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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삭제 Jan 28. 2024

축제.2

극의 전환점

우리가 무대에 올라 한판 신나게 놀아날 극은,

그린의 환경맨이 환경을 파괴하는 무리들을 응징하는 초간단 스토리지만, 고등학생신분에 맞게 환경을 지키자는 교훈까지 담은 치밀함도 갖추었다. 수업 땡땡이가 목적이 아니라, 이 극을 위해 우리의 열정을 받쳤노라고.

극에 필요한 배역을 뽑는 일이 먼저 진행되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1, 2학년 지원자들 중에 선발했다.

명확한 주제가 있는 극이란 자부심에, 오디션에 임하는 각오까지 듣고, 한 줄의 대사를 주고 연기를 해보라는 같잖음까지 보였다.

그렇게 모든 배역까지 다 정해지고, 대본에 가장 많은 지분이 있는 내게 일임을 하고 선생님은 뒤로 물러나셨다.

그렇게 합법적으로 수업을 땡땡이치기 위해 공모한 우리들의 공연 연습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극은,

해설자의 설명에 따라 배우들의 연기가 시작된다. 해설자는 적재적소에 배우들의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행동에 가시 돋친 충고를 하며 환경맨을 불러낸다.


그러면 방정맞을 정도로 요란스럽게 등장한 환경맨이, 정신 사납고 현란한 몸짓으로 호되게 혼을 낸다. 그럼 환경파괴자들은 깨깽거리며 반성하고 마무리짓는다. 그런 식으로 구성된 에피소드가 3개로 진행되는 극이었다.

한창 연습한 우리들의 극을 선생님께서 중간점검 하시더니, 하나의 제안을 하셨다.

처음 하는 연기이다 보니 대사톤이 제각각이라 전달력이 떨어지고, 중구난방 튀는 몸짓에 정신이 없어, 무대 위에 서면 더 전달력이 떨어질 것 같은 대사를 마이크를 잡은 해설자가 커버하자고 하셨다.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대사를 할 필요가 없어진 연기자들은 오히려 더 과하게 입을 움직이며 관객을 속여 극의 웃음을 더 키우기로 했다.

그렇게 평범했던 극이 변사극으로 바뀌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작은 흐름의 전환으로 인해 연습은 급물살을 타고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해설자역을 맡은 내게는 대본을 통째로 다 외워야 하는 고비가 닥쳤지만, 즐거웠다.

수업만 하던 딱딱하고 네모난 교실을 열정적 공연연습으로 우리만의 놀이터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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