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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어린이 Jul 24. 2023

<0.78>

<Radiology Digest 독자 투고>

 

신장암으로 신장 부분 절제술을 받은 환자가 수술 부위에 출혈이 생겨 응급 의뢰가 들어왔다. 혈관 조영실로 환자를 눕히고 시술을 시작했다. 환자분이 통증에 몸부림을 친다. 방광으로 혈뇨가 유입되어 생긴 혈종이 소변 나가는 길을 막아 방광이 부풀고 있으니 배가 아프고 온몸이 뒤틀리는 것이다. 또한, 피가 신장 주위의 후 복막 공간에 차오르니 옆구리도 아프다. 환자분이 불편한 것은 충분히 알지만, 얼른 출혈을 막아야 두 가지가 모두 해결되니 환자분에게 큰소리로 움직이지 말라고 하며 시술을 시작했다.

 

왼쪽 콩팥 동맥 조영 검사를 하니 피가 철철 나고 있다. 이제 그 혈관을 찾아 들어가 막아 주기만 하면 된다. 혈관을 찾아 들어가 막으려는 순간 환자분이 다시 온몸을 비튼다. “환자분 이제 피 나는 혈관을 막을 거예요. 잠시만 가만히 계셔주세요.”라고 하는 순간 환자분이 갑자기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제 아들이 28살입니다.”

 

나는 순간 속으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아들 나이는 왜 말씀하시는 거지? 이 다급한 순간에?’ 가끔 시술 방에서 우리 아들/딸 또는 사위도 의사입니다. 라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 가끔 계셔서 ‘아들이 의사라고 하시려는 건가? 28살이면 전공의인가?’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을 하면서 피가 나는 혈관을 막을 준비를 했다.

 

그 순간 환자분이 한마디를 더 보탠다. “제 아들이 다운증후군이에요 제가 지금 죽으면 안 됩니다.”라는 말에 “안 돌아가세요! 잠깐만 말씀하지 말고 움직이지 마세요.” 하고 피가 나는 혈관을 막았다.

 

시술 후 시행한 혈관 조영술에서 더는 피가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시술을 종료하였다. 그 뒤 그 환자분이 계속 맘에 걸려 퇴원할 때까지 날마다 차트를 열어보았고, 며칠 뒤 무사히 퇴원하신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그 순간이 워낙 급박해서 환자분의 말을 그냥 넘겼지만, 시술을 끝내고 나와 그 말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내가 만약 어린 아들을 남기고 떠나야 하는 순간이 혹시라도 온다면 나 역시 그 순간에도 남겨질 아들의 삶에 대한 걱정이 먼저일 것이다. 장성하여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기도 아닌 온전히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시절이니 얼마나 걱정이 될 것인가? 앞으로 같이 해줘야 할 것도 그리고 가르쳐줘야 할 것도 너무나 많다. 그 환자분은 아들이 충분히 장성한 나이가 되었어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에는 부족하니 그 위급한 순간에도 나의 안위가 중한 것이 아니라 남겨질 아들이 걱정되셔서 그런 말씀을 한 것이리라.

 

배속의 아기까지 두 아들의 아버지인 나는 아직도 부족하고 갈 길이 멀지만 아이라는 존재는 그런 것 같다. 아이가 아픈 것보다는 내가 아픈 것이 낫고, 해줘도 늘 부족한가 살피고, 늘 걱정되고……. 그러니 장애가 있거나 아픈 아이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떨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2022 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0.78을 기록했고, 그에 따른 기사들이 수도 없이 쏟아졌다. 이제는 한 명을 낳아도 평균 출산율 이상인 것이다. 남녀 둘이 만나 일도 안 되는 출산율을 내는 것은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흔들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 이 시대에 아이를 낳아 키우라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집값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오르지도 못할 나무라는 생각만 들게 하고, 그 자금을 모을 만한 양질의 일자리도 공급되지 않는다. SNS에서 보이는 영어유치원, 호캉스, 해외여행이니 하는 육아를 나도 내 아이에게 제공해 줄 수 있겠냐는 생각도 든다. 나 하나의 삶도 영위하기 힘든 세상에 결혼까지는 했어도 아이를 가질 생각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시대인 것이다. 내 주변을 봐도 대학에서 근무하는 젊은 의사들이 결국 대학을 나갈까 고민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육아에 대한 금전적 부담이다. 

 

요즘은 의식적으로 내가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결혼은 언제 할 거야?” “자녀 계획은 어떻게 돼?”라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는다. 가끔 결혼했거나 할 전공의나 후배들이 먼저 나에게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고민을 상담할 때가 있다. 사회 정책에 대한 비판, 출산에 대한 정부의 역할과 책임 들은 잘 알지도 못해 말할 수도 없다. 나는 솔직한 심정으로 내 생각을 말해준다.

 

“딩크족의 삶을 충분히 이해해 이 세상에 애를 가짐으로써 부모가 포기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세상이거든…… 네가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을 지금은 모르는데 굳이 그걸 알기 위해 네 삶의 많은 부분을 굳이 포기할 것도 없어. 그러니 온전히 너의 부부가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봐.” 그리고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나는 예전에는 이따금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어 ‘그때 이 선택을 했었더라면…….’ 또는 ‘그 행동은 하지 않아야 했는데……’ 그런데 아들이 생긴 뒤로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게 되더라고 과거로 돌아가 지금의 아내를 다시 만나 아이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잖아.

 

물론 주말의 늦잠, 심야 영화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이 왜 그립지 않겠는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다시 시작하는 육아라는 또 다른 일이 왜 고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러한 그리움과 고단함이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고 강제로 하나 됨을 느끼는 나중에 분명히 그리워할 이 순간의 행복을 가릴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늘의 비행기를 쫓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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