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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Apr 11. 2024

우울, 의식의 흐름, 상담치료

2024.04.10


너무 힘들다. 사용하는 모든 SNS에 우울하다며 투덜대고 마지막 남은 이곳으로 왔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 친구와 집 근처 카페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집에 있으니 안 좋은 생각만 들어서 친구보다 훨씬 일찍 나와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한두 문단을 겨우 끄적이니 집중력이 다했다. 우울증에 걸리면 전두엽 기능이 저하되어 집중력과 의지력이 감소한다. 이젠 거기에 저항하지 않기로 했다. 의지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려고 한다. 적어도 우울증이 낫기 전까진. 물론 이게 옳은 방법이라는 건 아니다. 



대학 입학 후 첫 시험인데, 과목들도 내가 좋아하던 건데, 어쩜 이리 재미가 없는지. 



자,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내가 요절한다면 그 후는 걱정할 게 없다. 그러나 내가 요절하지 못한다면,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억지로 '꿈'이란 걸 만들어뒀고, 그걸 이루기 위해 학점을 잘 따놓아야 한다. 그런데, 전두엽 기능 저하 탓인지 그냥 내가 문제인 건지 공부하기가 너무 싫다. 못 하겠다. 대체 작년에는 어떻게 공부한 걸까? 



물리, 화학, 생물학, 심리학 등을 수강하고 있다. 공부도 작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그런데 못하겠다. 그냥 못하겠다. 



나는 메타인지가 과하게 잘 되는 편이라, 오히려 불편한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오랜만에 나의 발걸음이 느려짐을 느꼈다. 평소 8시간 정도 자면 저절로 깨는 반면 오늘은 12시간을 자고도 부족해서, 밥을 먹고 2시간 넘게 누워 있었다. 몸에 힘이 없나 보다. 



얼른 방학이 오면 좋겠다. 지금처럼 강제로 거의 매일 집 밖에 나가서 괜찮은 척 헤실대며 웃을 필요가 없어질 테니. 다만 마음은 계속 힘들 거다. 혼자 있으면 더 우울해지는 법. 요즈음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상담 시간? 근데 이마저도 요즘은 귀찮다. 그리고 선생님께 죄송하다. 나아지는 듯하다가 악화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해서. 



그래서 나는 선생님께 의존도 못 하겠고 (물론 이미 많이 하고 있지만) 의존하고 있다는 티를 내는 것도 죄송하다. 어떤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 미안함의 이유는 선생님이 힘들어하실 것 같아서이다. 그러자 선생님께선 이렇게 반문하셨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게 제 몫이라면요?"


선생님... 그래도 싫어요. ㅠㅠ 진짜로 너무 싫어요... 저만 힘들어할래요.



최근, 선생님께서 치료 종결에 대한 내 의견을 물으셨다. 종결하자는 것도 아니고, 다음 시간까지 생각해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과장 없이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면 우울증 환자답게 아무렇지 않은 척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집 가는 길 엄청난 불안감이 엄습하여 엄마와 친구들 여러 명에게 전화를 돌려 난리를 쳤다. 전혀 효과가 없었고, 소리 내어 엉엉 울다 지쳐 잠에 들었다. 다음 날은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어 선생님과 짧게 통화를 했고, 엄마가 딸을 달래듯 치료 종결만 10년 동안 해도 된다고 말하셨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주 안 지나서, 갑자기 상담이 귀찮다니. 나도 날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괴리가 참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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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상담을 시작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내게 존댓말을 사용하신다. 크게 불편한 건 아니지만 반말을 사용하셨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말을 쓰신다면, 나는 선생님을 더더욱 엄마처럼 여기게 될 것 같아서이다. 그럼 의존도 심해지겠지. 우리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요. 




2024.04.11

어제는 결국 공부를 때려치우고 친구와 술을 마셨다. 조금 많이 마신 탓인지 새벽 두 시 반쯤 깨어 아이스크림을 먹어댔다. 술 때문에 몸이 힘든 줄 알았는데, 나는 별안간 흐느끼기 시작했고 곧 가슴을 쾅쾅 치며 울었다. 사실 몸의 통증과 마음의 통증이 잘 구별가지 않게 된 지는 한참 되었다. 위로나 공감을 받고 싶어서 나중에 보려고 아껴(?) 두었던 우울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틀었다. 알고 보니 우울증보다는 자살에 초점을 맞춘 영상이었고, 자살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고통이 심장을 뚫고 새어 나와서 영상을 볼수록 마음이 더욱 힘들어졌다. 



엄마가 필요했다. 포근한 엄마 품에 안겨 진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새벽에 갑자기 딸이 울면서 나타난다면 너무 놀라실 것 같아서 꾹 참았다. 사실 조금 웃기다. 자살을 하고 싶어 하면서, 고작 그런 걸 걱정하는 게.



뛰어내릴 생각은 없었지만, 시늉이라도 내고 싶어서 창문을 열고 서서 찬바람을 맞았다. 그러자 신기하게 마음이 진정되었고, 다시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니 다섯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눈이 부어서인지 점점 졸음이 몰려왔고, 한껏 가벼워진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우울증 환자의 평범한 새벽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그런 일이 있은 후 채 열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화학 수업을 들으며 딴청을 피워봤다. 또 죽고 싶은 마음이 몰려오기도 했고, 우울증으로 인한 전두엽의 기능 저하 때문에 이전과 달리 한 시간 이상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 쉬는 중이다. 다시 수업을 들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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