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대학교를 다니면서 느꼈던 점은 본교와 분교생들이 학교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같은대학교이지만 분교생들은 대체로본교의 동일학과 학생들에 비해 자부심이 낮았다.
우리 학과는 본교와 분교 양쪽 캠퍼스에 동일학과(산업공학과)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비교문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본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학우들은 본교 재학생들을 부러워하는듯했다. 특히 취업과 진로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이번에 대기업 S회사에서 서울캠퍼스(본교) 4학년 학생들여러 명을 스카우트해서 뽑았어. J선배는 품질관리기사 자격증을 따서 M회사에 취직했대"
취업시즌이 되어 학우들과 대화를 할 때면 위와 유사한 취업 이야기가 들렸다. 우리 학과 학생들은 본교 학생들에 비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취직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입사지원서에 본교와 분교를 구분하여 표기하도록 했고 채용에 차별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4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 학과 L교수님은 학우들에게 대학교 근처에 있는 B공단에 취직을 권유했다. B공단은 경기도에 있는 중소제조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공단 중 하나였다.
다른 대학교에 비해 본교와 분교의 거리가 가까운 편이라 그런지 방학 때는 본교 캠퍼스에 분교 학생들이 많이 거닐며 돌아다녔다. 나도 집이 서울에 있어서 거의 본교로만 다녔다. 그런데 본교 캠퍼스를 거닐다가 타인으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종교나 어학 등 본교 학생으로부터 동아리회원가입을 권유받을 때처럼 말이다.
"이 학교 학생이세요?"
"... 네"
답변하기 애매했다. H대학교 학생인 건 맞는데 재학하는캠퍼스가 달라서대답을어물쩍하게 했다.
"어느 학과 다니세요?"
"A캠퍼스 산업공학과 다녀요"
"아. A캠퍼스 학생이시군요. 그 학교도 좋죠"
더 이상 구체적인 대화를피하고 싶었다. 상대방이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다른 대학교 여학생들과 미팅을 할 때도 그랬다.
"H대학교 공대 다니세요?"
"네"
"고등학생 때 공부 꽤나 잘하셨겠군요"
"... 별로요"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의 대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다른 주제로 화젯거리를 바꿔 이야기했다. 사실 H대학교 분교생이라고 자부심이 낮았다는 말은 아니다. 본교와 비교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학과에서는 재학생들의 소속감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을까. 고학년 선배가 신입생들에게 학교생활을 위해 멘토링을 했을까. 아니면 학교 로고가 새겨진 옷(점퍼, 티셔츠)이나 필기구(노트, 바인더) 등을 나눠줘 소속감 향상에 도움을 주었을까.
독특하게도 우리 학과는 학과노래와 학과구호라는 것이 있었다. '과송(Department song)'이라고 불렀던 학과노래는 1960년대 가요에다가 가사를 개사해 만든 노래였다. 노래방에서 어떤 학우가 가요를 우리 학과에 맞게 개사해서 불렀던 것이 소문이 나면서 학과노래가 되었다.
학과구호는 신입생 때 학생회장이 교실에 들어와서 가르쳐주었다. '산공구호'라고 불렀던 학과구호는 체육대회나 학과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단골로 외쳤던 구호였다. 구호의 내용은 학과 과목명, 산업공학 용어, 대학명, 학과명을 잘 배열해서만든 느낌이었다.
우리 학과 학우들 다수는 남들에게 분교 캠퍼스에 다닌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따라서 캠퍼스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을 때에는 굳이 캠퍼스까지 말하지 않았다. 캠퍼스까지 말하게 될 때 남들이 보이는 반응을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이러한 심리적 요인은 우리 학과뿐만 아니라 다수의 분교 재학생들에게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