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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리A서티 Oct 24. 2023

한국의 슬램덩크를 봅시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풀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아직 선연히 기억나는 도쿄여행 때 본 인상적인 장면. 악명높은 도쿄의 습하고 지독한 여름 더위하에서 긴 교복치마에 테니스라켓을 둘러매고 시내 한복판을 즐겁게 떠들면서 지나가던 고등학교 여학생 무리를 만났다. 서너명 정도의 학생들이 하나같이 책가방과 함께 테니스라켓처럼 보이는 것을 지니고 있었는데 모두 다 테니스에 매료되어 피부를 햇빛에 양보한 것인지 아주 오랜시간 그을린듯한 까무잡잡한 피부를 하고 있었다. 한여름 오후 시간대였으므로 아마도 부외활동(부카츠)으로 테니스를 치러 가는 길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 학생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던것은 아마도 두가지 이유, 그 무덥고 습한 도쿄의 한여름날씨에도 스포츠활동을 즐기고 있는 그 패기와 열정, 그리고 한편으로 어떻게 여고생으로 추정되는 학생이 이 오후시간에 운동을 즐길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었다. 그 시간대에 한국의 또래 여고생이라면 아마도 학교에서 방과후 학교에 참여하고있거나 학원에 있을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 일본의 학생들은 어떻게 오후에 저런 활동을 할 여유가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과 함께 매우 신선한 장면이었다.


일본과 한국은 여러면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들 한다. 그런데 최근에 언론기사에서 일본에서 한국만큼 대입에 매몰되지 않는 현상에 대한 분석기사를 본적이 있다. 기본적인 교육제도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실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의 경우 대체로 대학졸업장이 주는 경제적이득의 차이가 한국만큼 크지 않기에 대학입시에 경쟁이 우리나라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적어도 몇년전부터 아베노믹스하에서 일본의 취업시장은 대체로 매우 호혜로운 시장이었고(대기업외에는 골라서 취업할 수 있는 분위기) 전통적으로 일본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도 우리보다 적은 수준이었다. (한국의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 대비 절반수준인데 비하여 일본은 대체로 80% 수준)

그리고 문화적, 전통적인 부분의 차이도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와(和)문화로 대변되는 일본의 문화는 대체로 '사람들마다 알맞은 위치가 있다'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는데 이런것이 대학선택과 직업선택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즉, 대학을 통해 보다 유리한 삶을 살기는 바라는 마음은 똑같으나 지나치게 무리해서 대학을 가고 어떤 직업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이런점은 대학입시제도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일본과 한국의 교육기관의 명칭과 교육기간 등에서는 유사점이 있지만(한국의 초기 교육법 자체가 일본의 그것을 모방했다.) 대입제도와 대학의 위계등을 보면 크게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사립유치원에 어렵게 입성하면 이후로는 크게 뒤처지지 않는 경우 같은 계열의 명문 사립대학교(ex: 게이오,와세다 등 참고로 일본도 사립대학교의 비율이 70%이상)에 수월하게 입학할 수 있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매우 '불공정'한 입시제도임에도 일본특유의 와문화의 영향인지 이러한 제도를 받아들인다.(물론, 이러한 입시제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분명 있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대학의 서열화가 없는 것은 아니나, 명문대학이라고 일컫는 국립대학들이 지역마다 나름 소재해 있어서 어느정도 지역내에서 우수학생을 흡수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와문화의 특성이 없다면 이러한 대입제도는 받아들이기 힘들것이다. 어찌보자면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긍정적 체념의 문화이자 분수의 문화이며 다르게 보자면 매우 불공평하고 차별을 묵인하라고 강요하는 문화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일본은 이런것이 가능한 문화이다.


우리도 경제상황이 더 좋아지고 취업시장에 온기가 들어온다면 대학에 가기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경향이 줄어들까? 물론 큰영향을 끼칠것이다. 분명히 경제적 유인에서 변화가 있으면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끼쳐 대학에 가기위한 경쟁에도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참고로 IMF시대 이후 직업적 안정성에 대한 선호의식 때문에 의대에 대한 선호현상이 더 커진것도 이런 부분에서의 한 예시가 아닐까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남아선호사상의 문제도 사회적으로 딸에 대한 기대의식의 변황와 함께 바뀌어오지 않았나.)


하지만 경제체질이 바뀌기를 기다기이전에 선제적으로 우리 스스로 의식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는 의식의 발현에 관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향유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영원한 난제인 대학입시 문제의 큰 원인 중 하나로 나는 부모가 자녀의 삶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대리하여 고민하고 해결하려 주려는 과도한 애욕이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전 EBS의 한 다큐에서 부모와 자녀가 작은 방에 앉아 자녀가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부모가 어떻게 지켜보고 관여하는를 관찰하는 실험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국의 부모들은 조바심을 내어 자녀의 문제풀이 과정에 개입하고 도움을 주고자 시도하는데 비해, 서양권 부모들은 대체로 일정한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하며 지켜다보면서 '니 스스로 해결하라'라는 태도를 취하였다.(물론 이 한건의 실험으로 무조건적인 차이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매우 인상적인 실험이었다.)


자녀가 잘 성장하여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챙겨주고 지켜주려는 마음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결국 자녀의 인생에는 독이 될 것이다. 최근에도 서울의 모 대학에서 공지문을 통해 학생들에게 제발 학사문제는 스스로 해달라고 호소하는 사진을 보았는데 (가령 수강신청 등도 부모들이 전화해서 해결하려고 한다고 한다.) 충격적이었다. 대학생조차 스스로 일을 해결하지 못하고 부모들이 도와주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어떤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사회가 대학진학에 대해서 일생일대의 명운이 걸린 인생최대의 투자이자 경쟁으로 여기는데에는 사회적 경제적 유인도 있겠지만, 자신의 인생은 자기 스스로 개척하도록 격려하고 유도하는 문화가 부재한 측면도 크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갈지 말지, 어떤 대학을 갈것인지 부모가 아니라 자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양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식이 정착될 때 우리나라에서도 입시와 상관없이 스스로 즐겁게 운동하고 문화활동을 즐기는 고등학생들을 길거리에서 보다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므로 정답을 맞출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생의 문제를 만들고 풀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길거리에서 한국의 꿈많은 강백호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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