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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Jun 16. 2023

나를 아프게한 사람

나는 아프다. 왜 아플까를 생각하다보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을 나열하는것만은 아니다. 그 사람들과 함께일때 공황 증상이 시작됐고 발작이 왔으며 응급실에 실려갔다. 끝도 없는 가위와 악몽의 주인공들이기도 한 사람들.

새엄마의 학대, 남자친구의 데이트폭력, 학창시절 세 번의 왕따, 친엄마의 바람과 가출, 남자친구의 사채보증, 엄마같던 고모의 배신, 고모부의 죽음, 그 외에 회사나 인간관계에서의 스트레스 상황은 공황증상을 불러일으키고 우울증을 심화시킨다. 조금은 비일반적인 여러 사건이 내 인생에 있었고 그 한가운데 위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게 글로 적나라하게 적어보니 왜 이렇게 잘못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지 씁쓸함을 떨칠 수가 없다. 

각각의 상황에 대해 뒤에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이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나의 태도에 가장 큰 문제가 있었음을 말하고싶다. 누구를 대하건 어떤 상황이건 일단 트러블이 생기면 나를 탓했다. 행동과 말투, 발언, 자세까지 점검하며 나의 어떤 부분 때문에 당하게됐는지-저항이 거의 없었으므로 당했다는 표현을 쓰고싶다-고민했다. 근거는 단순했는데, 상대방은 바꿀 수 없으니 통제가능한 나를 바꿔서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조금 더 착하고 순종적으로 대했다면, 조금 더 현명하게 대답했다면, 조금 더 요령있게 대처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가 부족하고 어리석은 탓에 이런 일을 겪나봐. 왜 불행이 끊이질 않지. 저주받은 인생인가봐. 왜 나는 담대함조차 타고나질 못해서 공황과 우울증에서 벗어나질 못하지. 이렇게 아플거면 차라리 싸울걸. 아니야, 난 돌아가도 한마디 항변도 못하는 겁쟁이야. 차라리 시원하게 울어버리고 훌훌 털어버리면 좋을텐데 울 줄도 모르는 내가 정상일까. 몸도 마음도 정신도 완전히 망가져버렸나봐. 나는 왜 이모양으로 생겨먹어서 제대로 살지를 못하는거야.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은 많지만 내가 가장 미워한 사람은 나였다. 나를 보호해야 할 사람은 부모도 연인도 친구도 아니라 나였다. 나는 나를 사랑할 줄 몰라서 한없이 박하게 굴었고 자책했으며 무엇보다 지독하게 미워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누구보다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상황의 한 가운데에서는 스스로를 탓했고 지나고나서는 나를 미워했다. 미워하고 원망하느라 한 시절을 흘려보냈고 그 이후에는 지나간 세월이 아까워 후회하느라 또 한 시절을 죽이며 고여있었다. 이제는 그 시절의 끝자락에서 다음 책장을 넘겨보려는 시도중이다. 모든걸 극복하지도 놓아보내지도 못했지만 조금씩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 그만큼의 평온을 얻었다. 

전문가도 아니고 통찰력이 뛰어나거나 언변이 특출나지도 않은 평범하디 평범한 행인17 정도되는 나지만 아픔을 겪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고싶었다. 내가 이만큼 힘들었으니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야 따위의 오만한 질책이 아니다. 각자의 사연은 우주만해서 외부의 누군가가 판단하거나 함부로 말을 얹을 수조차 없다. 그저 내가 답을 얻으려 몸부림치는 과정을 공유하고싶었다. 그게 당신에게 한줌의 위로가 되고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용기가 된다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단어와 문장을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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