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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Jul 05. 2024

나도 떠나고 싶다

그동안 일에 치어 제대로 쉬지도 못한 아들 내외가 이번 연휴에 휴가를 더해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한다.

여행이라~~~ 너흰 좋겠다!~~~ 거기에 나도 끼면 안 되겠니? 

나도 떠나고 싶다.




여행이라는 말은 언제나 듣기만 해도 설렌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삶이 넉넉한 사람도 그 편안함이 지루해서...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짓누르는 현실이 버거워 여행하는 동안 만이라도 잊고 싶어서... 

이유야 어떻든 누구나 여행을 꿈꾸고 계획하면서 떠날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부푼 꿈을 안고 막상 집 떠나고 나면 곧바로 "고생스럽다~"를 실감하고 "내 집이 최고다~"를 외쳐대면서 변덕스럽게도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돌아오자마자 또다시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가볼까?" 준비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떠나기 전까지의 설렘, 기대감, 그 작은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나와 뭔가 다를 것 같은 낯선 세계를 만나 보고 싶은 그 마음이 자꾸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한다.


그리고 떠나보면 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같다는 사실을...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고 그것이 해결되야만 행복한 줄로만 알았던 우리 부모세대와는 달리 생활 수준이 나아지면서 밥 먹고 사는 일 이외에 다른 곳으로도 눈을 돌릴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기다 보니

거기에 맞춰 행복의 기준 또한 꽤 높아져 버렸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꿈꾸고 삶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등 사람들의 의식자체도 많이 바뀐 듯하고 MZ 세대들의 반란 때문인가? 


직장에서도 퇴근 후 직원들의 편히 쉴 권리보다는 일이 우선이라 야근은 물론이고 때로는 주말마저 반납해도 군소리 안 하고 일했던 옛날(?)과는 다르게 주위 상황이나 환경들이 사뭇 달라지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시킬 수 있도록 일조를 하고 있다.


인간 개인으로서의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점차 전환되면서 우물 안 개구리였던 사람들의 시야가 점점 넓어져 간다.


당장 몸 담고 있는 자신의 세상뿐 아니라 신대륙을 발견하려는 탐험가처럼 더 넓은 세상을 궁금해하고 경험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처음 캐나다로 올 때만 해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부자들 말고는 직장 생활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인들에게는 외국으로 여행을 간다는 것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겨우 일요일 하루 휴일이라 국내여행조차도 도로사정 때문에 멀리 가지는 못하고 먹을 것 싸가지고 가까운 교외로 나가는 것 말고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제주도는 신혼여행이나 가는 곳이지 쉽게 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반면에 캐나다는 미국이랑 국경을 사이에 두고 있어 들고 나는 것이 어렵지 않고 유럽도 거리상으로 가까워 가격면에서 부담도 적을 것 같아 해외로 여행하는 것이 한국보다는 훨씬 더 활성화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뉴스를 보면 명절이나 휴일이면 공항에 발 디딜 틈이 없다는 기사와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빽빽한 모습이 찍혀있는 사진을 보곤 한다.


나 때는 말이야~~~~

우리가 한국에 살 때만 해도 명절엔 고향에 내려가는 것이 당연시되어 고속도로에서 소변 참아가며 20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었는데... 대신 이제는 여행을...

 

국내든 해외든 많이들 떠나나 보다.


다른 나라에 와서 먹고살아야 하니 우리는 캐나인들보다 바빠야 하고 이 또한 나이 든 우리 세대(?)의 고리타분한 마인드긴 하겠지만 그들 놀 때도 일해야 할 정도로 짬 내기도 쉽지 않아서 여러 가지 여건상으로 한국에서보다 쉽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여기 살면서 여행을 더 못 가는 것 같기는 하다.


요즘은 오히려 한국에서 해외여행을 더 많이 들 다니는 것 같아 보인다.


인생 뭐 별거 있어?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즐기며 사는 것이 현명한 게지.

알면서도 실천 못하고 살면 그게 바보인 게야...


평소엔 별로 의식 않고 당연한 듯 살아가다가도 가끔씩은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도시에 살면 복잡한 대신 편리하다.

익숙한 그것들을 포기할 수 없어 늘 바쁘고... 뭔가에 쫓기는 듯 허덕이면서 살게도 된다.

그런 건조한 삶에서 간당간당 얼마 남지 않은 감정들 마저 메말라 가기만 하다가 느림의 미학이 존재할 것 같은 한적한 시골마을의 여유가 부러워질 때도 있다.


어린 시절 그나마 초등(국민) 학교 때 명절이나 방학 때 부모님과 잠깐씩 방문하는 것 빼고는 시골에 살아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그곳은 왠지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만 돌아갈 것 같아서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도 나름의 휴식의 시간은 있을 터...

문만 열면 눈앞에서 유혹해 오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대신 유일하게 밖으로 나가 맛난 것 사 먹으며 콧바람 쏘일 수 있는 곳이 5일장이 열리는 시장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 옛날 사람 맞지?

시골도 요즘은 안 그래~~~


너무 드라마를 많이 봤나?


장날 하니까 너도 나도 타고 가느라 만원인 버스에 무작정 몸을 싣고 덜컹거리는 차 안 유리창 너머로 지나가는 논두렁 밭두렁의 풍경을 감상하다가 어디선가 솔솔 풍겨오는 풀냄새를 맡고 있는데 누구네집 보따리에서 빠져나왔는지 놀란 닭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그걸 잡으러 아수라장이 되는 광경?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문뜩 스치듯 지나간다.


이 마저도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 테고 아득한 옛날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우리가 쉬고 싶어 찾아가는 그곳에도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곳이 일터고 자신들이 일궈 놓은 땅덩어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들과 어우러져 지내는 평범하지만 익숙한...


