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그림책심리학회장 김영아 인터뷰
주저앉아 있는 당신을 일으켜 세워줄 독서 치유 이야기.
독서 심리치유라는 분야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하지 않나. 나는 생후 45일만에 안면기형 판정을 받았고, 기차에서 떨어져 큰 수술을 받고 살아났다. 어린 시절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괴로워하기도 했다. 헨리 나우웬의 책 제목 <상처입은 치유자>처럼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원에서 교수님을 통해 ‘독서 심리치유’라는 분야를 처음 알게 되었고, 책이 사람들의 정서나 심리 상태를 치유하는 데 큰 힘이 된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해 이 분야 공부를 계속했다. 지금은 학교와 기업, 기관에서 강연하며 독서치유를 알리고 있다.
책을 통한 치유를 경험한 적이 있나
안면기형을 갖고 자라면서 열등감을 느꼈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괴로워했다. 그러던 중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을 만났다. <외딴방>에 묘사된 여공의 마음에 너무나 공감했고, 남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는 그 모습에 눈물이 났다. ‘나만 아팠던 게 아니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끼면서 ‘네가 잘못한 게 아냐’, ‘너 참 잘 살아왔어’ 하고 다독여주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통한 심리상담이란 무엇인가
상담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상담자, 내담자, 미해결 문제라는 세 가지 요소가 충족돼야 한다. 그런데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자신의 문제를 잘 꺼내놓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중간에 책이라는 매개를 두면 효과가 있다. 내담자에게 본인의 상황과 비슷한 내용의 책을 한 권 주고 그 책을 어떻게 봤는지, 책 속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등을 묻는 것이다. 한마디로 책과 내담자의 관계에 상담자가 치료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를 통한 상담을 할 때에는 내담자가 자신의 상황을 말로 표현하거나 반응해야 한다. 하지만 책을 통하면 그 이야기를 직접 듣지 않아도 내담자의 정서를 파악할 수 있다. 언어를 통한 상담보다는 조금 더 직관적인 방법이다.
상담 방식이 궁금하다
크게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고, 글을 쓰는 방식으로 나눈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이미 내면의 치유가 한차례 일어난다. 타인과 책을 읽은 후의 감정을 나눌 때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내 생각이 부딪힐 때도 있지만, 반대로 그 생각이 나를 다독일 때도 있다. 그런 순간순간이 마음의 근육을 키워준다. 치유적 글쓰기는 책을 읽으며 들었던 감정을 정리해 보거나 자서전이나 유언, 묘비명을 적은 뒤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개인·집단 상담에 모두 활용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상담을 받는 것도 좋지만 집단상담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르고, 집중해 보는 부분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집단상담은 그런 부분을 함께 나누면서 자신만의 포인트를 찾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보통 집단상담은 서로를 탐색하는 초기, 내 문제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과도기,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기, 앞서 경험한 것을 일상에서 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종결기로 나뉜다. 책을 이용한 집단상담의 경우 각 단계마다 모두 다른 책을 사용한다. 이때 주제가 명확한 책보다는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책을 고른다.
책을 좋아해야만 상담 진행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책으로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던 분들이나 평소 독서를 즐기지 않는다고 하셨던 분들이 책을 읽은 뒤 ‘이게 정말 마음을 치유해 주는군요’라며 눈물을 흘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책이 마음 속의 어떤 지점을 건드려 역동이 일어났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부터 치유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다만 문해력이 부족하거나 책을 읽지 못하는 어린 아이, 긴 글을 읽기 어려워하시는 노인 분들, 감정을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해내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줄글로 된 책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 그림책을 활용해보는 것이 좋다.
그림책을 상담 도구로 활용했을 때의 장점은
요즘에는 그림책 주제가 정말 풍부하다. 웬만한 주제는 기본으로 다루고 전쟁, 인권, 동성애, 성인지감수성과 관련한 그림책도 있다. 그림책은 어려운 주제도 쉽고 임팩트 있게 전달하기 때문에 내담자와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림책 속 삽화를 통해 내담자는 글로 쓰여 있지 않은 것, 작가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읽어낼 수 있다. 열 명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며 보이는 대로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10개 이상의 이야기가 나온다. 건강한 시선으로 그림을 해석한 이야기도 있지만, 왜곡되거나 뒤틀린 시선이 담긴 이야기도 있다. 그림책은 이런 내면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
그림책 테라피는 대화가 어려운 노인들에게도 활용할 수 있다. 그림책을 읽어드리면 말은 하지 못하지만 눈물을 흘리시는 경우가 많다.
중장년층을 위한 상담에서는 어떻게 그림책을 활용하나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은 가정에서 ‘돈을 벌어오는 기계’가 되어버린 것 같은 회의감과 자신을 설명해 줄 타이틀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그 때문에 중장년층 상담 시에는 정체성을 탐색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책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그 소문 들었어?>를 함께 읽은 뒤 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힘이 내 안에 있는지, 나의 시선과 주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식이다.
자기 돌봄을 위한 독서 방법이 궁금하다
우선 마음이 가는 책을 고른다. 편독을 하더라도 괜찮으니 왠지 모르게 손이 가는 책을 고르면 된다. 책을 읽은 후 여러 발문에 답한다. 발문이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질문하는 것으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말한다. 발문은 통찰과 심리적 문제 해결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답을 적어 내려가며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알게 되거나,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정서적 문제가 조금씩 풀리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치며 책을 읽어보는 방식도 좋다. 우선 노란 형광펜으로 마음에 와닿은 부분에 밑줄을 친다. 3~6개월이 흐른 뒤 이번에는 분홍색 형광펜으로 밑줄을 치며 다시 읽어본다. 같은 부분에 밑줄을 친 경우도 있겠지만, 전혀 다른 문장에 밑줄을 치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3~6개월 사이에 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살펴볼 수 있다.
우울을 관리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나는 40대에 <내 마음을 읽어주는 그림책>을 쓰며 안면기형이었음을 밝혔다. 그 사실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건 이미 내 삶에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나니 편해졌다. 트라우마나 우울증 등으로 고민이 있다면 지금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자.
지금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조언을 한다면
세상에 혼자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불행한 건 없다. 그림책 <불행이 나만 피해갈 리 없지>를 보면 머피의 법칙 같은 상황이 많이 나온다. 주인공은 ‘불행한 일이 나를 피해 갈 리 없다’며 고독을 느낀다. 하지만 책을 잘 보면 주인공 주변에는 그를 지켜보고 도와주는 누군가가 늘 곁에 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도 그건 사실이 아니니 꼭 손을 내밀어 주길 바란다. 혹 책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 싶다면 자기 조력적 발문이 담긴 책을 골라 읽어보거나, 주변 도서관이나 문화센터, 복지센터를 확인해 보는 것을 권한다. 심리 큐레이션 코너를 마련해 두었거나 책을 통한 집단상담을 실시하는 곳이 생각보다 많다.
ㅣ 덴 매거진 2024년 2월호
에디터 김보미 (jany6993@mcircle.biz)
사진 송승훈 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