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이 관건이다. 이 말의 중요성을 다시 느끼는 것은 30년 만이다. 30년 전 대학원 석사과정을 다닐 때 함께 공부하던 학우들은 가끔 이런 말을 했다.
"논문 통과 못하면 졸업 못 해"
"K선배는 논문을 쓰지 못해서 한 학기 더 다니게 되었다는데"
여기서 논문이란 졸업논문 즉, 학위논문을 의미한다. 학우들의 이러한 말은 대학원을 졸업해야 하는 나에게 중요하게 들렸다. 비싼 등록금을 대어주는 부모님께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제 때에 졸업하는 것이 중요했다.
석사과정은 2년 과정으로서 졸업학점을 이수하고 논문을 완성해야 졸업할 수 있었다. 논문은 지도교수님을 포함한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필수적으로 받아야 했다. 드물긴 하지만 논문을 쓰지 못해 학교에서 한 학기를 더 다니는 학우도 있었다. 논문 때문에 한 학기를 더 다니고 있다니 안타까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우들은 제 때에 졸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수업을 열심히 듣고 학점을 이수하다 보면 졸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졸업이 가까워지자 논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만학도로서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도 교수님들과 박사과정 선배들은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논문이 관건이에요. 논문을 쓰지 못하면 수료로 끝나죠"
"학우님의 목표는 박사가 되는 것일 텐데 박사가 되려면 논문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박사가 된 후에 해도 충분해요"
수업을 같이 듣는 선배들은 논문을 쓰지 못하면 박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졸업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조언해 주었다. 교수님들의 수업내용도 논문이 중심이었다. 학우들의 관심이 논문 작성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한 교수님은 본인이 연구할 논문주제를 찾아보고 관련된 내용을 A4용지에 작성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한 명씩 작성한 내용을 발표하고 피드백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교수님들도 강의 형식은 다르지만 결국 강의의 핵심은 논문 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교수님들은 수업시간 중 많은 시간을 논문작성 프로세스나 사례, 컨설팅을 하는데 할애하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졸업하려면 논문을 써야 할 텐데 수업 내용이 논문 작성에 도움 되는 것 같아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교수님들이 경영학이나 컨설팅학과 같은 이론적인 내용에 대해 강의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논문에 대해 강의하는 시간이 많다고 느껴졌다.
나에게는 두 번의 논문 작성 경험이 있다. 둘 다 석사학위 논문이었다. 20대 중반,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반대학원에 다닐 때였다. 공대의 경우에 일반대학원에 입학하면 가고 싶은 교수 연구실을 지원했고 받아 준 교수연구실에서 근무를 해야 했다. 이때 받아 준 교수가 지도교수가 되었다. 연구실은 직장이 아닌데도 매일 출퇴근해야 했다.
내가 운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으나 우리 연구실에는 교수님이 거의 안 계셨다. 교수님은 보직교수라서 대학교 본관에서 근무했다. 연구실 생활은 매우 자유로웠고 다른 연구실과 달리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하지 않았다. 연구실에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해도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졸업할 때까지 시간이 많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1년이 지나 3학기가 되자 다른 연구실의 학우들이 논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논문 작성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냐고 말이다. 논문에 대해 아직 생각해보지 않은 나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J학우와 함께 지도교수님을 만나러 본관에 갔다.
"교수님. 논문을 써야 하는데 지도 좀 받고 싶어서 왔어요"
"논문 지도.. 왜 이제야 왔지? 논문 쓰기에 시간이 별로 없을 텐데. 논문 주제는 정했어?"
"아뇨"
교수님은 부모 뻘 되는 나이가 지긋한 분이었다. 학과에서 서열도 높은 분이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왜 이제야 찾아왔냐고 말했다. 논문 쓰는 것이 만만찮을 텐데 우려스럽다고 말이다. 그리고 논문 주제는 정했냐고 물었다.
"논문지도를 해줄 수가 없어. 일이 바빠서. 자유롭게 알아서 주제 정하고 써"
교수님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연구실의 석박사과정 학생들 논문을 지도해 주는 데 신경을 써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박사과정 선배 중에 논문 작성에 대해 도와준 선배가 있어서 제 때에 졸업할 수 있었다.
다른 한 번의 논문 작성 경험은 50대 초반에 특수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닐 때였다. 특수대학원은 재학생 대부분이 직장인이었다. 수업은 평일 야간시간에 들었다. 따라서 연구실에 출근하여 교수님과 함께 연구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특수대학원도 원래 논문을 써야 졸업할 수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서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학칙이 바뀌었다. 논문을 쓰는 대신 학점을 추가로 이수해서 졸업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석사과정은 2년 6개월 과정인데 2년 동안 학점을 이수하고 6개월은 논문만 전념해서 쓸 수 있었다.
대학원 생활 1년이 지나서 3학기가 되자 논문을 써서 졸업할지 아니면 추가학점을 이수해서 졸업할지 생각해 보았다. 왠지 논문을 쓰고 싶었다. 20대 때 일반대학원 다닐 때 지도교수로부터 논문지도를 받지 못해서 이번에는 지도교수로부터 제대로 된 논문지도를 받고 싶었다. 그래서 논문지도를 열심히 해줄 것 같아 보이는 교수님에게 수업이 끝난 후 논문지도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교수님은 내 요청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논문지도를 받고 싶으면 주말에 T카페에 오라고 말했다.
"학점으로 졸업해도 되는데 논문 쓰려고? 논문은 써 봤어?"
"아. 아니요"
논문을 써본 적 있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20대 때 쓴 석사학위 논문은 남들에게 썼다고 말하기가 조금 부끄러웠다. 교수님은 60대 중반의 겸임교수였다. 교수님은 내가 논문주제로 어떤 내용을 생각하고 있는지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물었다. 또한 논문 형식, 검색 방법 등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을 간략히 설명해 주셨다. 이런 식으로 카페에서 교수님과의 만남을 몇 번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교수님은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했다.
"이런 말 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한데 내가 자네를 보았을 때의 느낌을 말해볼게. 솔직히 이번에 자네가 쓰는 논문이 통과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워. 자네가 말하는 것과 논문 쓴 내용을 보면 믿음이 안 가"
교수님은 내 모습이 자신감이 부족해 보이고 논문의 품질과 작성속도로 봐서 논문심사에서 통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부족하지만 한번 논문을 써 본 경험이 있지 않던가. 다행히 교수님의 예상과는 달리 논문심사를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혹자는 박사가 된다는 것은 독립적으로 연구를 주도해서 수행할 수 있는 연구자로서 인정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석사과정 때의 경험은 분명히 박사과정 논문 쓸 때 도움이 될 것이다. 과연 내가 석사과정 때의 경험을 기억하며 박사과정 졸업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