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의 연애, 자그마치 8년만이었다.
왜 솔로냐는 걔가 바로 접니다
뭐 하나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이 없던 33살.
요즘 말로 썸이라 하기도 부끄러운 경험들을 털어버리고, 남녀 둘이 만나 "우리 사귄다"라는 선언은, 기가 막히도록 꼭 8년마다 이루어졌다.
17살
25살
33살.
강산이 80퍼센트쯤은 허울을 벗을 세월이었다.
그래서 매 연애마다 아예 다른 사람일 정도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궁금할 지도 모른다.
도대체 뭐 때문에 지독히도 연애를 못 했었는지, 그리고 도대체 뭐 때문에 내게는 연애가 그토록 버겁고 무겁고 녹록찮았던지.
난 그동안 내가 연애를 안(혹은 못) 하는 이유를, 내 맘속에서 솟아오르는 고통을, 만난 상대가 나쁜 놈이어서라고 생각했다.
그 상처 추스르느라 그런 거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33살, 결혼을 전제한 다정하고 안온한 연애 중인 지금, 나는 애인의 흠없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솟아오르는 감정기복과 고통에 가슴을 쳤다.
우리 사이는 분명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이 고통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였는지.
시름에 겨워 더듬거리는 손으로 찾아낸 이유는, 애착 형성의 불안정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커서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부모에게 느꼈던 애착대상을 향한 감정이, 연애상대를 보는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나는 혼란형 애착, 다른 말로 하면
양가형 애착과 불안회피애착을 가진 사람이다.
애착 상대를 부정하다시피 하는 회피형,
애착 상대에게 집착하는 불안형.
그리고 그 둘 다 혼란하게 뒤섞인,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안지도 밀어내지도 못하는 혼란형.
사람 열 명 중 네 명은 불안정 애착이라고 하지만, 나 같은 혼란형 애착의 경우는 고작 5퍼센트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나의 연인도 같은 유형이었다는 걸, 검사를 보고 알게 되었다.
어떤 불안정 유형이 그러길 원해서 그렇게 되었겠는가?
어린 시절 상처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나의 등에는, 그 고통만큼 징그러운 흉터의 흔적이 낙인처럼 남아 있었다.
그 어린 시절의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나는 바뀌어야만 했다.
공부하고 싶었다.
어떻게하면 이겨낼 수 있는지, 바뀔 수 있는지.
그러나 혼란형 자체가 드물다 보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란형을 설명하는 유튜브나 게시글 자체도 매우 적었고, 하물며 혼란형끼리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다루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써보기로 했다.
이것은 나의, 그리고 함께하는 연인과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팔자라고 할 지도 모르는 과거의 흉살을 지워내려는, 그러한 사람들의 조용한 분투기이다.
과거로부터 살아남은 사람이 그 흉터까지 감당해야만 한다는 현실이 가슴 쓰린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소중한 사람을 상처없이 안아주기 위해 재탄생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작고 미련한 나의 삶의 흔적이 그들의 해맴을 조금이라도 덜어준다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가 이것으로 자기 자신과 나를 좀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아마 그것으로 충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