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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믿음과 상상 Nov 29. 2024

끌어당김의 법칙은 반칙이다!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만약 우리가 가상공간 속에 존재하는 게임 속에 살아간다고 가정하자. 혹은 매번 죽고 나면 자기가 체험하고 싶은 삶을 선택해서 환생하는 존재라고 가정하자. 


이러한 가정은 지금의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사주나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에 오기 전에 정해진 어떤 삶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삶은 일정 부분 정해져 있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경우의 수와 선택이 있을 수 있고 그때마다 삶의 스토리가 바뀔 수는 있지만, 이 전체를 미리 설계해서 이곳에 들어왔을 것이다. 


사후세계에서 내가 체험할 삶을 선택한다. 아마도 그 체험은 체험이 지속되면 될수록 점점 어려워지거나 힘들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게임을 할 때도 처음에는 쉬운 미션의 게임을 하지만 점점 재미가 없어져 어려운 미션의 게임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미션을 해결할수록 점점 극복하기 힘든 미션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내 삶이 남들에 비해 힘들다고 느낀다면 나는 어느 정도 고차원 영혼일 수 있다. 부자, 권력, 인기 등을 가진 삶들을 이미 체험하고 그것들이 재미가 없어 점점 어려운 삶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서의 실패는 자살이다. 자살은 내가 선택한 게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실제 게임을 하다가도 너무 어려우면 게임을 포기하고 다시 쉬운 게임을 선택하듯이, 자살도 일종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로또가 당첨된다면 그것은 미리 삶이라는 게임에 접속하기 전에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마치 우리가 게임을 하다가 힘들 때마다 아이템을 얻듯이 그런 것을 게임에 참가하기 전에 숨겨놓은 것이다. 반대로 로또가 당첨되지 않는다면 순수하게 이 삶을 어떤 도움 없이 체험하려고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불평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충분히 느끼면서 뭔가를 성찰하고 한 단계 성숙해야 한다.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이때 소위 끌어당김의 법칙과 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혹은 산속에 틀어박혀 명상을 하며 도를 닦는 행위도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단, 소위 끌어 담김의 법칙은 로또가 당첨되는 것처럼 반칙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체험하기 위해 설계된 이 세상을 설계된 법칙을 파악하여 아이템을 마구 얻는 것과 비슷하다. 마치 어떤 설계된 게임에서 프로그램의 버그를 이용해서 능력치를 올리는 것과 유사하다. 이것은 내가 최초로 선택한 나의 삶을 온전히 체험하고 극복하는 것을 방해한다. 


고차원의 영혼일수록 더욱 어려운 삶을 선택해서 고난도 인생이라는 게임을 즐기는데, 거기서 게임을 쉽게 만드는 아이템을 사용한다면 애당초 그 게임에 접속한 의미가 없지 않은가? 어려우면 어려운 데로 체험하고 느껴야 게임 접속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산속에서 명상을 하고 혼자 도를 닦는 행위는 어떠한가? 이런 것은 사후세계에서 영혼인 상태에서도 충분히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에 접속한 것은 세상이라는 것을 체험하려는 의도였을텐데, 정작 세상과 단절되어 혼자 짱 박혀서 깨달음을 구한다? 이상하다. 이것은 영혼들이 이 세상에 물질화하여 태어나서 세상을 체험하려는 의도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선택한 캐릭터와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체험을 해야 한다. 


내 삶을 돌이켜보면 많이 고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깨지 못할 만큼 어려운 게임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 영혼은 평균보다 약간 더 성장한 상태였을 것 같다. 나보다 훨씬 힘든 인생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나보다 훨씬 고차원의 깨달은 영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정면으로 맞서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맞지 않는 것, 뭔가 가식적인 것, 내가 불편한 것들은 피해야 한다. 아마도 우리의 인생은 내가 미리 선택한 삶처럼 살아갈 때 자연스러울 가능성이 있다. 그것과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산다면, 최초 내가 체험하려는 의도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 순간 내가 자연스럽고 즐거운 삶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체험하고자 하는 인생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춤을 추면 가슴이 뛰고 행복하다면 나는 춤을 추는 인생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다. 단지 그것을 아는 방법은 지금 체험 중인 삶이 아닌 다른 것을 억지로 끌어당기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지금의 삶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매 순간 내 가슴이 뛰고 즐거운 것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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