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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여니 Jun 28. 2023

입을 꾹 닫아버린 아이

부부싸움 속에 외로웠던 아이

21년 1월은 아이가 첫 언어 평가 검사를 하고 발달 지연 확정을 받은 유난히 추웠던 겨울날이었다. 처음 가본 소아 정신과에서 현재 나이인 6살 보다 2년이 지연 됐다는 결과 평가지를 들고 발달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왜 하필 우리 아이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수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휩쓸었고 과거의 상황들을 곱씹어보며 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으로 돌아가 보았다.


남편과 나는 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말로만 듣던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다. 아직 부모가 될 준비가 안되었던 나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기쁨보다는 우울함을 더 느꼈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혀 다른 분야의 직업으로 준비를 하는 중이었는데 임신으로 인해 모든 계획들이 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미래, 나의 커리어,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마음 그것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중 제일 힘들었던 것은 남편과의 잦은 부부 싸움이었다. 10년이 넘는 오랜 연애를 했지만 장거리 연애를 오래 했기 때문에 서로 모르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특히 생활습관과 정리정돈에 대한 가치관이 전혀 달라 끊임없이 부딪혔다.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어야 되고 착착착 정리를 해야 안정감을 느끼는 남편과는 달리 나는 정리정돈을 정말 못하는 사람이었다. 또 하루 일정을 미리 계획해서 보내는 남편과 즉흥적으로 계획하는 스타일인 나는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연애 때는 서로 다른 모습이 매력적이고 좋았는데 결혼을 하고 같이 살아갈 때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반대인 생활습관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육아로 지친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커졌다. 남편 또한 나에게 쌓이는 불만들이 점점 모여 우리는 매일을 목소리를 높여 부부싸움을 했다.


그때 아이는 18개월이었다. 한창 엄마, 아빠의 입 모양을 보면서 말을 따라 하고 간단한 단어들로 자기표현을 한창 하고 있었을 때였다.

우리는 부부 싸움을 반복하면서 서로 같이 있는 자리를 피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에서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나 또한 종일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부부가 각자의 시간을 갖는 동안 아이는 혼자 거실에서 블록을 가지고 놀았다. 순하고 얌전한 성격이어서 놀아달라고 떼를 쓰거나 울지 않아서 그렇게 두어도 괜찮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시간이 1시간, 2시간, 매일매일 반복되면서 나는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선택적 함구증.(의사의 소견은 받지 않았지만 나중에 오은영 박사의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나온 사례와 같아 지금 생각해 보니 선택적 함구증이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아이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울 때 빼고는 정말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육아에 무지했고 우울함으로 가득했던 나는 그 상황조차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다. 약 한 달 정도 그 상태로 지내다가 다시 조금씩이지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긴 시간 마음을 아프게 할 아이의 발달 지연이 시작되었다. 발달지연은 우리도 모르는 새 서서히 진행이 됐었다. 이때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는지, 혼자 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관심을 가졌다면 지금 우리는 달라졌을까? 지금도 아이를 보면서 제일 후회하고 가슴 미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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