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시험을 치르는 날 시험장에 입실하기 전에 감독관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수험자들이 부정행위를 하지 않고 정당하게 치르기를 바랄 것이다. 감독을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할 것이다. 반면에 수험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시험지에 아는 것이 많이 나와서 시험을 잘 보기를 바랄 것이다. 시험을 치를 때 궁금한 것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감독관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할 것이다.
시험감독을 해보기 전까지는 이 정도로만 생각했다. 시험감독을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감독관의 심리를 잘 알지 못했다. 나는 5년 전부터 시험감독관을 하고 있다. 부업으로 하고 있다. 월급쟁이 회사원을 그만둔 후 N잡러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합법적인 일이라면 여러 개의 일을 해보고 싶었다. 시험감독관을 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였다.
시험감독관을 하게 된 것은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자격증을 따면서부터다. 이 자격증은 10년 전에 취득했다. 십수 년 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후 무얼 할까 생각하다 취득한 자격증이다. 남을 가르칠만한 실력은 안되지만 일단 한번 따놓고 보자는 생각에 취득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니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그중에 하나가 시험감독관이었다.
시험감독은 S공단으로부터 위촉을 받아서 했다. 공단담당자는 감독관으로 일할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주었다. 수험자들은 IT학원이나 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렀다. 정보처리 관련 자격증이라 주로 IT학원에서 시험을 치렀지만 특성화고에서 할 때도 있었다. 시험날이 되면 감독관들은 수험자들이 오기 전에 시험장 운영본부에 모여서 진행할 내용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시험감독해 보신 적 있으세요? 처음 하시는 건가요?"
공단관리자가 감독관들에게 물어보았다. 공단관리자와 감독관들이 서로 초면(初面)인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생기는 질문이었다. 시험 볼 때 감독은 두 명이서 하므로 나 외에 감독관이 한 명 더 있었다. 나는 그를 짝꿍 감독관이라고 생각했다. 내 짝꿍 감독관이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일하기가 편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처음 하는 거라서요"
"제가 한두 번 밖에 시험감독을 해보지 않아서요"
이렇게 대답하는 초보감독관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어떤 감독관들은 시험감독을 자주 해본 듯했다. 그들은 여유 있는 태도로 시험진행이나 자격증에 대한 여담을 말했다. 수험자들이 입실하면 공단관리자는 수험자들의 본인여부를 확인하고 자리에 착석시켰다. 그런 후 감독관은 문제지에 적힌 수험자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시험이 시작되면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시험지 넘기는 소리나 간헐적인 기침소리 등이 들릴 뿐이었다. 이틀간 시험이 진행되었다. 첫째 날은 필기시험을 치르고 둘째 날은 실기시험을 치렀다. 아침 9시에 시작된 시험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감독관들은 주변에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나는 수험자들이 답안지에 작성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감독관으로서 새벽같이 시험장에 출근하느라 피곤해서인지 몸이 나른해졌다. 무거워진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가고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화장실 가도 될까요?"
앞자리에 앉아 있는 수험자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순간 깜짝 놀랐다. 시험장에서 감독하고 있다는 사실에 머쓱하고 미안해졌다.
"네. 다녀오세요"
필기시험의 경우는 시험시간이 길지 않아서 시험 도중에 화장실을 다녀올 수 없었다. 하지만 실기시험의 경우는 달랐다. 시험시간이 4시간이나 되기 때문이다. 수험자가 화장실을 가야 할 때는 감독관 한 명이 따라갔다. 혹시 모를 부정행위를 막기 위함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수험자를 따라갔다. 그리고 수험자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렸다.
시험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자리에 엎드리기 시작하는 수험자들이 생겼다. 양팔을 책상 위에 웅크리고 머리를 손등 위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피곤해서 인지 포기하고 싶어서 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저기... 저 포기할게요"
한 수험자가 엎드려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수험자에게 다가가 문제지에 'X'라고 표시하고 수험자 이름을 적었다. 씁쓸해하며 퇴실하는 수험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안타까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포기하는 수험자가 많다는 건 분명히 수험자와 학원 측에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감독관으로서 일하기는 편했다. 실기시험의 경우에 채점시간이 꽤 소요되는데 포기자들이 늘어날수록 감독관이 할 일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포기자들이 늘어나기를 바랐다.
"포기자들이 많아서 안타깝네요. 많이 합격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학원 측 담당자에게 포기자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짝꿍 감독관에게는 포기자들이 많아 일찍 채점이 끝나서 좋다고 말했다.
실기시험은 PC로 하는 작업이었다. 채점도 PC화면상에서 기능이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시험종료 전에 작업을 일찍 끝내 퇴실하는 수험자들이 있는 반면 늦게까지 작업하는 수험자들이 있었다. 한두 명 정도의 수험자들은 종료시각이 되어서야 시험지와 작업물을 제출했다.
'한두 명 때문에 퇴근이 늦어지겠는 걸'
이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시험을 치르고 있는 수험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과거의 내 모습이 회상되었다. 나도 이분처럼 시험 볼 때 가장 늦게 퇴실하는 수험자였다. 1점이라도 더 받고 싶어서 끝까지 자리에 앉아 있곤 했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과거 시험 볼 때의 내 모습과 현재 시험감독관으로서의 내 모습이 대비되었다..
올해 기회가 생겨 공기업과 은행 입사시험도 감독해 보았다. S공단에서 주관하는 자격증 시험과 비교해 볼 때 진행방식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났다. 시험은 방송으로 진행했다. 수험자와 감독관은 방송 진행자가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다. 성적은 OMR카드로 채점되므로 감독관이 할 일은 적었다. 대신에 시험진행은 엄격하고 까다로웠다. 시험을 감독하는 경험이 늘어나니 수험자로서 시험을 치를 때와 비교해 감독관으로서 여러 가지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