따스한 햇빛에 노곤해져 잠든 바둑이와 함께 집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학교 간 손주들 기다리며 손가락이 새까매지도록 파를 까고 있는 등 굽은 할머니의 정겨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평온함과 따뜻한 온정이 느껴진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우리의 입장에서는 힐링이고 로망일 수 있지만 그들에겐 눈 뜨면 별 다를 것 없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곳... 우리가 그랬듯 그들 또한 언제나 벗어나보고 싶은 곳일 지도 모른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신세계지만 그들에겐 삶의 터전이다.


우리가 매일 보는 똑같은 그림이 지겨워 찾아가는 곳이 어쩌면 그들에게도 한 번쯤은 떠나보고 싶은 곳일 수도 있다니...


눈뜨면 흐르는 시간에 휩쓸려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또 오늘인 채로 특별한 의미 없이 하던 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그곳이 익숙해서 편안하지만 그들에게도 반복되는 답답한 일상이 지겨워 때로는 벗어나보고 싶은 마음이 절실할 텐데 누군가에겐 낯선 곳의 신선한 호기심으로 그곳에서 펼쳐지는 별것 아닌 작은 일 하나에도 의미를 두고 위안과 안정을 느끼기 위해 오고 싶어 하는 곳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도 자신들의 현실에서 나오면 가보고 싶은 곳이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대도시일까? 묻고 싶어 진다.


우리가 그곳에서 느끼는 그런 감정과 느낌들을 그들은 반대로 대도시에서 얻어 갈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천천히 가는 삶이 익숙해서 정신없이 휙휙 돌아가는 이 세상이 적응이 될 리가 없고 자신들이 숨 쉬던 곳에서의 느긋한 삶으로 당장 되돌아가고 싶다 할 것 같긴 하지만 우리 마음이랑 똑같이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동경으로 어쩌면 "Yes"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주저리주저리 글로 말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어디론가 멀리 떠나보고 싶다.


여행은 마음이 평온할 때 보다 시끄러울 때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점점 치열해지는 세상 속에서 발버둥 치면서 살다 보니 머릿속에서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라도 놓치면 뒤처지는 것 같아 창고에 저장하듯 수없이 많은 정보들을 꾸역꾸역 채워 넣게 되고 빈틈없이 꽉 차 있는 상태가 유지되어야만 안심이다.


과부하라는 부작용에 갇혀버리면 똑똑해질 수 있는 지식들을 가득 비축해 두었음에도 도리어 두뇌회전은 점차 느려진다.


혹시 나 바보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무엇을 위해서? 누굴 위해서?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현실의 먹먹함 앞에서 굴복당한 듯 뇌 안에서 저들끼리 전쟁을 벌여 만성 두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실체와 싸우는 것만큼 무모하고 두려운 것은 없다.

병명을 알아야 처방을 내릴 수 있고 비록 상대가 나 자신 일지라도 보여야 마주할 수 있다.

적절한 처방을 받아야 치료가 가능하듯 마주해야 어떤 방법이든 찾아내 이길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거닐고 새로운 풍경이나 사람 구경도 하고 그 지역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현실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지극히 평범한 시간들을 보내다 보면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조금씩은 보이지 않을까?


어쩌다 나를 돌아보다 마주하기 불편해서 피하고 있었던 진실과도 같은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뿌옇게나마 그 정체를 조금씩 드러내 보이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 그때부터는 하나씩 풀어 나가면 된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서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눈만 뜨면 책상 위에 잔뜩 쌓여 "처리해 주세요" 기다리고 있는 일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해방감이 좋고 피할 수 없는 상사로부터의 잔소리와도 잠시 안녕...

지금껏 살아온 시간들에서부터 자기반성을 통해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시간 속으로의 출발을 기대하고

곧 사라져 버리기야 하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방해받지 않고 만끽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그것이 진짜 여행의 묘미는 아닐는지?



 


아이들이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해 온다.

며느리가 운전을 교대해 주면서 아들이 쉬는 시간이라 한다.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훌쩍 넘어버린 아들이 다니던 모교를 방문해서 얼마나 달라졌나? 

홀로 때로는 친구들과 다니던 길을 아내와 함께 돌아보고 북 스토어에 들러 정작 학교 다닐 때는 관심도 없던 등에 학교 로고가 커다랗게 찍혀있는 우리가 다 알만한 그 후드티를 샀다고 한다.

"그 나이에 그걸 입겠다고? 새삼스럽게?..." 함께 웃는다.


6시간 거리라 아직도 4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완전 고갈되었다고 투덜 된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은...


이번 여행 중에 어디를 가보았고, 뭘 먹었는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2시간이 넘어 휴게실에 들어가야겠다고 한다. 


한국처럼 시설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아 열악하고 음식 종류도 정크 푸드 말고는 먹을 것이 별로 없지만 거기서 간단하게나마 저녁 먹고 조금 쉬다가 이제 한 시간 반정도만 남았으니 다시 운전을 교대해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은 원래 더 피곤하다.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면 살짝 미뤄놓았던 일들이 다시 얼굴 내밀고 줄 서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생각만으로도 고단해질 일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지치고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잠시 동안이지만 짊어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둘이서 좋은 시간 보내고 왔으니 그거면 된 거지...


이번 여행은 막을 내리고 있지만 다음 여행을 준비하면서 또다시 행복을 꿈꾸려무나.

"고생했다 얘들아!"


떠나보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다는 사실과 내가 벗어나고 싶었던 곳에서의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깨닫게 된다.

아니 이미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항상 떠날 준비를 하나보다.


나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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