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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에 Jun 13. 2023

마인드 컨트롤. 강박 내려놓기

멘탈 터진 웹소설 작가의 발버둥6

각고의 노력 끝에 1년 넘게 이어진 슬럼프에서 벗어날 희망을 찾았다. 그 사실을 내 스스로 느낀 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었다.


나름대로 새 키보드도 사보고, 작업 환경도 바꿔보고, 정신과에도 다녀보고 했지만 가장 큰 변화를 안겨준 것은 바로 심리상담센터에 갔던 일이었다. 불안이 거세지는 탓에 응급구조요청을 하듯이 달려간 곳이었으나 그곳에서 얻은 깨달음이 내 심경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일단 내가 겪는 이 상황이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란 사실이 큰 힘이 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출판사에서 어떤 피드백이나 수정 요청이 들어오면 내가 글이나 기획안을 잘못 쓴 것 같아 잔뜩 위축됐었는데. 이 또한 작품 몇 개 안 해본, 아직 신인 딱지도 떼지 못한 내게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 증거가 바로 내 스스로 새로운 시놉시스를 짜겠다고 마음먹은 일이었다. 어찌어찌 시놉이 통과되었는데도 갑자기 다시 시도해봐야겠다는 결의가 들었다. 그 과정에는 우연한 기회로 얻은 출판사 측과의 대화도 큰 몫을 했다. 


그동안 반려 받은 시놉시스의 피드백에는 늘 기존의 내 글과 다른 방식의 스토리 라인이라는 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그 지점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시놉시스는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을 정리한 것이고, 어쨌든 글로 풀면 나만의 스타일이 나올 텐데 왜 그게 문제가 되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왜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하는지조차 납득하지 못했다.


그런데 출판사측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알게 됐다. 나는 여태까지 등장 인물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관계가 변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풀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든 꼼꼼하게 스토리를 짜두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직전 작품에서 스토리 변화로 머리를 쥐어짜느라 힘들었기에) 기존의 캐릭터 중심이 아닌, 사건 중심의 기승전결을 짰던 거다. 출판사에서는 내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스토리가 매치되지 않아 우려를 표했던 거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미 반려받았던 시놉들과, 통과했던 시놉과, 새로이 떠올린 설정들을 조합해 인물과 인물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냈다. 또, 조급하지 않게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조금씩 시놉시스를 다시 작성했다.


그 결과, 아주 오랜만에 몹시도 명쾌한 통과를 맛봤다.


좋았다. 이제야 내가 감을 되찾았구나, 이제 다시 술술 쓸 수 있겠지. 설렘과 기대가 들었다.


하지만 모든 게 마음같이 풀리지는 않는 법. 드디어 쓸 소재를 택하고 시놉까지 OK를 받았지만, 기대처럼 매끄럽게 써지지는 않았다. 주춤주춤, 아주 느리게 몇 줄씩 적어 나가는 게 다였다. 집중 잘 되라고 구한 작업실도, 새 키보드도 모두 소용없었다.


왜 안 써질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다방면으로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슬럼프와 번아웃, 잔뜩 위축된 심리로 불안이 늘어난 탓이 큰 듯했다. 불안하니까 자꾸만 나를 옭죄기 시작했던 거다. 불안한 마음에 뭐라도 해야 안심이 되고, 그러니까 지켜야 할 수칙들을 늘려갔고, 그 수칙대로만 하면 될 거라고 어리석게 믿었다.


내 불안이 만들어낸 강박은 대개 내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모습이었다. 여기저기서 주워듣고 '저게 건강한 프리랜서 생활이지' 싶은 것들을 실천하려고 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1. 아침 일찍 일어나기.

2. 작업실에 나가서 빡 집중해 적어도 3시간 안에 한 편 쓰고 퇴근하기.

3. 주 5일 이상 출근 도장 찍기.

4. 글은 직장인의 루틴에 맞춰 9to6 안에 끝내기.


당연히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정말 저런 루틴을 흐트러짐 없이 지키고 있겠지만, 나한테는 무리였다.


일단, 일찍 일어나기.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다. 몇 해 전 사주를 봤을 때 그 분도 그렇게 말했었는데(아무런 힌트 없이도 잘 맞춰서 개인적으로 용하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나는 타고나길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굳이 일찍 일어날 생각 말고 10시쯤 천천히 일어나서 점심 먹고 느긋하게 생활하는 게 잘 맞다고.


