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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17. 2024

글감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다면

173일 차.

한참 전에 '제목을 입력하세요'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매번 이 앱을 열고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마주 대하게 되는 장면이기도 하고,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은근히 신경을 돋우곤 했던 게 바로 제목 쓰기였으니까요.


글을 쓰는 순서로 봤을 때 사실은 제목부터 먼저 써야 하는 게 올바른 절차이긴 합니다. 나침반 혹은 방향키도 없이 거친 밤바다로 배를 몰고 나갈 순 없으니까요. 그렇게 보면 제목은 내비게이션과도 같은 겁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어떤 경로를 통해 갈 수 있는지를 알려 주니까요. 길을 모르는 사람이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여 목적지를 찾아가듯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바로 이 제목을 보고 글을 쓰게 됩니다.


서두부터 왜 이렇게 말이 많냐고요? 네, 맞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같은 고민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지하철을 타는 즉시 브런치스토리 앱부터 열었습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계단을 내려와 승강장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오늘은 뭘 쓸까,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마치 거짓말처럼 머릿속이 텅 비기라도 한 듯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이럴 때에는 차라리 누군가가 글감을 던져주면 좋겠다 싶더군요. 그때 오래전 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던 그때에도 와 좋겠다 하며 본 기억이 났습니다.


얼른 제목부터 적어 넣었습니다. 하늘에서 글감이 툭 떨어진다면.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글의 절반은 쓴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작이 반이니까요. 글감이 정해지면 제목도 뽑아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글감을 정한 뒤에 글을 다 쓰고 나서 제목을 기입할 수도 있습니다. 순서가 어떻게 되건 간에 글감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공공도서관에 들렀다가 수 백 개의 글감을 한 데 모아놓은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외국인이 쓴 책인데 선 자리에서 몇십 쪽을 읽으면서, 글을 쓸 때 글감 선정에 애를 먹는 건 만국공통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전 그 책을 빌려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디어는 산뜻했으나 생각했던 것만큼 도움은 되지 않았거든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합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 않는 글감은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래도 가끔은 하늘에서 글감이 툭, 하고 떨어지는 장면을 기대해 봅니다. 혹은 저를 잘 아는 누군가가 옆에서, 오늘은 이걸로 써 봐 하면서 글감을 던져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전 오늘도 제가 글감을 찾았습니다. 제목도 입력했습니다. 그리고 글감과 제목만 바라보고 또 이렇게 한 편의 글을 썼습니다. 뭐, 그러면 된 것 아니겠습니까? 글을 완결하는 게 목적인 제게 이 이상 더 바랄 건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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