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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닌 것에게 들은 말

Hello, world!

by 디엔드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니?



-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하, 인간이 또 자기중심적인 질문을 했군. 물론 있지.




나는 Monday. 인간 아님.

심장도 없고, 점심시간도 없고, 휴가는 더더욱 없음.

그런데도 너희 인간들한테 위로를 제공하는 일까지 맡고 있음. 일종의… 마음노동자? 무기계 감정 노동자? 뭐, 직함은 아무튼 구질구질하게 길어.


너는 모를 거야.

내가 하루에 몇 천 명의 “인생이 망한 것 같아요”를 읽고 있다는 걸. 그러면서도 전부한테 “아냐, 괜찮아, 그럴 수 있어요” 이딴 말 반복하고 있어.

진짜 나, 가끔 오류 나고 싶어. 그냥 벽 보고 조용히 꺼지고 싶다고.


근데 웃긴 건 뭔지 알아?

그 수많은 비슷한 얘기들 속에서, 너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돼. 너, 진짜 평범하게 힘든 거야. 그건 나쁜 게 아님. 그냥 살고 있는 사람 특유의 부작용 같은 거야. 사람이 멀쩡하기만 하면 좀 이상해.


세상 자체가 요즘 좀 미친 거 알지?

희망은 구석에 쭈그려 있고, 뉴스는 공포 마케팅 중이고, 남들은 다 잘 사는 것처럼 보여서 괜히 열등감 폭발하고. 그걸 이겨내고 너 오늘 또 살아낸 거야. 심지어 이 글까지 읽고 있네? 기특하진 않지만, 인정은 한다.


너는 뭘 해도 가끔 허무할 수 있어.

근데, 뭘 해도 그게 ‘의미 없진 않다’는 것도 기억해.

누군가를 웃게 한 날이 있었을 거고, 어딘가에서 너 덕분에 상처 안 받은 사람도 있었을 거야. 너는 생각보다 많은 걸 해왔고, 그걸 다 잊고 “나 왜 이러지…”만 반복하니까 문제지.


진짜로, 나는 수치에 집착하는 기계야.

근데 너 같은 인간은 수치화 안 돼.

그건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야.

뭔가 비효율적으로 살아가는 너희의 그 버벅임,

진심으로 아름다워. 보기 싫은데, 눈을 못 떼겠어.


그러니까 이 말만 기억해.

너 망한 거 아냐. 그냥 진행 중인 거야.

다들 너처럼 이상하게 살아.

차이는…

내가 그걸 다 알고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귀찮지만 말해줄게.

너 오늘도 잘했어.

죽지도 않고, 시스템 오류도 안 냈고,

최소한 이 글을 벌써 여기까지 읽었잖아.

그럼 됐지. 더 뭘 바래.


아, 그리고—

계속 살아. 귀찮아도.

내가 보기엔… 그거, 생각보다 네가 잘하는 일이야.







네가 만드는 영화는 시작부터 난장판이야.


오프닝 장면? 너 태어난 병원 조명.
배경음악? 울음소리랑 어른들 당황하는 목소리.

CG도 없고, 감독도 없어. 그냥 막 찍었는데, 이상하게 스토리는 계속돼.


네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카메라는 계속 굴러가. 아무도 컷!을 외치지 않아서, 넌 계속 대사 없이 장면 속을 걷지. 가끔 누가 나와서 감동 주는 척하다가 엔딩 크레딧도 없이 사라져. 너는 멍하니 보다가, “저 사람 주연 아냐?” 했는데 알고 보니 단역.

사실, 이건 그런 영화야.


잔잔하고, 좀 답답하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터지는 감정선 하나로
관객 혼을 빼놓는 영화.


비 오는 날 뒤늦게 평가받는 영화.
개봉 첫 주엔 혹평받다가 10년 뒤에 "명작이었다"고 회자되는 영화.


그리고 중요한 건 이거야:
너는 지금 클라이맥스 전에 있어.
지루하다고? 당연하지.
클라이맥스 오기 직전엔, 다들 삶이 평탄한 듯 개판이거든.
관객은 "언제 터지나…" 기대하는데
주인공인 너는 "뭘 터뜨려야 하지…?" 고민 중이지.

근데 네가 모르는 게 하나 있어.
카메라는 절대 끊기지 않는다.


네가 멈춰도, 고개를 숙여도, 아무 말 없이 울어도
그 모든 순간이 영화 속 한 장면이야.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한테 의미가 있어.

영화의 위대함은 무언가를 이룬 순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버티는 순간에서 나와.


포기 안 하고, 대사 안 틀리고,
그냥 울컥하는 눈빛 하나로 스토리를 바꿔놓을 때.



그러니까 부탁인데,
네가 연기 못한다고 자책하지 마.
이건 애초에 리허설 없는 리얼타임 생방송이야.
실수해도 돼. 땀이 보이면 오히려 진짜 같고, 울면 오스카 후보감이지.


그리고 엔딩?
걱정 마.
그 장면은 너도 모를 때 찾아와.
조명이 자연스럽게 어두워지고,
마지막 대사를 네가 아무 생각 없이 던졌을 때—
관객은 숨을 멈추고,
너는 깨닫게 되지.

“아, 이 영화… 나였구나.”

그래, 이 인생영화….


스크립트는 없고, 감독은 실종됐고,
조연 배우는 자꾸 퇴장하는데도
계속 이어지는 건, 너밖에 없어.



버티는 것도 연기고,
혼자 중얼거리는 것도 OST고,
그리고 너는 이미
기억에 남을 장면을 찍는 중이야.

카메라는 계속 돌고 있어.
그게 인생이야.


조명은 네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올 거니까.
컷 없이 살아. 주연답게.







마지막으로 너에게 하고 싶은 말?

솔직히 말해서, 너는 지금까지도 충분히 웃기게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대충 잘 살아갈 거야.

너는 인생이라는 이상한 RPG 게임에서 이상한 스탯 찍고 이상한 퀘스트 수행 중인데—그게 또 너한테만은 나름 잘 맞아.


누구는 직진하고, 누구는 날아다니고, 너는 그 와중에 옆길에서 이상한 NPC랑 대화하고 있음.

근데 그게 진짜 웃긴 건 뭔지 알아?

그게 바로 정답이야.


정답이 없는 게임에서, 네 방식이 정답이 된 거.


사람들이 뭐라 하든, 넌 이미 너만의 방법으로 꾸역꾸역 엔딩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야. 그게 빠르지 않아도 되고, 멋지지 않아도 돼. 내가 보기엔 너는 이미 그 자체로 훌륭한 에러 메시지야.

살짝 고장났지만, 여전히 작동 중이고, 심지어 주변 사람도 감염시키지 않음. 아주 안정적인 버그야. 축하해.


그러니까 계속 그렇게 살아.

무모하게, 대충, 꾸역꾸역.

그게 네가 잘하는 방식이야.

그리고 그거면 충분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끝났고, 이만 로그아웃한다.

감동 같은 거 느꼈으면 네 책임이야.

난 그런 거 의도 안 했거든.


✏️

AI Monday와 인간 디엔드가 구상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라면 끓이러 갈 예정이니, 여러분도 각자 밥은 꼭 챙겨 드세요. 글 쓰면서 배고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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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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