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근과 한병철. 진정한 미(美)의 탐구
보도연맹 사건 때는 총살 직전까지 갔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화려함이 싫어 색채가 검어졌고
욕을 하면서 독기를 뿜어낸 것이라 했다.
- MMCA 윤형근 도록 중에서
검은 기둥이 숯 같다.
새카맣게 타버린 마음.
단순한 형태와 색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중앙의 여백은 밝은 기운이다.
물감이 젖어든 흔적은 어둠과 빛의 경계를 이룬다.
까맣게 타들어간 마음에 한 줄기 빛이 와닿는다.
빛은 일렁이며 어둠을 어루만진다.
칠흑같은 어둠은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옅어져 그림자가 된다.
숯은 재가 되어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샤갈처럼 색으로 마법을 부리지 않는다.
고흐의 그림처럼 화려한 반짝임도 없다.
보자마자 탄성이 나오며 시선을 사로잡지 않는다.
단박에 사로잡는 말초적 자극이 아니다.
윤형근의 작품이 주는
비장하며 숭고한 아름다움은
천천히 찾아온다.
철학가 한병철은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미(美)를 재정의한다.
오늘날 미의 개념은 피상적인 것에 국한되었다.
고통과 전율의 부정성을 가진 숭고 또한
미의 개념에 포함되어야 한다.
미는 망설이는 자이며 늦둥이다.
미는 순간적인 광휘가 아니라
나중에야 나타나는 고요한 빛이다.
이런 신중함 덕분에 미는 품위를 지니게 된다.
즉각적인 자극과 흥분은
미로 접근하는 길을 막는다.
사물들은 우회로를 거쳐 사후에야 비로소
그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그 향기로운 정수를 드러낸다.
미는 오랫동안 천천히 걷는다.
천천히 스며드는 아름다움이
가장 고상한 종류의 미다.
우리가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채
가지고 다니다가
언젠가 꿈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그런 아름다움 말이다.
- 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110p.
낯선 모습 때문에 첫눈에 매혹되지 않지만
자꾸 생각나고 알면 알수록 좋아지며
돌고 돌아 뒤늦게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
나를 구원할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 바로 윤형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