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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프라인 Feb 07. 2024

이 시국에 통합 학급을 맡으려고 합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습니다.

 학생은 방학이지만 교사는 학교에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중요한 결정이 있는 날입니다.


 넓은 공간에 여러 명이 앉아 있지만 한없이 고요합니다.


 "아무도 없으신가요?"


 대답이 없습니다. 다들 묵묵부답, 아래를 쳐다보며 시선을 회피합니다.


 지금만 참으면 됩니다. 이 순간만 참으면 1년이 편해집니다. 짧은 이 시간을 버텨야 합니다.


 "제가 많이 도와드릴게요."


 보다 못한 특수교사가 한마디 거듭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어색한 침묵을 깨지 못합니다.


 올해 통합 학급 운영 담임교사 선정 건입니다. 특수(?) 학생에 대해 어수선하고 말이 많은 시기라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습니다.

 

 P평소 엉뚱한 근자감이 있습니다.


 '못하는 일은 없다. 다만 잘하지 못할 수도 있을 뿐이다.'


 그의 이상한 철학입니다.  


 "경험이 있어?"


 라고 묻는다면


 "세상에 똑같은 경험은 있을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특이한 성격입니다.


그는 언제나 먼저 나서지 않습니다. 심지어 좋은 기회가 와도 나서지 않습니다. 그냥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지나가길 바랍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수 학생을 가르치고 통합 학급을 운영한 경험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네,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경험이 있으니 잘하겠네.'라고 말하면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부탁해요.'라고 요청하면 '네.'라고 대답할 겁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질문과 요청을 할 수는 없니다. 누가 자신은 손해보지 않으려 일을 넘기는 듯한 발언을 남들 앞에서 할 수 있을까요.


 침묵과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그렇게 시간은 흘러갑니다.


 "하실 분 없으면 제가 할까요?"


 P가 말을 던지자 이야기 급진전됩니다.


 "선생님이 맡으실래요?"


 "선생님, 경험 있으시죠?"


 "괜찮으시겠어요?"


 순식간에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옵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금세 걷혔습니다. 드디어 1년 중 가장 어려운 순간이 지나간 것입니다. 다른 여러 일들이 순식간에 결정됩니다.


 역시 한 순간만 참으면 됩니다. 잠시만 버티면 이번에도 또 넘어갈 수 있는 겁니다. 누군가는 맡게 되고 그렇게 일 년을 편히 지낼 수 있게 됩니다.


 P는 특이합니다. 아무도 그에게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담합해서 그로 몰아간 분위기도 아닙니다. 그도 그냥 침묵하고 있었으면 그가 아닌 누군가가 맡았을 겁니다.


 P는 왜 그랬을까요.


 20대의 P는 젊지만 경험 없는 신규교사였습니다. 그때의 P는 일은 맡겨도 학생은 맡길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의 언행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아이들을 참사랑으로 대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교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꽤 있어 보였습니다.


 여전히 P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 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위치는 변했습니다. 예전대부분이 그보다 선배교사지만 지금은 후배교사도 꽤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기는 위 선배교사도, 아래 후배교사도 책임과 사명감으로 선뜻 나서기 어려운 부담의 시기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P의 위치는 지금 시기에 해줘야 하는, 그에 걸맞은 위치라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를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잘할 자신은 없지만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학생을, 통합 학급을 내년에도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올해 맡으면 내년부터는 피해 갈 명분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도 그 역시 피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처럼 계속해서 자신을 뺀 다른 누군가가 맡아주기를 바랐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평생 한 명의 특수 학생도 맡지 않고, 한 번의 통합 학급 운영하지 않고 퇴직하겠지요?


 반면에 어떤 누군가는 계속해서 특수 학생을 맡고 통합 학급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P가 마치 학교의 큰 짐을 짊어지고 희생하는 것처럼 썼지만 교직에 통합 학급을 운영하는 교사는 많이 있습니다. 특수 학생을 담당하고 심지어 일대일로 가르치는 특수교사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의 사태와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가는 교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2024년을 응원합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들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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