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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프라인 Feb 04. 2024

글쓰기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ㅇㅇ입니다.

독서의 시간

 [한 번에 대출 12권. 대출 기간 2-3주.]


 최근 집 근처에 대출 기간이 길고 많은 책을 빌려주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P는 기분이 좋습니다.


 걸어서 약 15분.


 운동삼아 산책 삼아 걸어가기 딱 좋은 거리입니다.


 공원을 가로질러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빽빽한 빌딩의 도시에서 잠시나마 눈을 돌려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보여주면서 P에게 생기를 되찾아 줍니다.


 들어섰을 때 한눈에 들어오는 도서관의 공간 P의 마음에 듭니다.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책들 분야별로 책장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습니다. 


 붐비지 않고 한적한 도서관 분위기 참 좋습니다.


 앉아서 책을 읽을 공간이 많지 않아 책을 빌릴 사람 아니면 올 일 없니다.


 소수의 방문객이 대출 후 나가거나 화장실 이용하려 움직이는 작은 소음만이 고요한 공간을 흔들 뿐입니다.


 몇 명 안 되는 방문객에 도서관 대출대에 근무하는 직원들 조용히 책을 읽고 있습니다.


 P는 오랜 시간 빌릴 책을 살펴봅니다.


 손길이 아직 닿지 않은 책들이 마치 자신을 보아 달라는 듯합니다. P는 괜스레 우쭐해집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꺼내 이 부분 저 부분 읽어봅니다.


 어떤 책은 뒷면에 홍보 부분을, 어떤 책은 작가의 소개글이나 인사말을, 어떤 책은 목차에서 흥미로운 소제목을 훑어보고 해당 쪽부터 몇 장을 읽어봅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책과 해님이 좋아할 책, 본인이 좋아할 책을 고르다 보니 다리가 아픕니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돌아가야 할 시각입니다.


 더 있는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내내 서서 책을 고르는 것은 기쁨과 동시에 피곤함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이 P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는 자신과 가족들의 이름으로 책을 몽땅 빌립니다.


 아이들 책 4권, 해님 책 2권, 본인 책 4권.


 P는 책 욕심이 많습니다.


 책 무게로 집에 가는 길이 조금 힘들지만 2주 동안, 연장하면 3주 동안 볼 수 있기에 마음은 흐뭇합니다.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거실벽을 완벽히 가린 책장입니다.


 신혼 때 장식장으로 썼던 가구는 아이들 책이 늘어나면서 책장이 되었습니다.


 듬성듬성 놓여 평화롭고 한가로운 서재 분위기의 거실을 만들었던 장식장은 지금은 빽빽하게 꽂힌 아이들의 책으로 허리가 휘었습니다.


 P의 책도 있습니다.


 P의 책은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위로 올라가 이제는 제일 위 쪽의 8칸 정도를 차지할 뿐입니다.


 자리가 없어 안쪽과 바깥쪽으로 1칸에 2칸 분량을 넣다 보니 책 끝부분이 조금 삐죽 나왔습니다.


 언젠가 자신의 서재를 만들어 책들을 보기 좋게 꽂아놓고 여유롭게 독서시간을 갖는 것이 P의 몇 안 되는 소망이자 현재의 망상입니다.


 각자에게 책을 배분하고 여유로운 독서시간을 갖는 것은,


 P에게는 사치입니다.


 해야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런 겁니다.


 잠시나마 도서관에 다녀와 기분을 전환해도 그만큼의 일 쌓여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일하기 전 아이들이 거실 의자에 앉아 빌려온 책으로 독서를 시작하는 모습에 기특하고 흐뭇하면서도 부럽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P도 빌려온 책들을 오자마자 볼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겠지요.


 시간은 흐르고 집안일을 마치니 모두 이미 잠들었습니다.


 하루를 마치며 글을 쓰려는데 빌려온 책의 표지가 눈에 띕니다.


 글을 쓰고 책을 봐야는데 글을 쓰면 책을 못 보고 잠들 것 같은 그런 기분입니다.


 '조금만 볼까...'


 P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책을 잡습니다. 아침에 100퍼센트였던 배터리 양은 아직도 80이나 됩니다.


 조금만 보려던 몇 장열 장이 고 한 챕터가 지나며 금세 절반을 보게 되었습니다.


  요새는 하루에 100권도 넘게 출판한다는데 하나같이 재미있고 작가들은 모두 글을 잘 씁니다.


 250여 쪽짜리 책의 절반을 넘어가는 순간,


 날짜가 바뀌었습니다.


 하루에 한 편식 글을 올리는 다른 작가들처럼 자주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 전인데,


 며칠 만에 P는 그 다짐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기왕 이리된 거...'


 P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책에 더욱 집중합니다. 그리고 마저 다 읽고 마취주사 맞은 환자처럼 그대로 잠들어버렸습니다.


 현재 P의 글쓰기에 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은 독서입니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책과 글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글을 쓰는데 글이 방해가 되는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P는 오늘도 난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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