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의 ≪세계 물리학 필독서 30≫을 읽고, 책 서평
≪인터스텔라(Interstella)≫,
2014년 개봉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이 영화에는 블랙홀, 웜홀, 양자역학 등 그 당시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과학 이론이 등장하는데요. 영화라는 대중 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이 원리를 쉽게 이해하고 과학을 좀 더 친밀하게 느끼게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를 보는 내내 공상이 현실로 나타나는 모습들을 보며 느꼈던 전율이 되살아납니다.
이전까지 어렵고 낯선 대상이었던 과학을 책상에서만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살아있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양자역학과 타임슬립에 대한 대중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때마침 영화≪인터스텔라(Interstella)≫(2014)가 주는 감동을 독자들에게 선사할 책이 센시오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소개합니다.
≪세계 물리학 필독서 30≫
이 책으로, 물리학자 이종필 교수가 펴낸 물리학 도서입니다. 인간과 우주의 탄생에서 소멸까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다루고 있는 물리학은 궁금한 것도 신비로운 것도 많은 학문입니다. 반면에 포괄하는 대상만큼 방대하고 어려워서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기 힘든 학문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이종필 교수가 교양 과학서를 열심히 출간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인데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입자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물리학자로서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2016년 교수로 부임할 당시, 과학을 전공이 아닌 교양으로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듭니다. 대학생들에게 교양으로서 과학을 접할 수 있는 가이드북이 있다면, 그 책을 중심으로 관련 주제들을 그물망처럼 엮어서 물리학의 지형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세계 물리학 필독서 30≫은 이와 같은 저자의 오랜 고민 끝에 세상에 내어 놓은 책으로, 마쳐야 하는 숙제를 시작하는 마음과 언젠가는 해야 할 과업의 출발점이 되어 줄 책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숙원의 결과물입니다.
과학의 원초성(originality)에 기반한 교양 과학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는 이 책에는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바뀌어도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언제나 ‘고전 명작’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곤 했다.”(p.5)라는 저자의 철학이 담겼는데요.
이 책은 독자들에게 뉴턴부터 오펜하이머까지 고전물리학에서 현대물리학에 이르는 물리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거나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의 저서 30권을 만나는 좀처럼 누리기 힘든 행운을 안겨줍니다.
현대 과학자들에게 변함없이 큰 영향을 미치는 자연에 수학적 구조물을 대응시켜 이해하는 기획의 발단이 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2천 년 동안 서구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고대 철학자의 책 두 권을 필두로 하는 이 책은 스웨덴 출신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가 쓴 다중우주와 그 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평행우주를 수학적 개념으로 해석한 SF 성격을 띠는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맥스 테그마크는 저서에서 멀티 유니버스가 과학의 가설이 아니라 실체임을 증명해나가는 여정을 통해, “물리학자로서 나는 플라톤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주장합니다. 공교롭게도 맥스 테그마크의 주장은 물리학 필독서 목록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포함하고 그 두 작품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저자의 견해와 일맥상통하는데요.
저자는 서문에서 “대학교육, 특히 대학의 교양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라기보다 메타지식의 관점에서 지식의 맥락을 관조하는 경험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p.7)라고 두 작품을 선정한 이유와, “나의 기준으로 보자면 필독서 목록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으로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라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로 출발하는 이유를 밝힙니다.
이 책에 수록된 30권의 작품들을 크게 물리학의 고전들과 대중들이 알만한 유명한 과학자들의 저서, 전문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저작으로 구분해봤는데요.
하나는, 앞서 언급한 두 작품과 오언 깅그리치와 제임스 맥라클란의 ≪지동설과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두 체계의 대화≫,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비롯한 물리학 고전들입니다.
