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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Oct 04. 2023

[세계여행] D+77 과나후아토, 똘란똥꼬, 멕시코시티

중남미에서의 마지막

멕시코 여행은 워낙 쉬엄쉬엄 다녀서 내용이 그렇게까지 많지 않기에 마지막 일주일간의 일정을 한 글에 정리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 3주 정도 전부터 독일에서 쉬고 있는 상태인데 이렇게 몰아서 쓰지 않으면 귀찮아서 언제까지 늘어질지 모른다.



먼저 멕시코시티를 떠나 알록달록하기로 유명한 은광도시 과나후아토로 향했다. 숙소를 이동 이틀 전에야 예약했는데 에어비앤비 임박 할인이 붙어 나름 저렴한 가격에 위치도 괜찮은 곳이 얻어걸렸다. 가장 좋은 점은 옥상에서 보이는 도시의 전경이었다. 첫날은 오후 늦게 도착해서 체크인 후 도시를 간단하게 둘러보러 밖으로 나갔다. 시내의 풍경은 유럽 소도시 같은 느낌이지만 색감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풍성했다. 특히 곳곳에 있는 작은 광장들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구시가지를 금방 돌아보고 호객행위가 심했던 시장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는데 역시 음식은 심하게 맛이 없었다. 멕시코에서 시장음식은 이후 한 번도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다. 양이 약간 부족해 맞은편 가게에서 먹은 타코도 생각보다는 아쉬웠다.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누가 우기 아니랄까 봐 또 비가 엄청나게 퍼붓기 시작했다. 가게 앞에서 30분을 넘게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더는 돌아다니기가 힘들 것 같아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둘째 날은 원래 근처 소도시인 산미겔데아옌데를 방문하려 했으나 과나후아토와 느낌이 많이 비슷할 것 같아 이곳을 더 여유롭게 즐기기로 했다. 일어나서 집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시내로 나와 미라박물관까지 걸어갔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선크림과 모자로 중무장을 했는데도 햇살이 상당히 따가웠다. 미라박물관은 말라비틀어진 시체 수십여구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 조금은 충격적일 수도 있는 비주얼이었는데 나는 비주얼적인 충격을 제외하면 콘텐츠가 빈약해서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미라 자체가 옆 공동묘지 벽 안에서 자연미라화 된 시체들이라 딱히 역사적인 의미나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을 수가 없다. 박물관 옆 공동묘지는 알록달록한 공원 같은 분위기로 영화 코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죽음을 유럽 문화권보다 다소 가볍게 받아들이는 멕시코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이곳이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이 쪽에서 보는 시내 전망도 나쁘지 않았다. 멕시코시티에서부터 머리가 지저분해서 적당한 가격의 이발소를 찾고 있었는데 미라박물관 쪽이 구시가지에서 벗어난 현지인 구역이라 비교적 저렴한 4000원짜리 이발소를 찾을 수 있었다. 옆머리가 조금 긴 게 완벽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날이 너무 더워서 숙소로 돌아와 잠깐 쉬다가 저녁으로 해산물 타코를 먹으러 나갔다. 튀긴 생선과 새우를 내어주고 셀프로 기타 채소와 소스를 얹어서 먹는 방식이었는데 일반적인 고기가 들어간 타코도 정말 맛있지만 임팩트로는 이곳이 최고였다. 식사 후에는 동행이 보고 싶다고 예약해 놓은 가예 호네아다 공연 관람을 위해 다시 시내로 향했다. 원래 과나후아토 대학 학생들이 소일거리로 밤에 시내를 돌아다니며 도시에 관한 내용을 들려주면서 멕시코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거리공연이었는데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너도나도 뛰어들어 조금은 변질된 면이 있다고 한다. 동행이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원조라는 팀의 공연을 예약해 놨는데 시작하는 장소에 도착하니 다른 팀들만 보였다. 그들에게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어봤고 우리가 예약한 팀의 담당자와 전화통화를 하더니 그 팀은 예약자가 적어서 오늘 공연을 안 하고 그냥 자기들이 넘겨받았으니까 따라오면 된다고 했다. 여기부터 상당히 심기가 불편했다. 오픈된 장소에서 하는 거리공연이라 돈을 지불한 참가자와 아닌 사람을 어떻게 구분할지 의문이었는데 한두 사람이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을 계속 쫓아냈다. 이외에도 공연 중간중간에 몇 번 거리의 장사꾼들과 연계해 상술을 부리는 모습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도 딱히 관심이 없는데 동행이 원해서 보았고 이런 부분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 설명, 그리고 거리를 따라다니면서 봐야 하는 민망함까지 겹쳐져서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별로였다. 워낙 돈벌이가 되다 보니 팀들도 많아서 저녁시간에는 골목 이곳저곳이 상당히 시끄러워지는데 거주하는 주민들은 많이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3일 차에는 점심으로 맛있었던 해산물 타코를 또 먹고 쉬엄쉬엄 전망대로 올라갔다. 혼자였으면 걸어 올라갔겠지만 동행도 있고 경사도 꽤 있는 것 같아서 푸니쿨라를 탔다. 전경은 숙소 옥상에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그냥 멍하니 앉아서 알록달록한 도시를 구경하는 게 좋았다. 해가 질 때쯤 걸어 내려오면서 골목에 있는 식당에서 엔칠라다를 먹었는데 맛은 그저 그랬고 가격이 130페소로 사악했다. 정말 멕시코는 타코를 제외하면 음식을 성공한 적이 없다. 


