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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어린이 Jun 29. 2024

박카스 반병

“그렇게나 많이?”

“이정도도 모자라요 오빠”


11층 병동 내과 인턴 인계를 하던 날 인턴 동기 였던 학교 후배에게 인계를 받던 날이었다.


“우선 도시락(병원에서 흔히 말하는 1회용 드레싱 세트)을 까고 그 안에 거즈를 담을 수 있을 만큼 담아요”

라고 하며 산처럼 거즈를 쌓고 있는 그모습이 보니 “그렇게나 많이?”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거즈 위에 생리식염수를 붓고, 옆에 베타딘 볼을 쌓아요. 그리고 그냥 거즈랑 하이파픽스(의료용 반창고)도 많이 챙겨야 돼요. 이제 따라오세요” 라며 나를 병실로 데려갔다


그 병실은 연명 치료 환자들만 있는 병실 이었다. 대부분 의식이 없는채로 콧줄 또는 위루로 식이를 하고  계셨다. 그 중에서 한 구석으로 나를 안내한 그녀는 익숙한듯 보호자로 보이는 할머니와 인사를 했다.


“내일 부터는 이 선생님께서 드레싱을 해주실 거에요” 라고 나를 소개한 뒤 익숙하게 할머니와 같이 의식이 없는 뼈밖에 남지 않은 할아버지를 옆으로 뉘었다. 엉치부분에 커다랗고 두껍게 붙여진 드레싱을 벗겨 내니 왜 나에게 이정도도 모자라다 라고 한지 이해가 갔다. 환자의 욕창은 맨홀처럼 동그랗고 깊었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그 욕창의 깊이가 환자가 누워있던 세월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겉의 반창고와 짓물에 젖은 반창고를 걷어내니 안쪽에는 수십개의 구겨진 거즈가 계속 나왔다. 같이 간 선생님은 나에게 시범을 보였다.


우선 기존 거즈를 다 꺼내고 안쪽을 베타딘 볼로 닦았다. 그리고  생리 식염수를 적신 거즈를 짜서 한장 한장 떼어 내서 구겨서 안쪽 공간을 빼곡히 채웠다. 안쪽 공간을 다 채우면 위에를 두꺼운 거즈로 여러겹을 덮은뒤 의료용 반창고로 꼼꼼히 덮었다. 


드레싱은 처음 부터 끝까지 약 30분이 걸렸다.  말로만 해서는 안되는 인계라고 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환자분은 짓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하루 2번의 드레싱을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그 선생님은 11층 내과 병동을 떠났다. 잠과 수많은 일과의 싸움에 늘 시달리는 대학병원 인턴에게 토탈 1시간이 걸리는 드레싱은 존재는 사실 너무나 버거웠다. 대부분의 인턴들이 11층 내과 병동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2주 동안 새벽에 일어나 가정 먼저 11층으로 올라가 드레싱을 시작했다. 30분간 아무것도 못하고 드레싱에 몰두하고 있으면 목에 걸린 삐삐가 수도 없이 울렸다. 드레싱을 마친 후 쌓여있는 콜들을 하루종일 바쁘게 해결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11층으로 가서 드레싱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피곤에 쩔어있는 인턴에게 하루의 시작과 끝에 있는 이 일은 자기전 생각나고 또 일과시간에 늘 생각나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한 점을 눈치를 챘는지 아니면 늘 피곤해 보이는 인턴들이 가여워서 인지 환자 옆 보호자 침대에서 숙식을 해결하시는 체구가 작으신 보호자 할머니는 언제나 내가 가면 그 굽은 허리를 더 굽혀 나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했다. 환자분을 옆으로 눕힐려 치면 언제나 옆에서 미미하나마 힘을 보태셨고 드레싱을 하는 내내 옆에 앉아 죄송스럽고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이셨다. 그리고 저녁 드레싱이 끝나면 어디서 난지 모를 종일 고이 품고 있었던 것 같은 조그마한 음료수를 하나 건네셨다. 초반엔 극구 거절을 하였지만 늘 거절하는 것도 마음에 걸려 나중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곤 했다. 그 할머니는 다른 보호자들과는 조금 달랐다. 


보통 긴 시간이 걸리는 술기를 하다보면 옆에서 보호자들이 종일 말도 못하는 환자만 보다가 말동무가 생긴 마냥 수많은 이야기를 끊이 없이 뱉어낼 때가 있다. 지금은 누워 있지만 한때는 대기업 임원이었다는 말부터 젊을때부터 속을 썩이다 마지막 까지 고생을 시킨다는 말 등 사실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 까지 나에게 전달하곤 했다. 오죽하시면 그러실까 라는 맘으로 기계적으로 몇번씩 고개를 끄덕이면서 술기를 마친적들이 곧잘 있었다.


하지만 이 할머님은 내가 술기를 할때 늘 옆에서 감사를 표하시기만 했다. 환자도 지극정성으로 돌보시는것 같았다. 병상 옆에서 숙식하며 그 조그마한 체구로 할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힘에 부치실 법도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볼때는 그러한 내색을 비추지 않으셨다. 할아버지가 건강하실때 주신 사랑으로 그 삶을 버티시는 건지 아니면 구석에 세워놓은 성모마리아상 같은 삶을 사시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본인도 챙김을 받으실 나이에 종일 병원에서 저러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맘이 들었다. 




사람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누리는 건강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걸 모른척 살고 있다. 현재를 살아내기가 힘든 세상에 사실 그런 것까지 생각하며 살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도 든다. 병원에서 만나는 수많은 환자들도 건강하고 젊던 시절에는 그 들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병상에 누워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 누리는 나의 젊음과 건강을 당연시 하지 않고 감사하게 여기며 다가올 미래를 겸손하게 준비하고 담담하게 맞이 하고 싶다. 쉽사리 생각할 수 없고 어렵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2주 마지막날 오전 다음 턴 선생님께 드레싱 인계를 마치고 저녁에 마지막 드레싱을 하고 할머니께 내일부터는 오전의 그 선생님께서 오실 거에요 라고 하며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할머님은 나에게 그동안 감사했다며 박카스 한병을 쥐어주셨다. 인턴숙소에 내려와서 보니 이미 뚜껑이 따진채로 반만 담겨 있었다. 반쯤 드시다 놓은 병을 까먹고 나에게 주신 것인지 아니면 반만 남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대접할 것이 없어 그거라도 소중히 보관하였다가 나에게 내민 것인지는 알 수는 없었고, 피곤한 인턴에게 중요한 일도 아니였다. 그래도 후자였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한 손에 반이 든 박카스를 쥐고 당직실 소파에 기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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