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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13. 2024

눈빛과 눈빛

삼백 예순아홉 번째 글: 오늘의 승자는?

뭐, 아직도 서로 쳐다보기만 해도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는 분들은 예외겠습니다만, 저처럼 이십여 년 넘게 한 사람과 한 집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눈이 마주치지 않아야 하는 순간이 종종 옵니다. 눈이 아주 아주 많은 얘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아도 이미 눈빛으로 어떤 싸움은 시작되고, 그렇게 눈빛이 오고 가다 보면 그 눈빛들 만으로도 승부가 결정이 니다. 따지고 보면 가장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싸움입니다.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상대방을 제압해 버리니까요.


노트북을 마주 대한 채 몇 글자 두드리고 있노라니 아내가 복숭아를 먹을 거냐고 묻습니다. 복숭아를 혐오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가공되지 않은 복숭아는 제게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그제야 생각이 난 아내는 복숭아 대신 바나나 한쪽을 가져다줍니다. 그냥 나가서 제가 먹으면 되는데 직접 가져다 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고맙다고 하며 잘 먹겠다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화근이 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고 말았으니까요. 바나나를 건네주던 아내가 노트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게 대는 저를 쳐다봅니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오므리나 싶더니 강렬한 눈빛이 날아옵니다.

'뭐, 또 글 쓰나?'

'아니, 뭐, 그냥 이것저것.'

사실 글을 쓰는 게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식구들 앞에서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멀쩡한 집과 제 방을 놔두고 굳이 커피 전문 매장에 가서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냥 이것저것이 어디 있어? 왜 어디 찔리는 데 있어?'

'내가 찔리는 데가 어디 있어? 그냥 글을 쓰고 있을 뿐인데…….'

'그러면 글 쓴다고 하면 되잖아?'


아내의 말이 전적으로 맞습니다. 글을 쓰고 있다면 사실대로 말하면 그뿐입니다. 그런데 그 쉬운 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뭔가 죄를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요? 아무리 당당하게 행동하려 해도 그건 마음속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닌 일에 뭘 그렇게까지 매달려? 당신도 참 어지간하네.'

바나나를 주고 사라지는 아내를 보던 제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럴 시간 있으면 발 닦고 잠이나 자는 게 더 낫지 않냐고 말하는 듯한 아내의 눈빛에 오늘도 저는 완패를 당합니다. 주눅 들지 않고 언제쯤이면 저는 마음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요? 과연 어떤 순간이 와야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글을 쓰게 될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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