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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as Jul 04. 2023

이해라는 고통

소외

벽, 소통이 불가한 부모의 마음

스스로도 왜 그런지 모른다고 한다. 좀 더 일찍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부모의 끝없는 요구, 한 자녀에게 유독 가혹하다. 그들의 실수는 평생 지속된다. 그리고 반성 없이 지낸 나날이 팔순이 됐다. 그들의 투정을 왜 나만 받아주고 있을까. 측은 지심,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했다. 외로움과 한을 이해했다. 계속 계속 보고만 있으면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모른다. 그렇게 소외됐다.

 


썩은 오렌지를 버리지 못하는 아빠.

"놔둬야! 먹을 수 있는디 그러네. 내가 잘라서 먹을라니 버리지 마!!"

우리 자녀들이 버려야 한다며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는다. 신기하다. 왜 집착할 까 오렌지 반이 썩어서 곰팡이 냄새가 난다. 그리고 막내동생이 오렌지 한 상자와 여러 다른 과일도 함께 챙겨 왔다. 그런데 왜 음식물 쓰레기 통에 들어갈 저 한 개가 그렇게 아까운 걸까?


어느 날, 난 그날의 충격으로 더 이상 아빠를 보고 싶지가 않다. 내게 많은 죄악을 저질렀지. 취학 전 이루어졌던 가혹한 학대, 언제부터 때렸을까? 여섯 살? 내가 아이를 낳고서 보니 아빠는 정확히 다섯 살부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세네 살 조카들에겐 소리치더니 아이가 정확히 다섯 살이 되면 어른 취급을 하고 손지검을 해댔다. 본인은 그게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첫아이를 그렇게 불안 속에 맡기다 내면아이를 만나면서부터는 도저히 맡길 수가 없어 직장을 그만뒀다. 그렇게 첫째는 다섯 살까지 우리 부모의 손에서 크게 됐다. 법륜 스님은 그렇게 키워진 손주는 사실 나의 형제가 된다고 하면서 그러니 직접 세 살까지는 키워야 한다고 그러셨다. 지금 지나와보니 정말 그렇다고 인정된다. 반복된 삶.

그래 어느 날, 또 막내가 엄마 집에 가져다 놓은 과일을 받으러 갔다. 늘 형제들이 먹을 과일을 단체로 사다 주기적으로 놓기에 찾으러 갔다. 남편은 한 번도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기 때문에 집에 가는 일이 늦다. 그래서 그런 삶이 길어진 덕에 집에 빨리 가는 일이 일이다. 밤 9시가 넘어 급하게 가면서, 포장되지 않은 과일을 빨리 주라고 재촉이는 찰나.

"그거 빼지 마. 쓰지 마!"

아빠는 뭐가 그리 인생이 억울한지, 자녀들이 뭘 받아가면 못마땅해하신다. 소파에 앉아서 곁눈질을 하시다 엄마가 다이소에서 새로 산 비닐을 빼서 내게 줄 과일을 담아주려고 하니 못쓰게 막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괴성을 지르면서, 그깟 검정 비닐이 뭐라고. 난 쇼크를 크게 먹었다. 아빠가 노망 나셨나.

그 비닐은 내가 큰 언니에게 다이소에서 사다 주라고 했던 비닐이다. 비닐 30장짜리 한 봉지를 사다 드렸다. 엄마네는 쇼핑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담을 봉지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그게 너무 답답해 보여서 큰언니 집 근처에 다이소가 있기 때문에 부탁한 건데. 딸에게 비닐쪼가리하나 못주는 저 아빠의 마음자리는 뭘까. 평생이해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포기하게 된 순간이었다.

1년간은 고통이었지만

이제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

그렇게 내려놓는 걸까.


자녀를 폭행한 사람은 스스로 반성의 시간을 갖기 힘드나 보다.

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게 신을 이해하는 것처럼 어려웠다. 그렇게 표현하지 못하는 부모밑에 있었기 때문에 수 십 년을 알 수가 없었다. 해석하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고통에서 벗어났을 텐데...이해의 과정은 왜 그리도 고통일까. 그래서 육아서에 나왔던 아이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라는 뜻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마음은 왜 표현되지 않는지. 내 마음도 그 아픔을 견디기 위해 꽁꽁 얼었던 거지. 그렇게 풀릴 겨를 없이 더 한 남편을 만났다. 얼음 같은 마음. 차가운 사람들

그럴수록 더 가까이 갔었던 나는 이제 멈추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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