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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알 Feb 19. 2024

집밥이 좋아

집밥은 맛이 없어도 위로가 되니까

미나리는 매실청과 고춧가루를 살살 뿌려 새콤하게 무치고, 직접 따온 곰취 나물을 다듬어 야들야들한 호박잎과 함께 데쳐 밥과 쌈장에 싸 먹는다. 전원일기가 생각나는 메뉴지만, 내가 먹던 집밥 얘기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올해로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열무를 만지면 풀독이 올라오는 엄마의 아바타가 되어 열무를 손질하며 수다를 떨던 기억이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사실 어릴 시절 집밥이 딱히 맛있다고 느꼈던 적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엄마는 요리 솜씨가 형편없었다. 기본적으로 엄마의 주식은 슴슴한 나물 반찬이었고 요리 자체에 별다른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거기에 음식 타박 없이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다는 아빠와 입이 짧아 닭다리 하나도 겨우 먹는 나와 동생 덕분이랄까. 엄마의 요리 실력은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도 결코 늘 줄 몰랐다. 이따금 이모네 놀러 가면, 이모는 엄마에게 눈을 흘기며 “얘, 넌 집에서 애들 굶기니?”하고 핀잔을 줬다.

 

얼마 뒤 엄마는 요리학원을 등록했다. 요리에 생전 관심이 없던 사람인데 의욕을 불태웠고 매일 저녁 난생처음 보는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어떤 날은 떡갈비. 다음날은 너비아니 구이, 팔보채. 이름도 생소한 음식들을 먹으며 ‘와 나도 이제 이런 음식을 먹으면서 사는 건가’ 했지만 그것도 잠시, 한번 등장했던 메뉴는 학원에서 만든 당일 외에는 우리 집 밥상에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배운 요리를 엄마가 다시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양한 요리에 대한 지식은 늘었으나 엄마의 요리 실력 자체는 크게 발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도 맛있게 할 수 있는 요리가 있었는데 바로 프라이팬에 구운 피자였다. 걸쭉한 반죽을 적당한 두께로 프라이팬에 두르고 잘게 썰은 햄, 감자, 양파, 호박, 당근을 그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케첩과 피자 치즈를 뿌린 뒤 뚜껑을 덮고 불을 약하게 틀어둔 상태로 기다리면 피자가 완성된다. 이때 불조절이 가장 중요하다. 까딱 잘못하면 피자 도우가 까맣게 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치즈는 사르르 녹아 쭉쭉 늘어났고 새콤하고 아삭한 야채와 케첩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제법 피자 같은 맛이 났다.


누가 엄마 딸 아니랄까 봐 요리에 재능이 없는 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엄마가 차려주던 집밥이 생각난다. 그 맛보다는, 취미에도 없는 요리를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해 주던 엄마의 마음이 어딘지 위로가 되서다. 언젠가 아는 동생이 집으로 날 초대해 손수 만든 비빔밥을 차려준 적이 있다. 직접 볶은 당근, 호박, 각종 나물과 하얗고 노란 계란 고명을 썰어 올린 정갈한 한상이었다. 그 정성 앞에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 눈물이 찔끔 났다. 그날 이후로 나의 아킬레스건은 집밥이 되어버렸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따금 친구들이 날 불러 집밥을 해주면, 그럴 때마다 엄청나게 감동한 난 우리의 우정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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