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이라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쯤은 한두번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경기에서 승부가 결정되고 나면 승리한 팀의 선수들은 패배한 팀의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오늘 우리가 이겼지만 너희도 참 멋졌다는 의미다. 승리했든 패배했든 우리 모두는 같은 선수들이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표현이다.
야구에서도 타자가 홈런을 친 뒤 투수가 보는 앞에서 지나친 감정표현을 금지하는 불문율이 있다. 만약 이 불문율을 어기게 되면 그 타자는 반드시 다음 타석에서 투수의 빈볼을 맞는다. 홈런을 쳤다 해도 그게 투수에 대한 조롱이 되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배구에도 비슷한 룰이 있다. 강력한 스파이크로 득점을 낸 선수는 절대 상대팀 선수를 바라보면서 세레모니를 해서는 안된다. 세레모니는 뒤돌아 서서 우리팀 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해야 한다. 상대팀 선수를 마주보면서 스파이크 성공했다고 기뻐서 팔짝팔짝 뛰는 경우는 없다. 이는 상대팀 선수들을 조롱하는 비매너 행위로 간주된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경기장이 일터인 것처럼, 직장인과 사업가 등 일반 국민들은 사회가 일터다. 우리 모두는 정말 치열하게 살고 있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상사의 인정을 받고 진급하기 위해, 사업가는 내 사업의 무구한 번창을 위해 각자의 경기를 하고 있다. 당연히 경쟁도 치열하다. 스포츠에만 건곤일척의 승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승자가 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누군가는 사업이 날로 번창해 자신의 회사를 수십억 수백억대의 매출을 올리는 대형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성공한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빠른 진급을 거듭해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지위에 올라간다. 당연히 패배하는 사람도 있다. 더 많다. 직장에서 무시당하고 급기야 일자리를 잃기까지 한다. 사업이 망해 빚더미에 오른다. 어쩌면, 가정환경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집안에 돈이 없고 교육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해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다.
문제는 스포츠와 달리 패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이다. 유튜브와 인스타에는 사회에서 승리해 부와 명예를 거머쥔 이들의 자랑질로 가득하다. 자랑질 또는 이렇게 하면 나처럼 될 수 있다라는 간접 자랑질이다.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유럽을 누비는 유튜버. 강남 서초 한복판의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연예인. 포르쉐 같은 비싼 차들을 몇대씩 구입하여 드라이빙을 즐기는 사업가. 내 예금 잔고에 수백억이 있다며 통장 잔고를 실제로 보여주는 인터넷 강사 등.. 사회에서 승리한 자들의 수도 없는 세리머니로 SNS는 홍수를 이룬다. 마치 홈런 쳤다고 투수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타자와 같다. 스파이크를 때려넣고 상대 블로커 앞에서 낄낄대는 배구 선수와도 같다.
스포츠에서는 이러한 비매너 행위가 절대로 허용되지 않지만, 사회에서는 허용되고 있는 아픈 현실이다. SNS의 발달은 타고 있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지구 반대편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소통할 수 있는 시대다. 승자와 패자의 삶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물론, 이기고 질 수 있다. 그리고 패자도 이긴 자에 대한 존경심을 당연히 가지고 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으며 힘든 날이 있었으랴. 하지만, 그렇다고 승자가 패자를 조롱해서는 안된다. 그것만은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사람이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 하루하루 함께 살아나가는 동료들이니까.
이 존중심이 없어진 오늘날, 묻지마 칼부림 범죄는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너희는 패자니까 이긴 자들이 어떤 짓을 해도 그냥 참으라는 건 말이 안된다. 이긴 자는 이긴 것에 대한 혜택을 받으면 그만이다. 금메달을 받았으면 그걸로 만족하고 자신의 삶을 누리면 된다. 왜 메달을 따지 못한 사람들 앞에서 금메달을 흔들며 끝도 없이 자랑하는가 이말이다. 그들도 당신들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노력한 사람들이다. 노력이 부족했거나 운이 없어 메달을 따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무런 열매 없이 힘들게 산다. 안그래도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힘들다. 그들을 위로하고 함께하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그들 얼굴 앞에서 금메달을 흔들며 낄낄대지는 말아야 한다.
이러한 자랑질이 계속되면 패자들도 영원히 참을 수는 없다. 홈런 치고 과도한 세리머니를 하는 타자에게 투수가 빈볼을 맞추는 것처럼 빈볼을 던지게 된다.
총이 있으면 총으로 칼이 있으면 칼로.
사회에서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이겨낸, 승리한 이들에게 간절히 말하고 싶다. 당신 대단한 것 알고 있다고. 축하한다고. 그러니 이제 그만하라고. 자랑하지 말라고. 승리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