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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에 Jun 02. 2023

웹소설 작가인데요, 백수입니다.

두부멘탈 작가의 지독한 슬럼프, 그 시작은 어디인가

한 배우가 작품을 하고 있지 않으니 현재 백수라고 소개했단 이야기를 접했다.

나는 웹소설 작가지만 글을 쓰지 못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나도 백수인가보다' 싶었다.


슬럼프에 빠진 지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공교롭게도 그 슬럼프의 시작은 작품의 성공이었다.


웹소설 작가로 데뷔한 뒤 두 번째 작품이 뜻밖의 성적을 냈다. 데뷔작도 신인치고 양호한 성적이었다 생각했는데. 두 번째 작품은 출간 첫 달에만 데뷔작 10배 이상 수익을 냈다. 지금까지의 총 수익을 어림잡아도 20배 가량은 훌쩍 넘길 것이다.


사실 나는 두 번째 작품까지만 전업으로 집필한 뒤, 취업을 할 계획이었다. 시작할 때부터 이미 웹소설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어영부영 백수 생활을 하고 있었던 터라 겸사겸사 전업 작가의 삶을 누려보고 겸업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작품이 출간 몇 시간만에 상위 랭킹에 올랐고, 그 달의 수익은 연봉 단위를 찍었다.


그때 느꼈다.

아, 웹소설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구나.


솔직히 엄청난 대박까지는 아니었다. 억 단위로 벌어들이는 상위 1% 작가들에겐 소박 정도이려나. 하지만 그릇이 작은 나에게는 중대박 정도로 쳐줄 만했다. 덕분에 몇 달은 더 전업 작가의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이후 추가 프로모션을 받으면서는 또 첫 달과 같은 수익을 냈고, 결과적으로 직장에 다니며 받아본 적 없는 연봉을 기록하기도 했다.


기뻤다. 상위 랭킹에 내 작품이 보이는 내내 들떴고 신났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매일같이 출간되는 다른 작품들에 슬슬 순위가 밀려나고, 신간 대열에서 내려오게 되며 차기작을 준비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원래는 차기작으로 정해놓은 소재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니 영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부담만이 가득했다. 세 번째 작품에서 확실히 나를 각인시키고 자리를 잡아야 해, 차기작도 이번 같은 성적을 내야 해. 그런 생각이 계속 맴돌았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소재를 떠올렸다. 기획안을 짜고, 시놉시스를 쓰고 초고도 집필했다. 그러나 출판사로 보낸 차기작은 반응이 좋지 못했다. 피드백에 따라 거의 뒤집어 엎듯 시놉시스를 고쳤고, 또 초고를 썼다. 그런 식으로 한 소재를 가지고 캐릭터와 줄거리를 바꿔가며 서너 가지 버전의 시놉시스를 만들었다.


무조건 출판사의 의견에 따라 수정만 한 건 아니었다. 피드백은 내가 납득할 만한 내용이었다. 일상 친화적이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의 글을 쓰던 내가, 부담감 때문인지 자꾸만 과장을 하고 오버를 했다. 나도 그 점을 인정했기에 순순히 고치고 또 고쳤던 거지만, 사람 맘이란 게 참 어쩔 수 없었다.


반복되는 수정 과정에서 마음이 한껏 쪼그라들었다.


피드백을 받고 한 번 수정을 할 때마다 내 마음 속 공간이 턱, 턱 좁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점점 여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번 버전은 오케이를 받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에 조급함까지 더해지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갑갑함이 밀려왔다.


과연, 결과는?


결국 그 소재는 버렸다.(정확히는 묵혀두려고 했으나 아직까지 쓰지 못 했고, 언젠가 쓸 거란 희망으로 고이 모셔 두고 있는 중이다.) 한 소재로 여러 버전을 만들어가며 매달려 봐야 답은 나오지 않고, 나만 쪼그라들다 못해 먼지 한 톨 만큼 작아질 것 같아 내린 결정이었다.


불행히 새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으면 글을 쓰는 법도 까먹을 것 같은 불안이 밀려왔다. 뭐라도 해야 그 불안을 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고안해낸 리프레시 방안이 두 번째 작품(=잘 된 작품)의 외전이었다. 이미 검증 된 설정과 캐릭터들이라 훨씬 편하지 않을까 했다. 생각보다 녹록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글이라는 걸 쓴다는 기분은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갓 두 번째 작품의 마감을 친 기분으로 다시 차기작 준비에 들어갔다. 조급함이 불안을 몰고 온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천천히 기획을 해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게 나를 더 수렁으로 밀어넣을 줄은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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