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대단한 걸 가르친다고
별 것 안 가르치는 사람에게 그런 걸 다
대학생 P는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넉넉한 적이 없었지만 서울에서 가장 비싼 동네 중 한 곳에 엉겁결에 이사하여 들어오게 되면서 더욱 부담이 되었습니다.
비록 반지하 원룸이지만 보증금과 월세는 상당히 부담이 됩니다. 부모님께서 집에 대한 비용은 대주시고 필요할 때 쓰리고 돈도 주셨지만 자취 일주일 만에 이로는 대학 생활에 택도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싱그러움이 넘칠 신입생 시기에 같이 어울리기는커녕 밥을 안 굶으면 다행인 신세입니다.
'일을 하자.'
하지만 P에게 서울은 외국과 다름없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 낯선 동네와 교통.
오래 살았던 곳은 없지만 가족이라도 있었던 때와는 달리 학업 때문에 홀로 상경한 서울에서는 도통 무얼 해야 할지, 어디서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알바 자리를 알아보았지만 학업과 병행하기에는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다 학교에서 부직서비스로 대놓고 과외를 연결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거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를 아는 동기도 별로 없고 심지어 신청하는 학부모도 거의 없습니다.
P는 공강시간에 도서관 알바를 하며 틈날 때마다 클릭해 보지만 할 일없이 3월의 시간만 흘러갑니다.
어쩌다 과외 교사를 구하는 목록이 한두 개 뜹니다.
'초등학생 국어, 수학 - 원하는 성별 여'
'초등학생 수학 - 원하는 성별 여'
'중학교 국어, 수학 - 원하는 성별 여'
죄다 '여', '여', '여'입니다. 누구는 없어서 못 구하는데 몇 개의 자리는 거리가 멀어 인기가 없나 봅니다. 오랫동안 목록에 남아있다가 사라집니다.
그러다
'고등학생 영어 문법 - 원하는 성별 없음'
이 떴습니다.
당장 신청합니다. 거리도 꽤 가깝습니다.
'경쟁자가 없어야 하는데...'
진행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 방도는 없고 P는 하루하루 목록을 확인하며 입술이 말라갑니다.
그리고
'부우우웅'
수업 중 문자가 옵니다.
'접수하신 부직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011-xxx-xxxx로 연락하여 협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됐습니다!
서울에서 첫 과외 알바를 구했습니다!
연락을 드리고 약속장소에 나갑니다.
집에서 가까운 반포라는 동네의 아파트 단지입니다. 오래되어 보이지만 학교 지하철역에서도 가까울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깝습니다.
"많이 가르쳐 보셨어요?"
첫 질문입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몇 명 해보았습니다."
사실은 사촌들 몇 번 봐준 것이 전부입니다.
"이번에 수능 시험 보고 왔어요? 1학년?"
"네."
"네, 알겠어요. 잘 부탁해요."
그렇게 면접이 끝났습니다. 이렇게나 쉽고 빠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님은 금세 커피숍에서 자리를 뜨셨고 P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P는 바로 그 주부터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P는 영어에 자신이 없습니다. 텍스트로만 공부했기에 영어 듣기 평가는 모의고사 때에도 매번 부담이었습니다. 그나마 문법이 해볼 만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한 공부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해당 학생은 남자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다행히 P의 말을 잘 따라와 주어 금세 성적이 올랐습니다.
고액과외도 아니고 성적이 오른다고 과외비도 올려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받는 돈으로 최소한 남들과 어울려 주중에 점심식사 정도는 부담 없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P는 다양한 학생과 다양한 동네로 점차 범위를 늘렸습니다. 남들이 신청하지 않는 모든 동네의 수요를 클릭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하루에 2곳씩도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하는 시간이 늘자 다른 친구들과도 제법 어울릴 수준이 되었습니다. P는 일을 허락해 준 모든 분들이 감사했습니다.
학부모님들은 P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항상 반갑게 맞아주시고 다과도 준비해 주셨습니다.
마포에서는 늦은 밤에 너무 먼 곳까지 왔다 간다며 P의 집 근처까지 가족들과 심야드라이브라는 명목으로 태워다 주시기도 했습니다.
오후 수업이 끝나자마자 갔던 잠실 남자 초등학생의 할머님께서는 무엇하러 돈 아깝게 혼자 저녁을 사 먹냐며 밥공기 하나만 놓으면 된다고, 그냥 같이 저녁 먹자고 식탁에 P의 밥그릇과 수저를 놓아주시기도 하셨습니다.
P는 감사하면서도 매번 당황스러웠습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인데 매번 다른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셔서 고마우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낱 과외교사일 뿐입니다.
선생님이라고 불려도 그래봐야 20대 대학생,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며 경험도 부족합니다.
일주일에 겨우 1,2시간, 많게는 4시간 알려줍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과 차이도 크게 없습니다.
다만 옆에 앉아서 놓친 것 같은 부분을 다시 알려줄 뿐입니다.
P는 현재 학교에서 하고 있는 일이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이 조금 달라졌을 뿐입니다.
요즘 일부 사람들은 학교에서 뭘 배우고 가르치냐고 합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뭘 배우냐고 학원이나 과외로 더 많이, 더 잘 배운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게요. 뭘 대단한 걸 가르친다고 예전의 그분들은 P를 그렇게 대해주셨을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P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P는 경험이 쌓이고 훨씬 실력도 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P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오히려 그때보다 안 좋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보다 돈을 적게 받기 때문일까요. P는 조금 의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