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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03. 2023

김치찌개, 두부 한 모

넓은 시장의 한가운데, 나는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넓은 시장은 한가운데, 할머니께서는 그곳에서 가게를 하시면서 살았다. 가게 뒤로는 집이 있었는데, 나는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자랐다.


 동네 개 짖는 소리며 가게 펜스를 올리는 철컹 거리는 소리, 생선 가게 배달 트럭 소리, 횟집 아저씨 장화 끄는 소리, 돌돌돌 끄는 수레 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사람들의 소리와 함께 시장은 아침을 맞이했다.

 4층 집이었던 우리 집에 맨 위층은 우리 가족이 살았다. 새벽 일찍 6시쯤 일어나 문을 열면 옥상 정원에서는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건너편 집 개가 가끔 움직이는 걸 볼 수도 있었다. 초록 색 방수 페인트에 비추는 아침의 해는 언제나 어린 내 마음에 응어리처럼 뿌옇게 잔상과 함께 지금도 남아 있다.

 아래층을 내려가면 할머니께서는 항상 국을 팔팔 끓이고 계신다. 할아버지께서는 여느 아침과 다를 바 없이 언제나 양말을 찾고 계셨다.

 그렇게 온 식구가 거실에 상을 펴고 앉아 아침을 먹곤 했다. 물론 아버지께서 일찍 나가시느라 함께 못 먹을 때도 있긴 했다.


 아침 일찍 아버지, 어머니께서 일 하러 나가시면 그 뒤로는 우리 남매가 함께 놀았다. 옥상에서 비눗방울을 불고, 축구공을 차면서 놀기도 하고 가끔 지치면 지붕이 없는 정자 위에 누워 비행기가 날아가는 걸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 아래층에 내려가 거실에 앉아 티브이를 보기도 하고, 코다란 레고 상자에서 레고를 꺼내고 놀고, 인형 놀이를 하고, 심심하면 가게에 가서 할머니 옆에 앉아서 뜨듯한 이불 아래 발 넣고 귤을 까먹기도 했다.


 그렇게 동네 지나다니시는 아주머니들께 인사도 하고, 앞집 할머니께서 놀러 오시면 옆에서 누워 이야기를 듣는 둥 텔레비전을 보는 둥 하기도 했다.


 그러다 할머니께서 장 보러 갈 시간이 되면 쫄래쫄래 뒤를 따라나갔다. 할머니께서는 주로 배추나 야채를 사러 가기도 하시고, 간혹 콩이나 도라지를 갈러 가시고, 싱싱한 생선 구워 주시겠다고 생선 가게 아저씨랑 수다를 떠시기도 하셨다. 생선 비릿한 향기가 불쾌하지 않던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 중 하나다.

 그렇게 모든 장을 다 볼 즈음에는 할머니께서는 꼭 작은 슈퍼에 들르셔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과자를 사주시기도 하시고, 겨울에는 국화빵을 사주셨다.

연기가 나는 국화빵을 먹고 있으면 온몸이 따뜻해진다.

 

 할머니께서는 점심 즈음에는 항상 옥상에 물을 주러 올라가셨는데 그럴 때마다 긴 물 호스로 물 뿌리며 장난치다가 혼나기 일쑤였다. 어찌나 뿌려댔는지 가끔 물이 밖으로 튀어서 아래층 가게에 할아버지께서 올라오시기도 하셨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치면 다시 온 가족이 모이는 저녁 시간이 되고, 할머니 깨서는 항상 찌개나 국을 해주셨다.


 그중에서도 나는 유독 기치찌개를 좋아했다. 알맞은 크기로 잘려서 넣어진 돼지고기는 부드러워서 할머니께서 오랫동안 공들였다는 걸 알 수 있었고, 항상 들어가는 할머니께서 담그셨던 묶은지 김치는 젓가락으로 집어 밥 위에 놓고 주욱 찢어 먹으면 정말 화호성이 터져 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이 다 끓을 때 즈음이면 두부를 한 모 한 모씩 넣어주시는데 조금 일찍 넣으면 두부가 빨갛게 돼서 구멍이 송성 뚫려 있기도 하고 늦게 넣으면 재 형태를 유지한 채 희고 곱게 올려져 있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밥을 먹으면 다시 자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자기 전에 아버지께서는 피곤한 몸을 이끄시고도 정자 위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보면서 위성이나 별, 혹은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가끔 별똥별처럼 보이거나 밝게 빛나는 별을 보면 소원을 빌기도 했다. 또 마지막으로 자기 전에는 다 같이 자전거를 탄다며 다리를 높이 들어 페달을 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 재밌는 이야기에 까르르 웃기도 하고.

서서히 잠이 오면 귀뚜라미, 사람 소리, 가게 셔터 닫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다.


 아직도 김치찌개를 보면 저기 멀리 부엌에서 뒤를 돈 채 찌개를 부글부글 끓이고 계시는 할머니가 떠오르곤 한다. 도시의 밤. 모든 일과가 늦게 끝나 11시가 넘어 집에 오는 버스를 타고 하늘을 보면 가끔 그렇게 누워서 함께 별을 보던 시절을 그린다.

 지금은 모든 게 너무 밝아 별 하나도 보이지 않은 이 밤을 보면 나는 그때 내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생각한다.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나는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생각한다. 축구공을 차며 강아지랑 뛰어놀던 그곳이 왜 최근에는 이렇게 작아 보이는지 생각한다. 전에는 내게 운동장 같았는데 이제는 그냥 옥상 정원이었다. 가게 한쪽에서 먹던 귤이, 가게에서 먹던 아이스크림이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또 도대체 언제부터 나는 할머니 댁에 놀러 갈 때 국화빵을 사 먹지 않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난 자기 전에 아빠랑 자전거를 안 탔는지, 언제부터 우리는 까르르 웃지 못했는지.

가끔은 지난 시절을 추억한다.

 시장 한 복판 수많은 사람들이 스치는 곳임에도 나는 나였고 우리는 우리 가족이었는데, 이렇게 가족만 스치는 도시의 집에서는 왜 나는 나일 수 없는지, 그 인파 속에서도 가족을 찾던 나는 어쩌다 가족을 먼저 찾지 않게 되었는지. 가끔은 씁쓸하단 생각이 문뜩 머리를 스치기도 한다.


 소란스러운 시장 소리에도 귀뚜라미 소리에도 잠이 들던 나는 언제부터 소리가 없으면 잠을 못 자게 되었는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순간들을 나는 잊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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