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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에 Sep 16. 2023

끝난 줄 알았지? 또 왔다, 슬럼프

다시 시작된 슬럼프, 그 시작

브런치에 슬럼프에 관해 기록하는 동안 나는 확실히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었다. 평소 작업 분량이던 1일 1편 집필이 가능해졌고, 집중이 잘 되는 날이면 하루에 두 편씩도 쓰곤 했다. 그렇게 10만자 가량을 수월하게 써내려갔다. 오만하게도 나는 이제 완전히 작업 텐션이 돌아왔다고 느꼈다.


때 이른 판단이었다. 한 달에서 한 달 반 가량이었던 것 같다. 이제 본래의 상태를 되찾았다는 뿌듯함에 취해 매끄러운 작업을 한 기간이 말이다. 이후 거짓말처럼 다시 글이 막히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내가 쓰는 문장 모든 게 어색했다. 한 문장을 쓰면 이게 맞나? 의문이 들고, 한 문단을 쓰면 이렇게 진행하는 게 맞나? 또 의문이 들었다. 내가 적은 몇 줄의 글이 죄다 어색했다. 꾸역꾸역 몇 줄 더 쓰고 나면 이게 과연 소설의 형식이라 볼 수 있는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냥 내가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한 편씩 써냈는데 갑자기 이런 상황이 벌어지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글의 진행은 다시 지지부진해졌고, 나는 틈만 나면 '갑자기 왜 이러지?'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그리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두 가지 원인을 추측해냈다.


1.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다시 글이 손에 잡히지 않을즈음, 계약했던 공유오피스 사용 기간이 만료되었다. 사실 이전부터 교통편과 컨디션 등 여러 이유로 자주 나가지는 않던 차였다. 그래도 띄엄띄엄 한 번씩 사무실에 나갔고, 그게 운동을 제외한 나의 유일한 외출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나를 밖으로 이끌던 조건이 사라지자 나는 집에만 있게 됐다.


물론 카페에 나가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마음만 먹는다면 어딘가에 가서 작업을 해볼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딱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쩐지 집에서 쓰고 싶었고, 생각만큼 써지지 않으면 글을 두고 나갈 마음이 들지 않아 더 집안에만 틀어박혔다. 외부에 나가질 않으니 사람과의 접촉도 없었다.


당시에는 이게 문제라 생각해 의도적으로 밖에 나가볼 생각도 못 했다. 그냥 나가고 싶지 않아 나가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봤을 때, 그 상황이 나를 심리적으로도 많이 고립시켰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심리상담을 받을 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내가 혼자 하는 작업이 만족스럽고, 내게 잘 맞는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을 때였을 거다. 선생님께서는 혼자가 잘 맞는 사람은 물론 있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사람과의 교류도 중요하다는 취지의 말씀을 해주셨다. 사람을 만나고 그로 인한 자극이 있어야 더 쾌적한 컨디션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고립이 된다고.


당시에도 그 말에는 동의를 했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편했고, 혼자 일하는 환경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별다른 노력은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고립을 한 번 겪은 다음에야 해당 조언을 다시 떠올려볼 수 있었다. 나는 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었다. 꽉 막혀버린 정신으로는 원활한 사고가 어려웠다.


2. 수정에 대한 잘못된 부담감이 뇌리에 깊이 박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품 데이터는 지극히 적다. 고작 세 작품. 개중 두 작품은 수정이 많았다. 그리고 이 두 작품은 성적이 좋지 않았다. 전업 작가로 먹고 살 수 있을 만한 수익이 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반면 나머지 한 작품은 수정이 별로 없었다. 내 뜻대로 즐기면서 썼다. 수익은 나머지 두 작품을 합쳐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잘 나왔다. 회사에 다니면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연봉 수준을 벌어들였다. 그 때문에 나는 내 글이 잘 되려면 스스로 즐기면서 후루룩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회복세에 접어들고 다시 글을 쓰게 되면서는 그런 상태에 가까웠다. 특별히 막힌 부분 없이 집필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 번의 피드백을 받고 수정을 거친 다음부터 글이 안 나오기 시작했다.


수정이 대단히 많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잘 된 작품을 작업할 때 수정한 정도. 고로 수정이 별로 없었다는 뜻이다. 혹평도 아니었고, 나도 수긍하는 피드백이었다.


실제로도 수정을 할 당시에는 가뿐했다. 피드백을 보고 수정할 내용이 바로 떠올랐고, 의욕적으로 실행에 옮겨 금방 수정을 끝냈다. 수정을 거듭하지도 않았으며 단 한 번으로 끝이 났다. 그렇기에 이게 문제가 될 거라곤 전혀 예상을 못했는데. 이후 놀라울 정도로 글이 안 써졌다. 쓸 내용은 다 정해놓았는데도 좀처럼 작업이 진행되질 않았다. 아무래도 '수정=수익성 바닥'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듯했다. 그 때문에 수정이라는 행위 자체가 내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한 번의 수정 이후 나는 혹독했던 지난 1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제 컨디션을 되찾은 줄 알았던 한 달여의 시간을 거쳐서일까. 그때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자리에 앉아서 한 문장이 뭐람, 한 음절을 써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집중력은 미친듯이 떨어지고, 단어나 문장은 다 낯설었다.


결국 2주면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목표 작업량을 한 달이 넘도록 채우지 못했다. 그래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일같이 컴퓨터를 켜고 책상앞에 앉았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매일이 걱정이었고, 잠들기 전이면 하루 동안 무언가 해낸 게 없단 생각에 울적했다.


그러나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나를 책임져야 하고, 내가 작가가 되기로 했으니까. 이번에도 이겨내야만 했다. 한없이 무기력하던 여름, 나는 다시 슬럼프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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