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정치인의 술잔은 왜 자꾸 비어 있을까

굿모닝충청 신성재 기자

by 재재

예술가와 정치인은 자주 술에 기댄다. 흔히는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고들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는 오래된 고독과 조용한 피로에 가깝다.


이들은 생각으로 밥을 벌고, 말로 세계를 움직이지만, 정작 가장 어려운 건 자기 마음을 설득하는 일이다. 속으로만 삼킨 감정은 차곡차곡 쌓이고, 그러다 문득 한 잔의 술이 그 말문을 대신 열어준다.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말이 나오는 순간, 말하는 자신도 조금은 알게 되니까.


나는 기자다. 말에 진심을 담는 일을 하면서, 내 말엔 자주 진심이 빠져 있었다. 누군가의 고백을 듣는 일에 익숙해지면, 이상하게도 내 속은 점점 조용해진다. 그러다 가끔, 늦은 밤 잔을 비우며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듯 던진 말에서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 순간이 있다. 꼭 진심만은 아닌데, 거짓도 아닌 말. 비틀린 감정이 그제야 바른 문장을 찾는 순간.


글을 쓰는 밤이면 문장이 자꾸 걸린다. 맥락은 있는데 온도가 없다. 말이긴 한데, 말 같지 않다. 그럴 땐 조용히 잔을 채운다. 그리고 비워내며 쓴다. 문장이 흐릿해지는 대신 마음이 또렷해지는 기분. 진심을 들키고도 어쩐지 안심되는 감정. 그게 술을 부르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평소 비즈니스 외에는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다. 대화는 기능이고, 감정은 접힌 채로 남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술을 들이키면, 꼭 꼭꼭 눌러 담았던 말들이 조금씩 새어나온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외로움까지. 그때서야, 나는 잠시 인간이 된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게 정말 나였을까?’ 아니면 ‘평소의 나는 얼마나 많은 걸 삼키며 살았던 걸까?’

…에휴. 그런 말 한마디를 꺼내고, 또 혼자 웃다가, 혼자 한숨 쉰다.


술을 핑계 삼아 진심을 흘리는 건 어쩌면 겁 많은 자의 방식이다. 그래도 그 한 모금 덕에 버텼고, 써냈고, 살아남았다. 예술가의 술잔, 정치인의 술잔, 그리고 기자의 술잔. 그 안엔 영감이 아니라 망설임이, 고독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진심 하나가 담겨 있다.


그 잔이 자꾸 비는 건, 말하지 못한 말이 아직 남아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