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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석류, 너는 무화과

우리는 종자부터 달랐구나!

  어릴 때 살았던 우리집은 대부분의 시골집이 그러하듯 집터보다 마당이 세 배이상 넓었다. 아빠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할머니께서 거주하셨던 이 집의 마당에는 파, 마늘, 양파, 배추, 고추 같은 모든 김장재료를 재배할 수 있는 텃밭이 있었고 과일나무도 제법 여러 종류가 있었다. 많이 열릴 때도 있고 거의 열리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하나의 배경처럼 존재했던 배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포도나무 등등..

  마당 한쪽에는 옆집과 같이 쓰는 우물이 하나 있었고 우물 바로 옆에는 장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일곱 살 즈음엔가 수도꼭지로 바뀐 펌프도 자리 잡고 있었다. 여름철엔 농사일이 바빠 어른들이 집을 비우실 때가 많았는데 더운 날씨에 물만큼 재미있는 장난거리는 없었기에 우물가는 나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한 번은 우물가에서 퐁퐁을 풀어 거품을 만들며 정신없이 놀다가 온 마당에 퐁퐁물이 퍼졌는데 해질 무렵 돌아온 엄마가  

"퐁퐁을 얼마나 풀었는지 온 마당의 지렁이가 따갑다고 다 나와서 꿈틀댄다!"며 등짝을 때리신 적도 있다.

  우물가 오른쪽에는 그늘이 제법 큰 석류나무가 심겨 있었고 왼쪽에는 무화과나무가 심겨 있었는데 꽃필 무렵부터 남다른 존재감을 자랑하는 석류열매와 쭉 찢으면 우유처럼 끈적한 흰 액체가 나오는 무화과잎은 정신줄을 자주 놓던 그 시절의 미친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기에 소꿉놀이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으로 초대되었던 것 같다.(내가 찢어갈긴 무화과잎과 뜯고 뽑고 빻은 석류꽃을 다 모은다면 장독대의 크고 작은 장독들을 모두 채우고도 남았으리라...)


  사십 중반에 접어든 지금, 갑자기 어린 시절 기억이 문득 떠오르며 "아~ 나는 석류, 우리 아들은 무화과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빙빙 돌려 말하는 건 딱 질색이고 나도 툭! 상대도 툭! 그냥 훤히 보이는 관계가 제일 편하고, 누가 보여달라 하지 않아도 저절로 툭 터져 속을 훤히 보여주는 석류열매마냥 지금의 나는 그저 솔직하고 눈에 훤히 보이는 게 좋다. 반면, 아들은 한가득 꽃을 피워도 밖에선 보이지 않고 밑동의 아주 작은 구멍만을 통과해야만 간신히 닿을 수 있는 무화과열매 같은 존재이다.    

  이 아이가 네 살인가 다섯 살 때 갑자기 나의 뽀뽀를 거부한 시기가 있었다. 어느 순간 이유 없이 뽀뽀를 거부했고 좀 커서 그런가 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마음에 수도 없이 시도만 하고 철벽 치는 아들의 반응에 실망하며 넘어갔는데 한두 달쯤 지나서 하는 말이 "어느 날 엄마가 뽀뽀를 하는데 엄마 이에 고춧가루가 끼여있어서 그랬어"라고..

  내가 어릴 땐 엄마가 매운 양념 못 먹는 나에게 오징어 무침회 한 조각을 집어 엄마 입에 넣은 뒤 양념을 쭉 빨아먹고 건네주면 그걸 받아먹는 것도 사랑이라고 느꼈는데, 우리 아들은 엄마 이에 낀 고춧가루 때문에 한두 달을 이유도 말 못 하고 나의 뽀뽀를 조용히 거부해 왔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이었다.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이야기를 내게 전해 들은 남편의 말이었는데

"이제 우리 아들이 트라우마에서 극복할 준비가 되었나 보다"라고...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석류고 아들은 무화과인데 밑동의 구멍은 더더 작아져서 속내를 알 수 없지만 '아~ 내가 석류인데 내가 키워왔던 게 무화과였단 걸 이제야 깨닫는구나. 무화과는 무화과답게 키워야 하는데 내 시야가 석류에만 머물러 있었던 건 아닌가'라는 반성이 슬쩍 고개를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속을 쩍 벌려 아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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