 대표 길거리 음식 자피에칸카(zapiekanka)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피에칸카는 "재료가 섞이고 위에 바삭하며 갈색 껍질이 생기도록 요리를 굽는 것"을 의미하는 폴란드어 동사 자피에카츠(zapiekać)에서 유래했다.

폴란드식 피자인 자피에칸카. 오크롱글락 건물에선 자피에칸카를 파는 노점상들이 많다.

단어로 떠올리기 어렵다면 폴란드식 피자라 이해하면 쉽다.


긴 바게트 빵을 반으로 가른 뒤 버섯과 치즈 등을 올려 구운 음식으로 취향에 따라 다양한 토핑을 얹을 수 있다.


고기, 야채, 양념을 함께 굽는 캐서롤(casserole)과도 비슷하다.


오크롱글락에선 12개 면을 따라 작은 매장들이 들어서 광장 쪽으로 낸 창을 통해 각 매장에서 자피에칸카를 팔고 있다. 건물에 있는 데도 좌석은 없고 광장 쪽 창을 통해서만 살 수 있으니 노점상 내지 유럽식 포장마차 같다.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음식'이라는 혹평을 벋는 곳도 있으니 매장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선택에 도움을 준 건, 현지 언론과 매장 앞에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로열 캐서롤들'이라는 뜻을 가진 자피에칸키 크롤랩스키야(Zapiekanki Królewskie) 매대 앞은 낮이고 밤이고 유독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빠른 조리 시간 덕에 사람이 많아도 기다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취향에 맞게 원하는 고를 수 있도록 메뉴는 다양하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도 있었다.

자피에칸키 크롤랩스키야 매대 앞에서 주문한 자피에칸카를 먹거나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메뉴판의 가장 위, '왕실'을 골랐다. 시금치에 베이컨, 버섯, 치즈 등이 올라간 시그니처 메뉴였다.


돈만 더 내면 소스나 치즈, 토핑도 추가할 수 있었다. 현지 사람들은 구운 양파를 얹으면 좋다는 팁을 주기도 했다.


파프리카 가루나 후추 가루를 뿌리는 건 무료다.


받아 든 빵은 김이 폴폴 날 정도로 따뜻하고 바삭 거렸다. 한 입 베어무니 치즈가 길게 늘어졌다. 크기와 토핑 덕에 우아하게 먹는 건 포기해야 하지만, 가성비 뛰어난 맛과 크기는 기대를 충족시켰다.


광장의 노점상이라고 계산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카드도 받는다.


현지 매체에 소개된 기사엔 이런 꿀팁도 있다.

“도시의 밤 문화를 경험하고 싶은 관광객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이곳에 가는 노력을 기울여 보세요. 맛을 느끼려면 낮보다는 밤이 좋아요.


폴란드 현지 매체에 실린 자피에칸키 크롤랩스키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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