≪두 체계의 대화≫를 통해서 갈릴레이가 처한 시대적 한계를 느껴보고, 뉴턴의 ≪프린키피아≫에서는 자연철학을 수학적 원리에 따라 다루는 방식을 배우게 되는데요. 이 작품이 제시한 세계관은 뉴턴의 기획과는 달리 우주는 정교하게 움직이는 시계와도 같다는 것을 증명하는 모순을 낳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처럼 대부분은 이미 틀리거나 낡은 것으로 판명된 지식들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의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다른 여타의 고대 그리스 자연 철학자들은 과학과 인문학이 명확하게 분화되기 전, 그 경계에 서서 양자를 통합적으로 사고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고전을 읽는 것은 어떤 단편적인 지식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 고대의 위대한 지성들의 생각과 기획을 배울 수 있고,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p.26)
다음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의 특수이론과 일반이론≫,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안톤 차일링거 ≪아인슈타인의 베일≫,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처럼 잘 알려진 과학자들의 저서들입니다.
20세기 과학혁명의 기수이자 현대물리학의 두 개의 기둥, 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의 하이젠베르크와 닐스 보어, 타 학문과의 융합으로 분자생물학의 새 지평을 연 슈뢰딩거, 202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안톤 차일링거. 이들은 협업과 융합을 통해 짧은 시간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는데요. 그런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저서는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저자는 역설합니다.
“자연과학이란 실험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바로 그 실험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실험의 의미에 관해서 서로 숙고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토론이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이 되고 있으며, 과학은 토론을 통해서 비로소 성립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질 것입니다.”(p.114)
마지막은, 카이버드와 마틴 셔윈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킵 손의 ≪블랙홀과 시간여행≫, 알버트 라슬로 바라바시의 ≪링크≫,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칼 에드워드 세이건의 ≪코스모스≫, 레너드 서스킨드의 ≪우주의 풍경≫과 같이 전문성과 대중성을 다 잡은 저작들입니다.
호킹은 “우리가 진정한 호모 사피엔스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p.261)라고 주장했는데요. 위의 저작들의 공통점으로, 호킹의 기준은 우리가 우주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자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과학적 지식을 교양으로서 갖추어야 할 당위가 아닐까 합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와 ≪블랙홀과 시간여행≫은 과학을 대중 속으로 들여보낸 작품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부상시키는데 일조했는데요. 과학적 상상을 현실로 보여준 영화 ≪인터스텔라≫(2014)와 핵무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를 통해 과학자의 딜레마를 그린 영화 ≪오펜하이머≫(2023)의 탄생의 배경이 된 저작들입니다.
‘교양으로서 과학을 어떻게 알려줄 것인가’라는 오랜 고민에 대한 해답이자, “물리학에 대한 막연한 갈증과 낯섦을 해결하기 위한 책”. 저자 이종필 교수가 밝힌 집필 목적인데요. 스마트폰 카메라를 덮고 있던 낡은 필름을 벗겨낸 것처럼 시야를 가리고 있던 물리학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한 겹 벗겨냄으로써, 독자들을 생생한 과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이 책은 궁금함에도 그 깊이와 넓이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물리학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안겨주는 가이드북이 될 텐데요. 각 챕터의 마지막에 있는 저자의 코멘트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코너는 좀 더 쉽게 깊게 물리학적 지식을 쌓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가닿아 잠재되어 있는 창의력을 일깨워 과학적 상상력을 현실로 바꿔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과학 연구를 하다보면 자연에 대한 우리 인식의 경계 지점에서는 과학과 SF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들이 있다. 여기서 꼭 필요한 덕목이 바로 창의적인 상상력이다.
한국의 과학 교육에서 부족한 가장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를 선정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과학과 SF를 넘나드는 논의를 통해 과학을 영화처럼 즐길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일류 과학자들이 어떻게 허구적 상상을 과학적 상상으로 바꿀 수 있는지 좋은 사례를 배울 수 있다. 이런 상상력들이야말로 훗날 'Science Fiction'을 'Science Fact'로 바꾸는 원동력이 아닐까.”[p.312, 세계 물리학 필독서 30, 센시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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