다음 날은 똘란똥꼬로 가기 위해 과나후아토에서 익스미킬판으로 이동했다. 블로그를 찾아봐도 이 경로를 간 사람은 없는 듯했지만 동선을 아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전해야 했다. 멕시코도 교통인프라가 남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다지 매끄럽지는 않다. 지도로 직선거리만 보고 얼마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계획을 빡빡하게 짜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먼저 과나후아토에서 케레테로라는 도시로 이동을 하는데 버스가 오전 6시, 오후 2시 40분 차로 하루에 두 대밖에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는 싫어서 오후차를 타기로 하고 숙소에서 여유 있게 나와 식당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만석이라 지옥 같았던 시내버스로 터미널로 이동해 케레테로행 버스에 탔다. 케레테로에 도착하자마자 익스미킬판으로 향하는 버스표를 사고 밥이 들어간 간단한 타코로 저녁을 때우고 또 버스에 올라탔다. 블로그에 정보가 없어서 그냥 현지 버스회사 홈페이지에서 루트를 찾으면서 대충 되겠지 하고 시도한 경로인데 별다른 문제없이 되긴 했다. 밤 9시가 넘어 익스미킬판에 도착해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버스터미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주차장이 바로 앞에 있고 방 문을 열자마자 큰 침대가 있고 작은 화장실이 딸려있는 구조가 영화에서 보던 미국 모텔 같았다. 나는 신기하고 좋았는데 동행은 조금 무섭다고 했다. 지금이 무슨 축제 기간인지 시내 쪽에서 밤 12시 넘어서까지 폭죽을 터트렸고 밤새 조용한 듯싶더니 다음날 아침 6시부터 다시 시끄러워졌다.



