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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이와 지덕이 Feb 01. 2024

페리 타고 제주도로 가다가 거친 풍랑을 만났다

결혼 전후로 내 생활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여행 가기도 해당된다. 아내는 여행을 좋아해서 새해가 되면 올해는 어디로 여행 가면 좋겠냐고 의견을 물어보곤 한다. 나는 총각 시절에 혼자 여행을 다니지 않았다. 낯설고 생소한 지역에 다니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식사, 숙소, 이동 등의 문제에 있어서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이 필수적일 텐데 내 어학실력으로는 그들과 의사소통을 거의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니게 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아내는 낯선 지역 여행을 다닐 나보다 계획적이었고, 외국에 가서도 더듬거리지만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을 수 있었다. 


2024년 1월 초, 아내는 1월 말경에 제주도로 여행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우리 부부는 코로나19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기를 제외하면 8년 전부터 매년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오고 있다. 아내는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 자연 속 힐링과 따뜻한 온천을 즐기고 싶었던 나는 아내의 질문에 동의했다.  


우리는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제주도로 갈 때는 목포에서 제주도로 페리(Ferry)를 타고 갔다가 서울로 올 때는 제주도에서 완도로 가는 페리를 타고 가기로 했다. 사실 아내는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전라남도도 멋진 곳이 많으니 페리를 타고 제주도로 다녀오면서 전라남도 여행도 하자고 말했다. 아내는 나의 의견에 따랐다.

 

제주도로 가기 전날인 1월 21일 오후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해운회사로부터 온 문자였다. 문자의 내용은 페리가 출발하는 날인 1월 22일 기상악화가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출항 시간이 출발일 오전 8시 45분에서 오전 8시로 45분이 앞당겨진다는 것이었다.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은 있었지만 예전에도 타 본 경험이 있는 대형 카페리(Car Ferry)라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승선 시간이 되어 페리 선내로 이동했다. 이코노미 객실에 도착해 보니 늦게 도착한 편인지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짐을 객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어 페리가 출항했고, 우리는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사 도중 창 밖을 보니 섬들이 보였다.


"오빠. 멋있네. 바다 위에 섬들을 봐!"


아내는 감탄을 연발했다. 아내가 드디어 내 기분을 이해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 타고 가는 것은 비행기를 탈 때와는 다른 풍경에 색다른 낭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날이 춥고 바람이 강해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실 내에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혼자 앉아서 무언가 먹거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파도로 말미암아 페리 선체의 흔들림이 있으나 그리 강하지 않게 느껴졌다. 예전에 페리를 탔을 때보다 조금 강한 정도의 흔들림이랄까. 그런 느낌이었다. 탁자 위에 노트북을 켜고 문서작업을 하다가 선실 창 밖을 보면 끝없이 바다가 펼쳐 보였다. 그러다가 섬들이 하나 둘 눈앞에 들어오더니 서서히 사라졌다.


페리는 목포항을 떠나 여러 가지 섬들을 지나가자 망망대해와 같은 바다만 보였다. 이렇게 시간이 꽤 흘렀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 궁금했다. 스마트폰의 구글 사이트에서 현재 위치를 검색해 보니 제주도가 멀지 않은 시점으로 보였다. 페리가 출항한 지 4시간 반 정도 되었다. 그때 나는 노트북을 덮어 가방에 넣고 아내와 함께 바다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배가 파도에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으나, 나는 파도에 위아래로 움직이는 창문을 보면서 리듬을 타며 즐기고 있었다.


"쨍그랑"


그때였다. 갑자기 페리가 크게 휘청이더니 큰 소리가 났다. 식당에서 어떤 음식통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앞을 보니 파리바게뜨 제과점에서 상품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식당 탁자 위에 있는 핸드폰도 바닥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몸의 중심을 못 잡아 휘청였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표정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옆을 보니 아내도 표정이 굳어졌다.


아내는 객실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객실로 이동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객실로 이동했다. 객실 내에는 청소년들과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페리가 좌우로 흔들리는 상황을 견디고 있는 듯 보였다. 아이의 울음을 진정시키는 엄마, 불안을 느끼는 아이에게 타면 보다 더한 경우도 있는데 정도는 괜찮은 편이라고 안심시키는 아빠모습이 보였다. 청소년들은 자는 건지 참는 건지 없었지만 누워 있었다. 그들은 현재 위치가 어디쯤 왔는지 핸드폰을 보면서 확인했다.


아내는 구명조끼 착용에 대한 방송이 왜 안 나오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도 불안했으나 해상여객운송 방면으로 아는 바가 전혀 없으니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핸드폰을 열어 구글 지도를 봤다. 제주도 근방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된 상태였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도착까지의 시간은 우리에게 길게만 느껴졌다. 선내 방송으로 스탠바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사람들은 제주항에 도착했다고 안도의 말을 했다. 선내에서 밖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내려가니 제주도에는 강풍과 함께 눈이 내리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였다. 아내는 다시는 페리 타고 제주도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완도로 가는 페리는 이미 예약을 해놨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완도행 페리는 타겠다고 말했다.


1월 29일 제주도의 아침 날씨는 화창했다. 아내는 나와의 약속대로 제주도에서 완도로 출발하는 페리를 함께 탔다. 제주도에서 완도까지의 소요시간은 목포에서 제주도로 갈 때보다 훨씬 짧았다. 페리는 흔들림이 거의 없고 편안했다. 한참 시간이 흘렀을 때 아내는 지금 배가 운행 중이냐고 물었다. 흔들림이 거의 없어 배가 이동 중인 것도 모르겠다는 의미였다. 나는 아내에게 대형 카페리를 타면 원래 승선감이 이래야 정상인데, 1월 22일은 풍랑주의보가 있었던 만큼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선실 밖으로 나가 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아내의 표정은 밝았다.


1월 22일에 페리 타고 제주도로 가다가 거친 풍랑을 만난 경험은 아내와 나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다. 오나마하호, 퀸메리호, 골드스텔라호, 퀸제누비아호, 실버클라우드호, 비욘드트러스트호를 타봤지만 이런 경험은 없었고 승선감도 좋거나 괜찮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세월호를 탔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제주도 페리여행은 악몽과 낭만을 동시에 선물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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