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갔다.
그와 함께 글쓰기가 싫어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글쓰기가 싫어진 시점이 대충 언제인지는 알아도,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모르니 당연히 해결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흥미롭게 보았던 영화나 드라마,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일상에 얻은 사소한 깨달음 등등 머릿속에 저장된 수많은 글감으로 글을 쓰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하지만 내 노력과 다르게 글은 한 줄을 벗어나지 못했다. 분명 그때 당시에는 충분히 글감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왜 글로는 이어지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거나 어떻게든 쓰고 싶었지만, 간절한 마음과 달리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채 뒤죽박죽이었고,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적확한 단어를 찾는 과정이 버겁고 지겹게만 느껴졌다.
분명 글을 쓰는 것이 재밌었을 때가 있었다. 하루의 일과를 모두 끝나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쓰는 시간만을 기다렸던 때가 있다. 글을 쓰고 나면 내 글이 훌륭하든 미흡하든 뿌듯하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와 나는 무엇이 다른가 하고 생각해 보면 그때는 글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었다. 글을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원칙이 없었고, 내 안에 끓어오르는 뭔가가 이끄는 대로 거침없이 써나갈 뿐이었다. 그것이 부정적인 생각이든, 긍정적인 생각이든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말이다.
하지만 글을 쓰고 좋은 글을 읽은 경험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글이란 독자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인식은 글을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는 무의식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독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글, 이를테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따뜻한 인심을 발견했다는 글이나 힘든 시간 속에서 희망과 교훈을 얻었다는 글만 적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들었다. 내 마음과 머릿속이 긍정적인 기운으로 가득할 때는 비교적 글이 쉽게 써졌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글이 하나도 써지지 않았다.
그러니 회사 일로 분노와 실망만이 가득한 요즘 글쓰기는 더욱 힘들어진 것이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는 내비칠 수 없는 나의 은밀한 감정들을 글에서는 마음껏 표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철칙을 깨우친 후에는 독자를 위해서 어떤 글을 써야 할까만 고민했고, 진짜 내 속마음은 모른척하고 덮어놓기 바빴다. 그런 시간이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해소되지 않는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속에 계속 쌓여갔고, 이는 우울증과 번아웃으로 이어졌다. 글쓰기에 대한 애정도 글쓰기를 통한 기쁨도 점차 사라졌다.
그에 대한 해결 방법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나에게 찾아왔다.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어떤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영상은 일상에 유익한 정보를 주는 것도, 화려한 일상으로 눈을 즐겁게 하는 것도, 긍정의 기운으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겪었던 고난과 그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일기 형식으로 담담하게 전달하는 영상이었다. 그 영상을 보는데 내가 처음 글을 썼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고, 글을 쓰면서 들었던 해방감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는 오래간만에 내 감정을 축소하지도 과장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적었다. 그 글은 처참했고, 암울했고 끔찍했다. 하지만 글을 쓰고 나서야 이러한 감정들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음을 알게 되었다. 감정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나를 괴롭히던 감정들을 조금이나마 떠나보낼 수 있었다. 글쓰기에 관한 원칙과 그로 인한 부담감이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준 것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용기 내어 드러낸 사람의 이야기였다.
독자를 위한 글이 긍정의 메시지만을 전달하는 글이 아님을 몸소 체험했다.
이제는 쓸데없는 글이라는 자괴감에서 벗어나 진솔한 마음을 담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