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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알 Apr 17. 2024

돈이란 자고로

조금은 소설 같은 부모님의 인생 이야기

집성촌에서 유복한 집의 막내로 태어난 원이는 언제나 풍족했고 가난을 모르고 자랐다. 태생적으로 몸도 약해 많은 시간을 누워서 보냈고 연로하신 부모님에게 맘껏 어리광을 부리며 귀하게 컸다. 농번기가 되면 마을 사람들은 부쩍 분주해졌지만 원이의 집만은 예외였다. 요리며 집안일을 해주시는 분들이 따로 계셔 손에 물을 묻힐 일 또한 없었다. 원이네는 동네에 몇 없는 테레비가 있는 집이었고 동네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지만 정작 본인은 잘 보지 않았다. 원이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고 언제나 무료했다. 사춘기 무렵, 학교에서 주판을 튕기며 어른이 되면 요절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산골 마을에 사는 송이는 언덕을 두 개 넘어야 나오는 분교에 다녔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없는 형편에 자식 셋을 홀로 키운다고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의젓한 모습을 보이려 했다. 아직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걸었다. 때때로 힘들다고 칭얼거리는 동생을 등에 업고 산길 곳곳에 널린 나무와 풀의 이름을 읊어주었다. 이건 참나무, 요건 도라지꽃, 저건 애기똥풀이야. 산새들이 지저귀고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혔지만 자연 속에서 절로 떠오르는 시상을 잊어버릴까 송이는 학교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른이 되면 시인이 될까? 돈도 벌고 싶은데. 어린 송이는 크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건설사에 다니는 김대리는 같은 팀의 송이가 막내 원이의 짝으로 제격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한결같이 성실하고 씩씩한 모습에 마음이 갔다. 송이는 자신과 다르게 하얗고 여리여리한 원이에게 끌렸고 원이 또한 건강하고 환한 송이의 미소에 매력을 느꼈다. 첫 만남 이후 둘은 수십 통의 연애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동안 떠올랐던 시상은 모두 이 애절한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한 걸까. 송이는 편지지에 한 자 한 자 꾹꾹 진심을 담아 정성껏 편지를 썼다. 손 글씨에 별로 자신이 없던 원이는 타자기로 답장을 썼다. 타닥타닥탁탁. 띵. 지익. 탁탁타다닥. 열렬한 러브레터를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그렇게 어느 가을, 둘은 가족들의 축복 속에 백년해로를 약속했다. 이들은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만큼 가족들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를 하고자 했다. 때문에 원이는 그동안 살던 삶과는 180도 달라진 소박한 삶에 적응해야 했고 송이 또한 새롭게 마음을 다잡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둘은 서로 자라온 환경만큼이나 다른 부분이 많았다. 특히 돈에 있어 그랬다. 큰 욕심 없이 10원이 들어오면 10원을 쓰고 100원이 들어오면 100원을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원이와는 달리 송이는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긴다며 쓰는 만큼 더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송이는 소유욕이나 소비욕이 없는 원이를 보며 신기해했고 원이는 송이의 거침없는 씀씀이를 보며 자신과 다름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산속에서 살았음에도 송이는 여전히 산을 좋아했다. 일요일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원이를 끌고 산에 갔다. 집에서 하릴없이 누워있는 게 가장 좋았던 원이는 신혼여행 때 간 설악산이 태어나서 처음 가본 산이었다. 하지만 산에 가면 모든 근심과 시름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송이의 말에 일주일에 하루만큼은 원이도 자리를 박차고 송이를 따라나섰다. 어느새 일요일에 등산을 가는 것은 이들 부부에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등산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송이는 원이를 설득해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주 6일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 부부는 부족함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풍족한 편이랄까.