똘란똥꼬 온천으로 가는 첫 콜렉티보는 아침 9시 30분에 있다. 작은 봉고차였는데 운전석 뒤를 미음자 형태로 개조하고 중간에 벤치까지 밀어 넣어서 20명을 꽉 채우고 출발했다. 그 와중에 나름 유명한 관광지라고 한국인이 우리 포함 6명이었다. 입장료는 그렇게 싸지는 않은 180페소였고 추가로 락커비용 100페소가 붙었다. 온천 내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먼저 강 쪽으로 내려갔는데 물 색깔은 예뻤지만 예상했던 대로 물은 그냥 따뜻한 정도였지 몸을 지질만한 뜨거운 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만 놀다 유명한 동굴 쪽으로 올라갔다. Grutas de Tolantongo로 불리는 이곳은 먼저 산 위에서 자연적으로 떨어지는 온수 폭포를 볼 수 있고 폭포 밑을 지나 동굴로 들어가면 따뜻한 물이 고여있는 자연온천이 있다. 일단 산과 어우러진 폭포 자체도 너무 아름답고 동굴 내부 특이한 구조물들을 보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역시 유명한 이유가 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도 맞고 천장에서 가끔 날아다니는 박쥐도 보며 한참을 즐겼다. 동굴 안쪽에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있었는데 물살이 너무 세서 몇 번을 들어가려다 실패하니 옆에서 보고 있던 멕시코 사람들이 물속에 있는 밧줄을 잡고 가면 된다며 도와줬다. 같이 들어가서 훨씬 뜨거운 물이 나오던 안쪽 부분을 구경하고 고맙게도 위에 있는 다른 터널 입구도 알려주었다. 위 동굴은 공기가 사우나같이 훨씬 후덥지근하긴 했지만 물 온도는 아래와 비슷했고 어느 정도 지나니 숨쉬기가 답답해서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원래는 조금 떨어진 똘란똥꼬 위쪽의 계단식 탕도 가보려고 했는데 그곳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곳이고 여기가 너무 좋아서 그곳은 내일 가자고 하고 포기했다. 정작 다음날에는 힘들어서 익스미킬판에서 쉬다 그냥 멕시코시티로 돌아갔지만 그루타스가 워낙 좋았던 터라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똘란똥꼬 안 숙소는 시설이 열악하고 가격도 많이 비싸서 막차를 타고 익스미킬판으로 돌아와 저녁으로 타코를 실컷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에 다시 똘란똥꼬를 가려니 피곤해서 그냥 시내나 잠깐 구경하고 멕시코시티로 돌아가기로 했다. 먼저 시장에서 바바코아를 먹었는데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곳 역시 가격이 조금 있었다. 시내를 구경해 보려다 정말 볼 게 아무것도 없어서 카페에 조금 있다 멕시코시티로 돌아왔다.


남은 기간은 정말 더 쉬엄쉬엄 돌아다니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차풀테펙 성과 인류학 박물관을 방문하기로 한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멕시코인들은 무료입장이 가능한 날이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차풀테펙 성에서 사람에 치여 지쳐버렸다. 인류학 박물관은 멕시코시티에 오면 무조건 가야 한다지만 어차피 잘 알지도 못하는 역사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과감하게 패스했다. 다음 날은 멕시코에서 가장 돈이 많은 가문 중 한 곳이 개인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라는 소우마야 미술관으로 향했는데 규모도 정말 크고 입장료도 무료라 나름 나쁘지 않게 관람했다. 저녁에는 남미에서 계속 마주쳤던 한국인 부부분이 멕시코에 계셔서 마지막으로 같이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마지막 날에는 동행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짐도 무겁겠다 비행시간 전까지 카페에서 늘어져 있다가 공항으로 향했다. 경유지인 암스테르담까지는 아에로멕시코 비행기를 이용했는데 승무원이 이륙과 착륙 시에 이어폰을 뺄 것을 요구했다. 아마 비상상황을 대비한 조치이겠지 비행기를 그렇게 많이 탔어도 처음 듣는 특이한 말이었다. 


독일에 도착해서 체중계로 체중을 재 보니 초등학교 때 이미 넘어섰던 것 같은 60kg대 체중으로 돌아왔다. 군대 말년에 밥이 맛이 없어서 거의 굶다시피 하다 보니 70kg대 초반까지 빠졌고 여행하면서 많이 돌아다녀서 살이 더 빠진 진 것 같다. 독일에서는 12월 초까지 쉬면서 박사과정 지원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 후에는 아마 터키나 이집트를 조금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혹시 중간에 글을 올릴만한 짧은 여행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당분간은 휴식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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