사실이었다. 알람 없이 자고 일어나다 보면 조금씩 일어나는 시간이 밀리게 되는데, 실제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는 루틴이 10시쯤 일어나는 사이클이었다. 그런데 그걸 이겨내고 억지로 일찍 일어나려고 하자 더 피곤해지기만 했다. 일찍 맞춰놓은 알람으로 깼다가 다시 자는 일이 허다하고, 깼다 다시 자면 잠은 많이 잤는데 개운하지도 못했다.


3시간 안에 한 편 끝내기는 가능했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다. 글 몇 자 쓰기도 힘겨운 시기에 3시간 안에 한 편이라니.

그런데도 굳이 3시간을 목표로 잡은 건, 이전의 경험 때문이었다. 정말 집중해서 쓰면 2시간 안에도 한 편이 뚝딱 나왔다. 그러니 여유분을 더해 3시간을 목표로 정한 것이다.


왜냐, 나에게는 작업실이 있었으니까.

고양이도 돌아다니지 않고, 눈에 거슬리는 집안일도 없는 공간이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투자를 했으니 당연히 그만한 효율은 내야한다고 여겼다. 들어가자마자 가방에 폰을 넣어 걸어뒀고, 오로지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딴에는 어떻게든 집중력을 끌어올려보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그건 긴장을 끌어올렸을 뿐, 나한테는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급박한 마감에 취약하듯, 나는 긴장 상태에서 효율이 나오지 않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좋은 성적을 냈던 두 번째 작품을 쓸 때, 나는 주변에 '놀면서 썼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게 나한테 맞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느긋하게, 딴짓도 하면서 부담없이 천천히 쓰는 것 말이다. 그런 내게 전혀 맞지 않는 방법을 억지로 하려 했으니 도움이 될 리 없었다. 효율이 나질 않으니 주 5일 이상 출근할 의지도 생기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나마 작업실에 갔을 때는 또 어떻고. 느지막이 일어나는 바람에 9시 출근은 가당치도 않았다. 10시쯤 일어나 씻고 점심 먹고 나가면 1시에서 2시. 출근은 늦었는데, 6시 전에 퇴근을 하겠다는 의지만 확고했다. 3시간 안에 한 편을 다 쓰지도 못했으면서 6시가 다가오면 퇴근 욕구만 강해지는 것이다. 이후로도 계속 남아 있으면 조금 더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무렵만 되면 칼같이 컴퓨터를 끄고 나오게 됐다.


결과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프리랜서상과 나는 정 반대였던 거다. 나를 나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개조해내려고 했으니 그게 잘 될 확률은 희박한 게 당연했다.


문제는 그걸 몰라서 머리로는 옭죄고 몸으로는 해내지 못하니 무기력만 더 커졌다는 사실이다. 원래 나는 계획이 없고 마음 가는대로 하는 성향의 사람인데, 자꾸만 틀 안에 나를 맞출 생각을 하니 못 해내고. 그러면 마음먹은 일조차 해내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져서 의욕만 사라졌다. 자꾸만 해내질 못하니 강박은 더 심해져서, 종래에는 계획 하나가 틀어지면 뒤에 남은 계획들도 모두 하기가 싫었다. 가령, 8시에 일어나 작업실에 가려고 했는데 10시에 눈을 뜨면 작업실 자체를 가지 않고, 작업실에 안 갔으니 글도 안 써버리는 것이다.


원래의 나라면 늦게 일어나버렸네, 하고 느긋하게 움직이면 될 일이었다. 하다 못해 작업실에 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작업을 하면 되고. 하지만 강박에 사로잡혀버리자 그마저도 안 됐다. 무엇 하나 수 틀리면 모조리 집어 치우고만 싶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이라도 내가 얼마나 강박적이었는지를 깨달았다는 거다. 아직도 작업실에 가는 버스 하나를 놓치면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고쳐 나가고 있다. 작업실에 있을 때 폰이 만지고 싶으면 만지고, 6시가 넘어도 글을 더 쓸 수 있을 거 같으면 더 쓴다. 그렇게 해서 최근 며칠은 하루 한 편을 써내는, 그러니까 기존의 작업량을 되찾았다.


원래의 내가 어땠는지 기억하고 조금씩 다시 나를 풀어두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쓰는 이 원고가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전처럼 글을 쓰는 경험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근래의 나는 여전히 설레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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