 

아이도 둘 태어났다. 아이들은 참 신기하게도 부모를 닮는다. 생긴 것만 닮는 게 아니라 성격이나 기질도 닮는다. 첫째는 어딘지 모르게 송이를 닮아 있었다. 언제나 의욕적인 첫째와 장을 보러 가면 먹고 싶은 것, 당장 필요 없더라도 사고 싶은 것을 죄다 담아왔다. 용돈을 주면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사 먹는데 홀랑 써버렸다. 둘째는 원이를 닮았다. 조용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돈이 들어오면 나가는 일 없이 한푼 두푼 모아두었다. 함께 슈퍼에 가서 물건을 집어 들면, 그거 꼭 필요한 거에요? 하고 꼭 되물었고 한참을 그러기를 반복하다 집에 오면 정작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송이는 아이들을 유학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는 글로벌 시대가 올 거야. 시대를 한발 앞서 읽는 눈을 가진 송이는 지금이 적기라 생각했다. 평소 자식들에게 입이 닳도록 엄마아빠는 너희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지 물고기를 잡아주지는 않을 거야. 우리가 죽으면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거라 했다. 부부는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자라 자수성가하길 바랐고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라는 도구를 손에 쥐어 준다면 아마 평생 밥 벌이 걱정은 안 하고 살지 않을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주고 싶었다. 다행히 원이의 생각도 같았다. 그렇게 송이는 한국에 남아있고 원이는 아이들과 함께 해외로 떠났다.

 

5년. 송이가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다. 송이는 일요일이 되면 혼자서 등산을 갔다. 그런다고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갔다. 사업은 점점 예전 같지 않아졌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살던 집까지 처분하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지만 결국 사업은 망했다. 상실감. 평생의 노력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원이와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왔다. 특히 고3 2학기 중요한 시기에 한국으로 전학을 와야 했던 큰아이에게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원망은커녕 가족이 다시 모여 살 수 있다며 좋아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다.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거야. 매일밤 쓰디쓴 패배감을 삼켰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긴다고는 했지만 사라진 돈이 다시 생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송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부채감에 시달려야 했다. 네 식구가 함께 등산을 가는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돈이 정말 한 푼도 없을 수가 있구나. 온실 속의 화초 같이 살아온 원이는 처음 경험해 보는 가난 앞에 무력감을 느꼈다. 이것은 모든 것이 풍족하던 시절 느꼈던 무기력함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가난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었고 그런 감정을 좀처럼 느껴볼 일 없던 원이에겐 너무나도 낯선 것이었다. 원이는 시장에 가는 걸 좋아했다. 무료한 일상과 달리 시장통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났고 덩달아 살맛 나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가난 앞에서 원이는 속수무책이었다. 100원이 필요한데 수중에 10원밖에 없던 적이 있었던가. 하루하루가 고달펐다. 하지만 새장 속에서 평생을 갇혀 노래하던 새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숨을 쉬고 존재하며 지저귀는 일뿐이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원이는 가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새로운 삶의 방식에 금방 순응했다. 그리고 어느 날 50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암이었다. 어릴 적 소망대로 요절한 것이다.

 

산 사람은 계속 살아야지. 원이를 보내고 남은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갔다. 첫째는 영어 관련 일을 하며 여행도 많이 다니고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며 항상 바삐 살았다. 하지만 집에서는 가만히 누워있는 걸 좋아하는 거 보면 원이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둘째는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잘 모르겠지만 자기 앞가림은 하는 것 같았다. 사랑에 빠지면 세기의 사랑꾼으로 변하는 걸 보니 송이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은 송이는 여전히 시를 쓰고 일요일이면 등산을 가고, 매년 여름마다 스위스 몽블랑 둘레길을 걸었다. 송이는 60이 넘는 나이가 무색하게 취미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는데 등산, 트레킹, 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직접 찍고 편집하고 올려 조회수가 2만이 넘은 적도 있다.

 

원이의 11주기인 올해는 조금 특별한 일이 있었다. 아이들과 중학생 때 이후 처음으로 등산을 간 것이다. 송이는 내년엔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아름다운 몽블랑 둘레길을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곳곳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따금 아이들이 물었다. 유학 보낸 거에 후회는 없냐고. 그때 유학 안 갔으면 지금 집이 몇 채냐며 너스레를 떤다. 후회는 없다.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안심한 듯 큰애가 최근 토익을 봤는데 970점 받았다고 자랑을 했다. 이럴 때 보면 장성한 자식인데 아직도 애들 같다. 엄마랑 아빠는 그때 너희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준 거야. 어떤 삶을 살든 너네 인생은 너희들 몫이니 알아서들 잘 살도록 해. 엄마 아빠는 너희를 믿어. 원이와 늘 하던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돈이란 자고로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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